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九成(妙喜宗杲禪師法嗣)
張九成 字子韶 錢塘人 幼時父積書 坐旁 命客就試 成置卷斂袵曰 精麤本末初無二致 勿謂紙上語不足多 下學上達 某敢以聖賢爲法 諸老驚嘆曰 眞奇童子也 十四遊郡庠 閉閤終日 寒折膠暑爍金 不越戶限 比舍生穴隙視之 則斂膝危坐 對寘大編 若與神明伍 乃相驚服 而師尊之 遊京師 從龜山楊時學 然心慕楊文公呂微仲諸名儒 所造精妙皆從禪學中來 於是往謁寶印楚明 請問入道之要 明曰 此事惟念念不捨 久久純熟 時節一到 自然證入 復擧趙州栢樹子話 令時時提撕 久之無省 辭謁善權淸 成問 此事人人有分 箇箇圓成 是否 淸曰 然 成曰 爲甚麽成無箇入處 淸出袖中數珠示曰 此是誰底 成俛仰無對 淸復袖曰 是汝底則拈取去 纔涉思惟卽不是汝底 成悚然 未幾留蘇氏舘 一夕如廁 因思惻隱之心乃仁之端 忽聞蛙鳴 豁然契悟 不覺自擧云 如何是祖師西來意 庭前栢樹子 不覺大笑 汗下被體 述偈曰 春天月夜一聲蛙 撞破乾坤共一家 正恁麽時誰會得 嶺頭脚痛有玄沙 紹興初 成狀元及第 授鎭東軍簽判 遷著作郞 未幾 除宗正少卿兼刑部侍郞 趙鼎罷相 成因再章求去 丁巳秋 大慧宗杲說法於徑山 成閱其語要 嘆曰 是知宗門有人 恨不一見 遂往謁 一日問格物之旨 杲曰 公只知有格物 而不知有物格 成聞之頓領微旨 題於壁曰 子韶格物 妙喜物格 欲識一貫 兩箇五百 從是參叩擊揚 得法自在 號無垢居士 辛酉因飯僧徑山 杲以無垢禪如神臂弓 遂說偈曰 神臂弓一發 透過千重甲 仔細拈來看 當甚臭皮韈 秦檜疑其議己 令言官論列 杲追牒責衡州 成編置南安軍 旣謫居 談經自若 手不停披庭石 歲久 足蹟依然 丙子春 蒙旨守永嘉 杲亦放還 相會於灨川 留連欵語 聯舟東下 劇談宗要 未嘗及往事 成嘗令甥于憲拜杲 憲曰 素不拜僧 成曰 汝姑叩之 憲遂擧天命之謂性三句問杲 杲曰 凡人不知本命元辰下落 又要牽好人入火坑 如何於聖賢打頭一著不鑿破 憲曰 吾師能爲聖賢鑿破否 杲曰 天命之謂性 便是淸淨法身 率性之謂道 便是圓滿報身 修道之謂敎 便是千百億化身 憲以告成 成曰 子拜何辭 戊寅 杲復領徑山 成曰 某每於夢中 必誦語孟 何也 杲擧圓覺經曰 繇寂靜故 十方世界諸如來心於中顯現 如鏡中像 成曰 非老師莫聞此論也 成後設心六度 不爲子孫計 因取華嚴善知識 日供其二回食 以飯緇流 又嘗供十六大天 而諸供茶盃 悉變爲乳 作偈曰 稽首十方佛法僧 稽首一切護法天 我今供養三寶天 如海一滴牛一毛 有何妙術能感格 試借意識爲汝說 我心與佛天無異 一塵纔起大地隔 儻或塵銷覺圓淨 是故佛天來降臨 我欲供佛佛卽現 我欲供天天亦現 佛子若或生狐疑 試問此乳何處來 狐疑卽塵塵卽疑 終與佛天不相似 我今爲汝掃狐疑 如湯沃雪火消氷 汝今微有疑與惑 鷂子便到新羅國 甞頌黃龍三關曰 我手何似佛手 天下衲僧無口 縱饒撩起便行 也是鬼窟裡走(諱不得) 我脚何似驢脚 又被黐膠粘著 翻身直上兜率天 已是遭他老鼠藥(吐不出) 人人有箇生緣處 鐵圍山下幾千年 三災直到四禪天 這驢猶自在旁邊(煞得工夫)
●下學上達; 指學習人情事理 進而認識自然的法則 出自論語憲問
●郡庠; 府一級的官辦學校
●大編; 指大部頭的書籍或典籍
●神明; 天地之神靈 不測曰神 靈明如鏡曰明
●楊時; (1053-1135) 字中立 號龜山 學者稱龜山先生
●呂微仲; 呂大防(1027-1097) 字微仲 京兆府藍田(今陝西藍田)人 北宋時期政治家 書法家 [百度百科]
●楚明; 宋代雲門宗僧 字寶印 百粵(廣東廣州)張氏 祝髮後 謁法雲大通善本 契悟得法 出住杭之淨慈 [普燈錄八 五燈會元十六]
●趙州栢樹子; 從容錄第四十七則趙州柏樹 僧問趙州 如何是祖師西來意 州云 庭前柏樹子
●鎭東軍; 是唐代後期設立的藩鎭之一 治所在越州(今浙江紹興) 管轄浙東地區 宋代沿襲此制 但逐漸虛銜化 [百度]
●簽判; 官職 宋代各州府 選派京官 充當判官 時稱簽書判官廳公事 簡稱簽判 掌諸案文移事務 [百度百科]
●著作郞; 官名 東漢末始置 屬中書省 爲編修國史之任 至唐代 主管祕書省屬下之著作局 高宗龍朔間一度改稱司文郞中 其下設著作佐郞 校書郞 正字等官 掌撰碑志 祝文 祭文 宋代沿置 掌修纂日曆 明代廢 [百度百科]
●宗正少卿; 官名 北齊設立宗正寺 宗正改稱宗正寺卿或宗正卿 副官稱宗正少卿 掌管皇族事務 管理皇族宗族外戚的譜牒 守護皇族陵廟 唐代宗正寺管理道士僧侶 隋唐兩宋相沿 爲九寺之一 遼朝爲特里袞 金朝爲判大宗正事 元朝爲大宗正府 明淸爲宗人府 不再屬於九寺 [百度百科]
●趙鼎; (1085-1147) 字元鎭 號得全居士 北宋解州聞喜縣(今山西省聞喜縣禮元鎭阜底村)人 南宋初年政治家 文學家 宰相 [百度百科]
●格物; 格 至也 ▲大學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一貫; 貫 量詞 古代的銅錢用繩穿 一千箇爲一貫
●參叩; 猶參扣 謁見禪師 扣問禪法
●飯僧; 設齋食供養僧衆 又作僧齋 施僧 齋僧 略稱齋 兼指入寺供養或延僧至俗家供養 依受供養僧侶之數目多寡 又有五百僧齋 千僧齋 萬僧齋之別 齋僧且須依僧次延請 禪苑淸規十齋僧儀 齋僧之法 以敬爲宗 但依僧次延迎 不得妄生輕重
●神臂弓; 夢溪筆談十九 熙寧(1068- 1077)中 李定獻偏架弩 似弓而施榦鐙 以鐙距地而張之 射三百步 能洞重紮 謂之神臂弓 最爲利器 李定本黨項羌酋 自投歸朝廷 官至防團而死 諸子皆以驍勇雄於西邊
●秦檜; (1090-1155) 字會之 漢族 生於黃州 籍貫江寧(今江蘇南京) 南宋著名奸臣 主和派代表人物 靖康二年(1127) 因上書金帥反對立張邦昌 隨徽欽二帝被俘至金 爲撻懶信用 紹興元年(1131) 擢參知政事 隨後拜相 次年被劾落職 紹興八年再相 十一年謀殺抗金名將岳飛 前後執政十九年 歷封秦魏二國公 深得高宗寵信 紹興二十五年病逝 [百度百科 佛祖歷代通載二十] ▲佛祖歷代通載二十 辛酉(1141) 是年秦檜張浚謀殺岳飛岳雲
●論列; 一一論述 逐條逐段論述
●追牒; 收繳度牒
●編置; 謂古代官吏被貶謫至邊遠地區 編戶安置 受地方官管束
●留連; 留戀不止 舍不得離去
●本命元辰; 指本性 本命 指人出生年之干支 値其干支之星 稱本命星 元辰 謂人之命運受陰陽二星所左右 而以陽八陰六配合卜算 故本命元辰皆爲支配人命運之星 禪宗則將之比喩爲自己之本性
●打頭; 起初 開頭 最初之義
●緇流; 指僧侶 以緇侶緇門緇徒 作爲僧侶之代稱 僧呂多著緇衣 尤以法衣趨向華美之後 緇衣更爲隱遁僧所用
●感格; 謂感於此而達於彼
●佛天; 一佛卽天也 佛之德號 二佛與天神也
●鷂子便到新羅國; 形容禪機稍縱卽逝 如鷂子疾飛 轉瞬之間已飛過新羅 有時用于言句問答 指出對方遲鈍失機 含譏刺之義 或不知落處 沒踪迹之義
●撩起便行; 形容接機敏捷 當下領會 撩 用手取物
●三災; 又作三災劫 慧琳音義二云 三灾有二種 大小各別 皆在減劫 小三灾者 飢饉疫病刀兵 大三灾者 火風水灾 竝在劫末 亦名劫灾
●四禪天; 又稱四靜慮天 四靜慮處 指修習四禪定所得報果之色界天 或指居於此界之衆生 卽色界之初禪天 第二禪天 第三禪天 第四禪天 又狹義之四禪天僅指第四禪天)
장구성(張九成)(妙喜 宗杲禪師의 法嗣)
장구성(張九成; 1092-1159)은 자가 자소(子韶)며 전당(錢塘) 사람이다. 유시(幼時)에 부친이 책을 쌓았고 곁에 앉았는데(坐旁) 객(客)에게 명(命)해 바로(就) 시험하게 했다. 구성(九成)이 책을 방치하고(置卷) 옷섶(袵)을 여미고(斂) 가로되 정추(精麤)의 본말(本末)이 애초에 두 이치가 없으니 지상(紙上)에 언어(語)가 족다(足多)하지 않다고 이르지 마십시오. 아래에서 배워 위로 통달하리니(下學上達) 모(某)가 감히 성현(聖賢)을 법으로 삼습니다. 제로(諸老)가 경탄(驚嘆)하며 가로되 진기(眞奇)한 동자(童子)다. 14에 군상(郡庠)에 노닐었는데 종일 쪽문(閤)을 닫았고 추위가 아교(阿膠; 膠)를 부러뜨리고 더위가 쇠를 녹임에도(爍) 문지방(戶限)을 넘지 않았다. 이웃 사생(舍生; 學舍의 學生)이 구멍을 뚫고(穴隙) 그를 보매 곧 염슬(斂膝; 무릎을 모음)하고 위좌(危坐; 端坐)하여 가득한(寘) 대편(大編)을 대한 것이 신명(神明)과 짝(伍)한 것과 같았다. 이에 서로 경복(驚服)했고 스승처럼 존경했다. 경사(京師)에 노닐면서 귀산양시(龜山楊時)를 좇아 배웠다. 그러나 마음으론 양문공(楊文公; 楊億)ㆍ여미중(呂微仲; 呂大防) 여러 명유(名儒)를 흠모했다. 소조(所造)가 정묘(精妙)함은 모두 선학(禪學) 가운데로 좇아왔다. 이에 보인초명(寶印楚明)을 왕알(往謁)하여 입도지요(入道之要)를 청문(請問)했다. 명왈(明曰) 차사(此事)는 오직 염념(念念)에 불사(不捨)하고 오래오래 순숙(純熟)해야 하나니 시절이 일도(一到)하면 자연히 증입(證入)한다. 다시 조주백수자화(趙州栢樹子話)를 들고 시시로 제시(提撕; 參究)하게 했다. 오랫동안(久之) 성찰이 없었다. 고별하고 선권청(善權淸)을 참알하여 구성(九成)이 묻되 차사(此事)는 사람마다 분한이 있고 개개(箇箇)가 원성(圓成)했다고 하니 그렇습니까. 청왈(淸曰) 그렇다. 성왈(成曰) 무엇 때문에(爲甚麽) 구성(九成; 成)은 저(箇) 입처(入處)가 없습니까. 청(淸)이 수중(袖中)의 수주(數珠; 念珠)를 내어 보이며 가로되 이것은 이 누구의 것(底)이냐. 구성이 면앙(俛仰; 머리를 숙였다가 들다)하며 대답이 없었다. 청(淸)이 다시 소매에 넣고(復袖) 가로되 이것은 너의 것(底)이니 곧 염취(拈取)해 가거라. 겨우 사유에 건너면 곧 이 너의 것이 아니다. 성(成)이 송연(悚然)했다. 미기(未幾)에 소씨관(蘇氏舘)에 머물렀는데 어느 날 저녁(一夕) 측간에 가서(如)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곧 인(仁)의 단(端)이다를 사유하다가 개구리 울음을 홀연히 들음으로 인해 활연(豁然)히 계오(契悟)했다. 불각(不覺)에 자거(自擧)해 이르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인가, 뜰 앞의 백수자(庭前栢樹子)다. 불각에 대소(大笑)했고 땀이 흘러 몸에 미쳤다(汗下被體). 술게(述偈)하여 가로되 춘천(春天)의 월야(月夜)에 일성(一聲)의 개구리여/ 건곤을 당파(撞破)하니 한가지로(共) 일가(一家)로다/ 바로 이러한 때 누가 회득(會得)하는가/ 영두(嶺頭)에 발이 아픈(脚痛) 현사(玄沙; 師備)가 있다. 소흥(紹興; 1131-1162) 초 구성이 장원급제했다. 진동군참판(鎭東軍簽判)을 제수(除授; 授)했다가 저작랑(著作郞)으로 옮겼고 오래지 않아 종정소경(宗正少卿) 겸 형부시랑(刑部侍郞)을 제수(除授; 除)했다. 조정(趙鼎)이 파상(罷相; 宰相 官職에서 罷免)되자 구성이 인하여 거듭(再) 장소(章疏; 章)로 구거(求去; 떠남을 구함)했다. 정사(丁巳; 1137) 추(秋) 대혜종고(大慧宗杲)가 경산(徑山)에서 설법했다. 구성이 그의 어요(語要)를 읽고(閱) 탄왈(嘆曰) 종문(宗門)에 사람이 있는 줄 이에(是) 알겠다. 일견(一見)하지 못했음을 한(恨)했고 드디어 왕알(往謁)했다. 어느 날 격물지지(格物之旨)를 묻자 고왈(杲曰) 공(公)은 다만 격물(格物; 物에 이르다)이 있음을 알고 물격(物格; 物이 이르다)이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구성이 이를 듣고 문득 미지(微旨)를 영회(領會; 領)했다. 벽(壁)에 제(題)해 가로되 자소(子韶; 장구성)는 격물(格物)이며/ 묘희(妙喜; 대혜)는 물격(物格)이다/ 1관(一貫)을 알고자 한다면/ 양개(兩箇)의 5백이다. 이로 좇아 참고(參叩)하며 격양(擊揚; 攻擊하며 擧揚)했고 법의 자재함을 얻었다. 호가 무구거사(無垢居士)다. 신유(辛酉; 1141) 경산(徑山)에서 반승(飯僧; 齋僧)했는데 종고(宗杲; 杲)가 무구선(無垢禪)을 신비궁(神臂弓)과 같다 하고는 드디어 설게(說偈)하여 가로되 신비궁(神臂弓)은 한 번 쏘매(發)/ 천 겹의 갑옷(甲)을 투과했다/ 자세히 집어 와서 보매/ 무슨(甚) 냄새 나는 가죽 버선(臭皮韈)에 당하는가. 진회(秦檜)가 그것이 자기를 의논(議論; 議)함이라고 의심했고 언관(言官)으로 하여금 논열(論列)하게 했다. 종고는 추첩(追牒)하여 형주(衡州)로 책(責; 貶謫)했고 구성은 남안군(南安軍)으로 편치(編置)했다. 이미 적거(謫居)하면서 담경(談經)하며 자약(自若)했고 손에 정석(庭石)을 헤침(披)을 멈추지(停) 않았다. 세월이 오래되었으나 족적(足蹟; 발자취)은 의연(依然)했다. 병자(丙子; 1156) 춘(春) 성지(聖旨; 旨)를 입어 영가(永嘉)를 다스렸고(守) 종고도 또한 방환(放還)했다. 공천(灨川)에서 서로 만나(會) 유련(留連)하며 관어(欵語; 眞誠으로 말하다)했는데 동하(東下)에 연주(聯舟)하고 종요(宗要)를 극담(劇談)하되 일찍이 지난 일을 언급(言及; 及)하지 않았다. 구성이 일찍이 생질(甥姪; 甥) 우헌(于憲)으로 하여금 종고에게 예배하게 했다. 헌왈(憲曰) 본디(素) 배승(拜僧)하지 않습니다. 성왈(成曰) 너의 고모(姑母; 姑)도 조아렸다(叩之). 헌(憲)이 드디어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3구(句)를 들어 종고에게 물었다. 고왈(杲曰) 범인(凡人)은 본명원신(本命元辰)의 하락(下落; 下落處. 落著處)을 알지 못하고 또 호인(好人)을 당겨 화갱(火坑)에 들게 하려고 하거늘 어찌하여 성현(聖賢)의 타두일착(打頭一著)을 착파(鑿破)하지 못하는가. 헌왈(憲曰) 오사(吾師)가 능히 성현(聖賢)을 위해 착파(鑿破)하시겠습니까. 고왈(杲曰) 천명을 일러 성이라고(天命之謂性) 함은 바로 이 청정법신(淸淨法身)이며 솔성을 일러 도라고(率性之謂道) 함은 바로 이 원만보신(圓滿報身)이며 수도를 일러 교라고(修道之謂敎) 함은 바로 이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다. 헌(憲)이 성(成)에게 고하자 성왈(成曰) 자네가 예배함을 어찌 사양(辭讓; 辭)하겠는가. 무인(戊寅; 1158) 종고가 다시 경산(徑山)을 거느렸다(領). 성왈(成曰) 모(某)가 매번 몽중에서 반드시 어맹(語孟; 논어와 맹자)을 외우는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종고가 들었다(擧) 원각경에 가로되 적정(寂靜)을 말미암는(繇) 연고로 시방세계의 모든 여래심(如來心)이 가운데에 현현(顯現)함이 경중(鏡中)의 형상(形像)과 같다. 성왈(成曰) 노사(老師)가 아니었다면 차론(此論)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구성이 후에 육도(六度; 육바라밀)에 마음을 베풀었고 자손을 위해 계산하지 않았다. 인하여 화엄의 선지식을 취해 매일 2회(回)의 재식(齋食; 食)을 그에게 공급하여 치류(緇流)에게 반(飯; 齋食)했다. 또 일찍이 십육대천(十六大天)에게 공양했는데 모든 공양하는 다배(茶盃)가 모두 젖으로 변화했다.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시방의 불법승에게 계수(稽首)하고/ 일체의 호법천(護法天)에게 계수합니다/ 내가 이제 삼보천(三寶天)에 공양하나니/ 바다의 일적(一滴)과 소의 일우(一毛)와 같습니다/ 어떤 묘술(妙術)이 있어야 능히 감격(感格; 感動)하는가/ 시험 삼아 의식(意識)을 빌려 너희를 위해 설하리라/ 아심(我心)과 불천(佛天)이 다름이 없나니/ 일진(一塵)이 재기(纔起)하면 대지처럼 격(隔)한다/ 당혹(儻或; 만일 혹) 진(塵)이 사라지고(銷) 각(覺)이 원정(圓淨)하다면/ 이런 고로 불천(佛天)이 와서 강림(降臨)한다/ 내가 공불(供佛)하려고 하면 불이 곧 나타나고/ 내가 공천(供天)하려고 하면 천이 또한 나타난다/ 불자(佛子)가 만약 혹 호의(狐疑)를 낸다면/ 시문(試問)하나니 이 젖이 어느 곳에서 왔느냐/ 호의(狐疑)하면 곧 진진(塵塵)이 곧 의심하나니/ 마침내 불천(佛天)과 상사하지 않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해 호의(狐疑)를 소제(掃除; 掃)하리니/ 탕(湯; 熱湯)이 옥설(沃雪; 눈에 대다)하고 불이 소빙(消冰)함과 같다/ 너희가 이제 조금(微) 의(疑)와 혹(惑)이 있다면/ 요자(鷂子; 새매)가 바로 신라국에 이르렀다(鷂子便到新羅國). 일찍이 황룡삼관(黃龍三關)을 송해 가로되 내 손이 불수(佛手)와 어찌 같은가/ 천하 납승이 입이 없다/ 종요(縱饒; 가령) 잡아 일으켜 바로 가더라도(撩起便行)/ 또한 이는 귀굴(鬼窟) 속을 다님이다(走)(諱함을 얻지 못한다). 내 다리가 여각(驢脚)과 어찌 같으냐/ 이교(黐膠; 끈끈이 풀. 黐는 끈끈이 리)에 점착(粘著; 붙다)함을 입었다/ 번신(翻身)하여 도솔천에 직상(直上)하더라도/ 이미 이는 저(他) 노서약(老鼠藥; 늙은 쥐를 죽이는 약)을 만났다(遭)(吐해 내지 못한다). 사람마다 저(箇) 생연처(生緣處)가 있다 하니/ 철위산(鐵圍山) 아래에서 몇 천 년이던가/ 삼재(三災)가 사선천(四禪天)에 직도(直到)하나니/ 이 나귀가 아직 스스로 방변(旁邊)에 있다(공부를 매우 얻었다).
●下學上達; 인정(人情)의 사리(事理)를 학습하여 나아가 자연적인 법칙을 인식(認識)함을 가리킴. 논어 헌문(憲問)으로부터 나왔음.
●郡庠; 부(府)의 1급의 관판학교(官辦學校; 관에서 주관하는 학교).
●大編; 대부두(大部頭)의 서적 혹 전적(典籍)을 가리킴.
●神明; 천지의 신령(神靈)이니 측량하지 못함을 가로되 신(神)이며 영명(靈明)하기가 거울 같음을 가로되 명(明)임.
●楊時; 자가 중립(中立)이며 호가 귀산(龜山)이니 학자가 귀산선생(龜山先生)으로 일컬음.
●呂微仲; 여대방(呂大防; 1027-1097)이니 자가 미중(微仲)이며 경조부(京兆府) 남전(藍田; 지금의 陝西 藍田) 사람. 북송시기의 정치가며 서법가(書法家) [백도백과].
●楚明; 송대 운문종승. 자는 보인(寶印)이며 백월(광동 광주) 장씨. 머리를 깎은 후 법운 대통선본(大通善本)을 참알해 계오(契悟)하고 득법했으며 출세해 항(杭)의 정자에 주(住)했음 [보등록8. 오등회원16].
●趙州栢樹子; 종용록 제47칙 조주백수(趙州柏樹). 중이 조주에게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조주가 이르되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柏樹는 栢樹와 같음. 잣나무. 측백나무)다.
●鎭東軍; 이는 당대(唐代) 후기에 설립한 번진(藩鎭)의 하나. 치소(治所)는 월주(越州; 지금의 浙江 紹興)에 있었고 절동지구(浙東地區)를 관할(管轄)했음. 송대(宋代)에 이 제도를 연습(沿襲)했으나 단지 축점(逐漸)하여 허함화(虛銜化)했음 [백도].
●簽判; 관직(官職). 송대 각 주부(州府)에 경관(京官)을 선파(選派)하여 판관(判官)에 충당했는데 당시의 명칭이 첨서판관청공사며 간칭이 첨판임. 제안(諸案)의 문이(文移; 文書公文) 사무를 관장했음 [백도백과].
●著作郞; 벼슬 이름. 동한 말 처음 설치했고 중서성에 속했으며 국사를 편수(編修)하는 직임(職任)이었음. 당대에 이르러 비서성(祕書省) 속하(屬下)의 저작국(著作局)을 주관했음. 고종 용삭 간 한 차례 개칭하여 사문낭중(司文郞中)이라 했고 그 아래 저작좌랑ㆍ교서랑ㆍ정자(正字) 등의 관직을 설치했고 비지(碑志)ㆍ축문ㆍ제문을 찬(撰)함을 관장했음. 송대에 따라서 설치했고 일력(日曆)을 수찬(修纂)함을 관장했음. 명대에 폐했음 [백도백과].
●宗正少卿; 벼슬 이름. 북제(北齊)에서 종정시(宗正寺)를 설립하고 종정(宗正)을 개칭하여 종정시경(宗正寺卿) 혹 종정경이라 했고 부관을 일컬어 종정소경(宗正少卿)이라 했음. 황족의 사무를 장관하고 황족ㆍ종족ㆍ외척의 보첩(譜牒)를 관리하고 황족의 능묘를 수호했음. 당대(唐代) 종정시는 도사와 승려를 관리했음. 수ㆍ당 양조(兩宋)가 상연(相沿)했으며 9시(寺)의 하나가 됨. 요조(遼朝)에선 특리곤(特里袞)이라 했고 금조(金朝)에선 판대종정사(判大宗正事)라 했음. 명ㆍ청에선 종인부(宗人府)라 했고 다시 9시(寺)에 속하지 않았음 [백도백과].
●趙鼎; (1085-1147) 자가 원진(元鎭)이며 호가 득전거사(得全居士). 북송 해주(解州) 문희현(聞喜縣; 지금의 山西省 聞喜縣 禮元鎭 阜底村) 사람. 남송 초년의 정치가, 문학가, 재상(宰相)이었음 [백도백과].
●格物; 격(格)은 지(至)임. ▲대학. 옛의 명덕(明德)을 천하에 밝히고자(明) 한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治)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 자는 먼저 그 집을 정제(整齊; 齊)하고 그 집을 정제코자 한 자는 먼저 그 몸을 닦고(修) 그 몸을 닦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正)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뜻을 정성(精誠; 誠)되게 하고 그 뜻을 정성되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지(知)를 치(致)하나니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에 있다.
●一貫; 관(貫)은 양사니 고대의 동전은 노끈을 사용해 꿰었고 1천 개가 1관이 됨.
●參叩; 참구(參扣)와 같음. 선사를 알현해 선법을 구문(扣問; 叩問)함.
●飯僧; 재식(齋食)을 베풀어 승중에게 공양함. 또 승재(僧齋)ㆍ시승(施僧)ㆍ재승(齋僧)으로 지으며 약칭이 재(齋)니 겸하여 입사하여 공양하거나 혹 승인을 맞아들여 속가에 이르러 공양함을 가리킴. 공양을 받는 승려의 수목(數目)의 다과(多寡)에 의해 또 오백승재(五百僧齋)ㆍ천승재(千僧齋)ㆍ만승재(萬僧齋)의 구별이 있음. 재승은 또 반드시 승차(僧次)에 의해 연청(延請)함. 선원청규10 재승의. 재승의 법은 경(敬)으로 종(宗)을 삼나니 다만 승차(僧次)에 의해 연영(延迎)하고 망령되이 경중(輕重)을 생기(生起)함을 얻지 못한다.
●神臂弓; 몽계필담19. 희녕(1068-1077) 중 이정(李定)이 편가노(偏架弩)를 바쳤는데 활과 같으면서 간등(榦鐙)을 시설했다. 등(鐙; 등잔)을 땅과 떨어지게 해서 그것을 벌인다. 3백 보를 쏘며 능히 중찰(重紮; 紮은 활 줌통 싸개)을 꿰뚫었다. 이를 일러 신비궁(神臂弓)이라 하나니 가장 날카로운 병기가 된다. 이정의 본당(本黨)은 항강(項羌)의 추장이다. 스스로 조정에 투귀(投歸)하여 벼슬이 방단(防團)에 이르렀다가 죽었다. 여러 아들도 모두 서변(西邊)에서 날래고 용감하고 웅맹했다.
●秦檜; (1090-1155) 자는 회지며 한족. 황주에서 출생했고 적관(籍貫)은 강녕(江寧; 지금의 강소 남경). 남송의 저명한 간신(奸臣)이니 주화파(主和派)의 대표인물. 정강 2년(1127) 방창(邦昌)과 반대의 입장을 금수(金帥)에게 상서(上書)함으로 인해 휘흠(徽欽) 2제(帝)를 따라 포로가 되어 금(金)에 이르렀는데 달라(撻懶; 金의 대장)가 신용(信用)하였음. 소흥 원년(1131) 참지정사에 발탁되었고 뒤따라 배상(拜相; 재상에 除拜됨)했음. 다음해 탄핵을 받아 낙직(落職)했고 소흥 8년 다시 배상(拜相)했음. 11년 항금명장(抗金名將) 악비(岳飛)를 모살(謀殺)했음. 전후로 19년 동안 집정했고 진위(秦魏) 2국공(國公)에 역봉(歷封)되었음. 깊이 고종의 총신(寵信)을 얻었고 소흥 25년 병서(病逝)했음 [백도백과. 불조역대통재20]. ▲불조역대통재20. 신유(1141) 이 해 진회(秦檜)와 장준(張浚)이 악비(岳飛)와 악운(岳雲)을 모살(謀殺)했다.
●論列; 하나하나 논술(論述)함. 축조(逐條)ㆍ축단(逐段)하여 논술함.
●追牒; 도첩(度牒)을 수교(收繳; 거두어들임)함.
●編置; 이르자면 고대 관리가 폄적(貶謫)을 입어 변원지구(邊遠地區)에 이르러 편호(編戶)하여 안치하고 지방관(地方官)의 관속(管束)을 받음.
●留連; 유련(留戀)하며 그치지 않음. 버리고 떠나감을 얻지 못함.
●本命元辰; 본성을 가리킴. 본명(本命)은 사람의 출생년의 간지(干支)를 가리킴. 그 간지의 별을 만남을 일컬어 본명성(本命星)이라 함. 원신(元辰)은 이르자면 사람의 명운(命運)이 음양(陰陽) 2성(星)에 좌우되는 바를 받아 양8 음6의 배합으로 복산(卜算)함. 고로 본명원신은 모두 사람의 명운을 지배하는 별이 됨. 선종에선 곧 이를 가지고 자기의 본성에 비유함.
●打頭; 기초(起初)ㆍ개두(開頭)ㆍ최초의 뜻.
●緇流; 승려를 가리킴. 치려(緇侶)ㆍ치문(緇門)ㆍ치도(緇徒)로써 승려의 대칭(代稱)으로 지음. 승려는 다분히 치의(緇衣)를 입으며 더욱이 법의(法衣)는 화미(華美)의 뒤를 추향(趨向)하기 때문임. 치의는 다시 은둔승이 사용하는 바가 됨.
●感格; 이르자면 차(此)에서 감응(感應; 感)하여 피(彼)에 도달(到達; 達)함.
●佛天; 1. 불타가 곧 천이니 불타의 덕호. 2. 불타와 천신.
●鷂子便到新羅國; 선기(禪機)를 조금만 놓쳐도 곧 가버림을 형용함이니 마치 요자(鷂子; 새매)가 빠르게 날아 눈을 깜작이는 사이에 이미 신라를 비과(飛過)함과 같음. 어떤 때는 언구의 문답에 사용하나니 상대방이 지둔(遲鈍)하여 실기(失機)함을 가리켜 냄. 기자(譏刺; 헐뜯음)의 뜻을 함유했음. 혹은 낙처를 알지 못함, 종적이 없음의 뜻.
●撩起便行; 접기(接機)가 민첩하여 당하에 영회(領會)함을 형용. 료(撩)는 손을 사용하여 물건을 취함.
●三災; 또 3재겁(三災劫)으로 지음. 혜림음의2에 이르되 3재에 2종이 있다. 대소가 각기 다르며 모두 감겁(減劫)에 있다. 소삼재란 것은 기근(飢饉)ㆍ역병(疫病)ㆍ도병(刀兵)이며 대삼재란 것은 화ㆍ풍ㆍ수재다. 모두 겁말에 있으며 또한 이름이 겁재(劫灾)다.
●四禪天; 또 명칭이 4정려천ㆍ4정려처니 4선정을 수습하여 얻는 바 보과(報果)의 색계천을 가리킴. 혹은 이 계(界)에 거주하는 중생을 가리킴. 곧 색계의 초선천ㆍ제2선천ㆍ제3선천ㆍ제4선천임. 또 좁은 의미의 4선천은 겨우 제4선천을 가리킴.
贊曰 妙喜云 無垢禪如神臂弓 神臂弓一發 透過千重甲 又曰 無垢老子一點也瞞他不得 然考當日參尋 良亦勤苦 初參寶印 再參善權 至月夜蛙鳴 恍然契悟 而猶未也 推倒臺盤掣去火抄 而猶未也 格物物格領微旨於畵像 入佛入魔得自在於料揀 始自肯云 九成了末後大事 實在徑山老人處 故曰 不入驚人浪 難逢稱意魚
●參尋; 欲參禪法 尋訪禪師
●火抄; 正作火杪 燒紅的木杪
●格物物格領微旨於畵像; 五燈會元二十張九成 至徑山與馮給事諸公議格物 慧曰 公祇知有格物 而不知有物格 公茫然 慧大笑 公曰 師能開諭乎 慧曰 不見小說載唐人有與安祿山謀叛者 其人先爲閬守 有畫像在焉 明皇幸蜀 見之怒 令侍臣以劒擊其像首 時閬守居陝西 首忽墮地 公聞頓領深旨 題不動軒壁曰 子韶格物 妙喜物格 欲識一貫 兩箇五百 慧始許可
●料揀; 又作料簡 判定 辨明
찬왈(贊曰) 묘희(妙喜)가 이르되 무구선(無垢禪)이 신비궁(神臂弓)과 같나니 신비궁을 한 번 쏘매 천 겹의 갑옷을 투과(透過)한다. 우왈(又曰) 무구노자(無垢老子)는 일점(一點)도 그를 속임(瞞)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당일의 참심(參尋)을 고찰(考察; 考)하건대 참으로(良) 또한 근고(勤苦)했다. 보인(寶印; 楚明)을 초참(初參)했고 선권(善權)을 재참(再參)했다. 월야(月夜)에 개구리가 욺에 이르러 황연(恍然)히 계오(契悟)했지만 아직(猶) 아니었다(未也). 대반(臺盤; 桌子)을 퇴도(推倒)하고 화초(火抄)를 체거(掣去; 끌어당겨 가다)했지만 아직 아니었다. 격물물격(格物物格)을 화상(畵像)에서 미지(微旨)를 영회(領會)하고(格物物格領微旨於畵像) 입불입마(入佛入魔)를 요간(料揀)에서 자재(自在)하고서야 비로소 자긍(自肯)해 이르되 구성(九成)이 말후대사(末後大事)를 깨쳤다고(了) 했으나 실로 경산노인(徑山老人; 대혜종고)의 곳에 있었다. 고왈(故曰) 경인랑(驚人浪)에 들지 못하면 칭의어(稱意魚)를 만나기 어렵다.
●參尋; 선법을 참구하고자 하여 선사를 심방(尋訪)함.
●火抄; 바르게는 화초(火杪; 불꼬챙이)로 지음. 타서 붉은 목초(木杪; 나무의 끝 부분).
●格物物格領微旨於畵像; 오등회원20 장구성(張九成). 경산에 이르러 풍급사(馮給事) 제공(諸公)과 격물(格物)을 의논했다. 혜(慧; 대혜)가 가로되 공(公)은 단지 격물(格物; 物에 至함)이 있는 줄만 알았지 물격(物格; 物이 至함)이 있는 줄 알지 못합니다. 공(公)이 망연(茫然)하거늘 대혜가 크게 웃었다. 공이 가로되 스님께서 능히 개유(開諭)하시겠습니까. 대혜가 가로되 소설(小說)에 실린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당인(唐人)에 안녹산(安祿山)과 모반한 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먼저 낭수(閬守; 閬은 地名 랑) 노릇을 했으며 화상(畵像)이 잔재(殘在)해 있었습니다. 명황(明皇; 唐玄宗)이 행촉(幸蜀; 天子의 車駕가 이르는 곳을 臣民이 僥倖으로 여겼으므로 幸이라고 말함)하였다가 이(畵像)를 보고 노해 시신(侍臣)을 시켜 검으로써 그 상수(像首)를 치게 했는데 때에 낭수(閬守)는 섬서(陝西)에 거주했으나 머리가 홀연히 땅에 떨어졌습니다. 공이 듣고서 단박에 심지(深旨)를 깨닫고 부동헌(不動軒)의 벽에 제(題)하여 가로되 자소(子韶)는 격물(格物)이요/ 묘희(妙喜; 大慧)는 물격(物格)이니/ 1관(貫; 量嗣. 동전을 노끈으로 꿰었는데 동전 1천 개가 1관)을 알고자 하느냐/ 양개(兩箇)의 5백이다. 대혜가 비로소 허가했다.
●料揀; 또 요간(料簡)으로 지음. 판정(判定). 변명(辨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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