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서부(徐俯)

태화당 2026. 7. 2. 07:51

徐俯(圓悟克勤禪師法嗣)

樞密徐俯 字師川 號東湖居士 每侍其父龍圖禧謁法昌及靈源 語論終日 俯聞之藐如也 迨法昌歸寂 在笑談間 俯異之 始篤信此道 後丁父憂 念無以報罔極 請源至孝址說法 源登座問答已 乃曰 諸仁者只如龍圖讀萬卷書 如水傳器 涓滴不遺 且道尋常著在甚麽處 而今捨識之後 這著萬卷書底又却向甚麽處著 俯聞灑然有得 遂曰 吾無憾矣 源下座問曰 學士適來見箇什麽便恁麽道 俯曰 若有所見 則鈍置和尙去也 源曰 恁麽則老僧不如 俯曰 和尙是何心行 源大笑 靖康初 爲尙書外郞 與朝士同志者挂鉢於天寧寺之擇木堂 力參圓悟克勤 悟亦喜其見地超邁 一日至書記寮 指悟頂相曰 這老漢脚跟猶未點地在 悟䫌面曰 甕裡何曾走却鱉 俯曰 且喜老漢脚跟點地 悟曰 莫謗他好 俯休去

龍圖; 宋代龍圖閣學士的省稱 [百度百科]

法昌; (1005-1081) 宋代雲門宗僧 漳州(今屬福建)林氏 自幼依郡之崇福得度 有大志 受具遊方 名著叢席 參南嶽谷泉 返潭州北禪 參智賢 喜其機語捷健 乃傾心師事甚久 晩至西山棲息三年 後住洪州法昌老屋數間 刀耕火種 安樂於道 [聯燈會要二十八 宗統編年二十六 續傳燈錄五]

挂鉢; 掛鉢 卽於粥飯畢 掛自用之鉢於單後之鉤也 轉義爲寄住禪林 與掛搭掛單同義

擇木堂; 擇木寮 卽侍者寮 五燈會元十九夾註云 擇木乃朝士止息處

超邁; 超越 卓越高超

頂相; 卽頂髻之相 如來頂上有肉髻 一切人天不能得見 故有無見頂相之稱 其後轉用爲禪宗祖師及先德之肖像畫 多半爲半身像 亦有坐於曲彔(僧侶所坐之圓靠椅)之全身像

脚跟猶未點地; 脚跟 於禪林常轉指本來自我 脚跟未點地 是對修行未純熟之用語

 

서부(徐俯) (圓悟 克勤禪師法嗣)

추밀(樞密) 서부(徐俯; 1075-1140)는 자가 사천(師川)이며 호가 동호거사(東湖居士). 매번 그의 부친 용도(龍圖) ()를 모시고 법창(法昌; 倚遇) 및 영원(靈源; 惟淸)을 참알했다. 종일(終日) 어론(語論)했는데 부()가 듣고서 막여(藐如; 아마득함)했다. 법창이 귀적(歸寂)함에 이르러() 담소(笑談)하는 사이에 있은지라 부()가 이를 이상하게 여겼고 비로소 차도(此道)를 독신(篤信)했다. 후에 부우(父憂; 부친의 )를 당하자() 망극(罔極; 罔極之恩)에 보은할 게 없음을 생각하고 영원(靈源)에게 청해 효지(孝址)로 이르러 설법하게 했다. 영원이 등좌(登座)하여 문답을 마치자 이에 가로되 제인자(諸仁者), 지여(祇如) 용도(龍圖)가 만권서(萬卷書)를 읽으면서 물을 그릇에 전함과 같이 연적(涓滴)도 유실(遺失)하지 않았거니와 차도(且道)하라, 심상(尋常)에 어느 곳에 놓아두었는가(著在). 이금(而今)에 사식(捨識)한 후 이 둔(這著) 만권서(萬卷書)의 것은 또 도리어 어느 곳을 향해 두었는가(). ()가 듣고서 쇄연(灑然)히 얻음이 있었다. 드디어 가로되 내가 유감(遺憾; )이 없습니다. 영원이 하좌하여 문왈 학사(學士)가 아까 저() 무엇을 보았기에 바로 이렇게 말합니까. 부왈(俯曰) 만약 본 바가 있다면 곧 화상을 둔치(鈍置; 折磨)하여 갈 것입니다. 원왈(源曰) 이러하다면 곧 노승이 불여(不如; 같지 못함)합니다. 부왈 화상은 이 무슨 심행(心行)입니까. 영원이 크게 웃었다. 정강(靖康; 1126-1127) 초 상서외랑(尙書外郞)이 되었다. 조사(朝士; 조정의 관원)의 동지(同志)인 자와 더불어 천녕사(天寧寺)의 택목당(擇木堂)에 괘발(挂鉢)하고 원오극근(圓悟克勤)에게 역참(力參)했다. 원오도 또한 그의 견지(見地)가 초매(超邁)함을 기뻐했다. 어느 날 서기료(書記寮)에 이르러 원오의 정상(頂相)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 노한은 각근(脚跟)이 아직 점지(點地)하지 않았습니다(脚跟猶未點地). 원오가 얼굴을 기울이며() 가로되 독 속에서 어찌 일찍이 자라가 달리겠습니까(走却). 부왈 다만 노한이 각근이 점지했음(脚跟點地)을 기뻐합니다. 오왈(悟曰) 그를 비방하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부가 쉬러 갔다.

龍圖; 송대 용도각학사(龍圖閣學士)의 생칭(省稱) [백도백과].

法昌; 의우(倚遇; 1005-1081)니 송대 운문종승. 장주(지금 복건에 속함) 임씨(林氏). 어릴 적부터 군()의 숭복(崇福)에게 의지해 득도(得度)했으며 대지(大志)가 있었음. 수구(受具)하고 유방(遊方)하며 이름이 총석(叢席)에 드러났음. 남악곡천(南嶽谷泉)을 참알했다가 담주(潭州)의 북선(北禪)으로 돌아와 지현(智賢)을 참알했는데 그의 기어(機語)가 첩건(捷健)함을 좋아해 곧 마음을 기울여 사사(師事)함이 매우 오래였음. 만년에 서산에 이르러 서식(棲息)하기 3년이었고 후에 홍주 법창(法昌)의 낡은 가옥 수간(數間)에 거주하면서 도경화종(刀耕火種)하며 도에 안락(安樂)했음 [연등회요28. 종통편년26. 속전등록5].

擇木堂; 택목료(擇木寮)니 곧 시자료. 오등회원19 협주에 이르되 택목(擇木)은 곧 조사(朝士)의 지식처(止息處).

挂鉢; 괘발(掛鉢)과 같음. 곧 죽반을 마치면 자기가 쓰는 발우를 단후(單後)의 갈고리에 걺임. 전의(轉義)하여 선림에 기주(寄住; 의지하고 지냄)함이 됨. 괘탑(掛搭)ㆍ괘단(掛單)과 같은 뜻.

超邁; 초월. 탁월하고 고초(高超).

頂相; 곧 정계(頂髻)의 상이니 여래의 정상에 육계(肉髻)가 있어 일체의 인천이 능히 득견(得見)하지 못하는지라 고로 무견정상(無見頂相)이란 명칭이 있음. 그 후에 전용(轉用)하여 선종 조사 및 선덕(先德)의 초상화로 삼았음. 다반(多半; 半數를 초과함)이 반신상(半身像)이며 또한 곡록(曲彔; 승려가 앉는 바의 둥근 靠椅)에 앉은 전신상(全身像)도 있음.

脚跟猶未點地; 각근은 선림에서 늘 전()하여 본래의 자아를 가리킴. 각근미점지는 이는 수행이 순숙(純熟)하지 못함에 대한 용어임.

 

贊曰 徐師川悟旨於靈源 而又挂鉢於圓悟 脚跟猶未點地在

 

찬왈(贊曰) 서사천(徐師川; 徐俯)이 영원(靈源)에게서 오지(悟旨)하고 또 원오(圓悟)에게 괘발(挂鉢)했으나 각근이 아직 점지하지 못했다(脚跟猶未點地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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