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邴(宗杲禪師法嗣)
李邴 字漢老 任城人 崇寧中 官翰林學士 後拜參知政事 邴醉心祖道有年 聞大慧杲力排默照爲邪禪 心疑且怒 過慧觀聽 値慧方示衆 擧趙州栢樹子話垂語曰 庭前栢樹子 今日重新擧 打破趙州關 特地尋言語 敢問大衆旣是打破趙州關 爲什麽特地尋言語 良久 曰 當初只道茆長短 燒了方知地不平 邴忽領悟 謂慧曰 無老師後語 幾蹉過 別後 以書咨決曰 某近扣籌室 承擊發蒙滯 忽有省入 顧惟根識暗鈍 平生學解盡落情見 一取一捨如衣壞絮行草棘中 適自纏繞 今一笑頓釋所疑 欣幸可量 非大宗匠委曲垂慈 何以致此 慧答書曰 示諭自到城中 著衣喫飯 抱子弄孫 色色仍舊 旣亡拘滯之情 亦不作奇特之想 宿習舊障 亦稍輕微 三復斯語 歡喜踊躍 此乃學佛之驗也 儻非過量大人於一笑中百了千當 則不能知吾家果有不傳之妙 若不爾者 疑怒二字法門 盡未來際終不能壞 使太虗空爲雲門口 草木瓦石皆發光明 助說道理亦不奈何 方信此段因緣不可傳 不可學 須是自證自悟 自肯自休 方始徹頭 公今一笑頓亡所得 夫復何言 又曰 此事極不容易 須生慚愧始得 往往利根上智者 得之不費力 遂生容易心 便不修行 多被目前境界奪將去 作主宰不得 日久月深迷而不返 道力不能勝業力 魔得其便 定爲魔所攝持 臨命終時 亦不得力 千萬記取 前日之語 理則頓悟 乘悟幷銷 事非頓除 因次第盡 行住坐臥 切不可忘了 其餘古人差別言句 皆不可以爲實 然亦不可以爲虗 久久純熟 自然默默契自本心矣 不必別求殊勝奇特也 邴又具書曰 比蒙誨答 備悉深旨 邴自驗者三 一事無逆順 隨緣卽應 不留胸中 二夙習濃厚 不加排遣 自爾輕微 三古人公案 舊所茫然 時復瞥地 此非自昧者 慧又答曰 不識日來隨緣放曠 如意自在否 四威儀中不爲塵勞所勝否 寤寐二邊得一如否 於仍舊處無走作否 於生死心不相續否 但盡凡情 別無聖解 公旣一笑 豁開正眼 消息頓忘 得力不得力 如人飮水冷煖自知矣 然日用之間 當依黃面老子所言刳其正性 除其助因 違其現業 此乃了事漢 無方便中眞方便 無修證中眞修證 無取捨中眞取捨也 後邴病將革 以偈寄彌光曰 曩歲曾經渡厄津 深將法力荷雲門 如今稍覺神明復 擬欲酬師不報恩 光答曰 胡床穩坐已通津 何處還尋不二門 八苦起時全體現 不知誰解報深恩 邴得報 閱罷而逝
●默照; 默 指沈默專心坐禪 照 卽以慧鑑照淸淨之靈知心性
●垂語; 垂示之語也 禪門宗匠上堂提撕學人曰垂示
●籌室; 稱師家之室也 [大慧書栲栳珠] ▲祖庭事苑五 籌室 西竺第四祖優婆毱多 傳法化導得度者甚衆 每度一人以一籌置於石室 其室縱十八肘 廣十二肘 充滿其間 最後一長者子 名曰香至 出家悟道 因夢易名 曰提多迦者 卽五祖也
●示諭; 告知 曉示 常用於上對下或書劄中
●色色; 猶謂樣樣 件件
●過量; 超越數量 無數
●大人; 對長輩身分高的人的尊稱 大 敬詞 如大人大夫 有人君之德 故稱大人 又對非凡之人 上等根器者的稱呼
●百了千當; 亦作千了百當 意謂參禪悟道之事妥貼了結 完全成功
●太虗空; 謂浩浩宇宙之虛空
●始得; 得 適合 適當 正好 可
●理則頓悟下; 首楞嚴經十 理則頓悟乘悟併銷 事非頓除因次第盡
●比; 副詞 近 近來
●瞥地; 速急之意 猶言一瞥 瞥然 瞥 倏忽 疾視 暫見之意 地 助詞
●走作; 謂心神浮盪不定 走來走去 又指超出本來之規範
●凡情; 一凡俗情識 二凡俗之人 此指一
●黃面老子; 指釋迦牟尼佛 又稱黃面瞿曇 黃面老人 黃面老漢 黃面老 黃面 黃頭大士 黃頭老 黃頭 黃老等 如來爲金色身 故有黃面之稱
●現業; 業 梵語羯磨 身口意善惡無記之所作也 其善性惡性 必感苦樂之果 故謂之業因 其在過去者 謂爲宿業 現在者謂爲現業
●了事; 一明事理 會辦事 二禪家謂了悟眞如本性 了結生死大事爲了事 三禪家又將善於通過語言來表說 或獲取知識見解稱作了事 幷非眞正了却參禪大事 此指二
●彌光; (?-1155) 宋代楊岐派僧 號晦庵 別號禪狀元 光狀元 閩州(福建)長樂人 姓李 十八歲出家受戒 曾謁圜悟克勤 黃檗景祥 高庵善悟諸師 於廣因大慧宗杲門下頓悟 竝嗣其法 禪狀元之號 卽由大慧所立 初於鼓山弘法 未幾 任泉州敎忠寺住持 歷十年 移住福州龜山 後因疾而歸返雲門庵 高宗紹興二十五年示寂 撰有晦庵光狀元和尙語要傳世 [普燈錄十八 聯燈會要十七]
●胡床; 從西域傳來的一種坐椅 禪師常坐用之
●八苦; 衆生輪迴六道所受之八種苦果 一生苦 二老苦 三病苦 四死苦 五愛別離苦 六怨憎會苦 七求不得苦 八五陰盛苦 [法苑珠林六十六]
이병(李邴)(宗杲禪師의 法嗣)
이병(李邴; 1085-1146)은 자가 한로(漢老)며 임성(任城) 사람이다. 숭녕(崇寧; 1102-1106) 중 벼슬이 한림학사(翰林學士)였고 후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제배(除拜; 拜)되었다. 병(邴)이 조도(祖道)에 취심(醉心)한 지 여러 해(有年)였다. 대혜고(大慧杲; 宗杲)가 묵조(默照)를 힘껏 배척하여 사선(邪禪)으로 삼는다 함을 듣고 마음에 의심하고 또(且) 노(怒)했다. 대혜(大慧; 慧)에게 이르러(過) 관청(觀聽)했는데 대혜가 바야흐로 시중(示衆)함을 만났다(値). 조주백수자화(趙州栢樹子話)를 거(擧)하고 수어(垂語)하여 가로되 정전(庭前)의 백수자(栢樹子)를/ 금일 거듭 새로 거(擧)했다/ 조주관(趙州關)을 타파하고/ 특지(特地; 특별히) 언어(言語)를 찾는다. 감히 대중에게 묻노니 이미 이, 조주관을 타파했거늘 무엇 때문에(爲什麽) 도리어 특지 언어를 찾느냐.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당초(當初)에 다만 모(茆; 띠)의 장단(長短)을 말했더니 소료(燒了)하매 바야흐로 땅이 평탄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병(邴)이 홀연히 영오(領悟)했다. 대혜에게 일러 가로되 노사(老師)의 후어(後語)가 없었다면 거의 차과(蹉過; 錯過)할 뻔했습니다. 헤어진 후 글로써 자결(咨決; 물어 決擇)해 가로되 모(某)가 요사이(近) 주실(籌室)을 두드렸다가 몽체(蒙滯)를 격발(擊發)함을 승수(承受; 承)하고서 홀연히 성입(省入)함이 있었습니다. 돌아보건대(顧) 오직 근식(根識)이 암둔(暗鈍)하여 평생의 학해(學解)가 모두 정견(情見)에 떨어져 일취일사(一取一捨)함이 해진 솜옷(壞絮)을 입고(衣) 초극(草棘) 속을 다니매 마침(適) 스스로 전요(纏繞)됨과 같았는데 이제 일소(一笑)하며 소의(所疑)가 문득 풀렸으니(頓釋) 흔행(欣幸)을 가히 헤아릴 만합니다. 대종장(大宗匠)의 위곡(委曲)한 수자(垂慈)가 아니었다면 무슨 까닭으로 여기에 이르겠습니까(致). 대혜가 답서(答書)하여 가로되 시유(示諭)하시되 성중(城中)에 도착함으로부터 옷 입고 밥 먹고 아들을 안고 손자를 희롱하면서 색색(色色)이 잉구(仍舊; 예전과 그대로)였지만 이미 구체(拘滯)의 정이 없고(亡) 또한 기특하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숙습(夙習)과 구장(舊障)도 또한 조금씩(稍) 경미(輕微)해졌다 하셨습니다. 세 번 사어(斯語)를 반복(反復; 復)하며 환희용약(歡喜踊躍)했습니다. 이것은 곧 학불(學佛)의 효험(效驗; 驗)입니다. 만일(儻) 과량대인(過量大人)이 일소(一笑) 중에 백료천당(百了千當)함이 아니라면 곧 오가(吾家)에 과연 부전지묘(不傳之妙)가 있음을 능히 알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爾) 못할진대 의노(疑怒) 이자(二字) 법문이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마침내 능히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태허공(太虗空)으로 하여금 운문(雲門; 대혜)의 입이 되게 하고 초목와석(草木瓦石)이 모두 광명을 놓아 도리(道理)를 설함을 도우더라도 또한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不奈何). 바야흐로 믿을지니 차단(此段)의 인연은 가히 전하지 못하고 가히 배우지 못하며 모름지기 이는 자증자오(自證自悟)하고 자긍자휴(自肯自休)해야 비로소(方始) 철두(徹頭)입니다. 공(公)이 이제 일소(一笑)하며 문득 소득(所得)을 잊었다(亡) 하니 무릇(夫; 發辭) 다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우왈(又曰) 차사(此事)는 지극히 용이(容易)하지 않으므로 모름지기 참괴(慚愧)를 내어야 비로소 옳습니다(始得). 왕왕(往往) 이근(利根)의 상지자(上智者)가 이(之)를 얻으매 힘을 소비(消費; 費)하지 않는다 하며 드디어 용이하다는 마음을 내고는 바로 수행하지 않고 다분히 목전의 경계가 빼앗아 가져 감을 입어 주재(主宰)를 지음을 얻지 못하고 일구월심(日久月深)하매 미(迷)하여 돌이키지(返) 못합니다. 도력(道力)이 업력(業力)을 능히 이기지 못합니다. 마(魔)가 그 편의(便宜; 便)를 얻어 결정코 마(魔)가 섭지(攝持; 攝)하는 바가 되어 명종(命終)에 임한 때 또한 득력(得力)하지 못하니 천만(千萬) 번 기취(記取)하십시오. 전일(前日)의 말씀인 리(理)는 곧 돈오(理則頓悟)라서 승오(乘悟)하여 아울러 녹이지만(銷) 사(事)는 돈제(頓除)하지 못하니 차제(次第)로 인해 없어진다를 행주좌와에 간절히 가히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그 나머지 고인의 차별의 언구는 모두 가히 실(實)로 삼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러나 또한 가히 허(虗)로 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구구(久久)하여 순숙(純熟)하면 자연히 묵묵히 자기의 본심에 계합하는지라 수승(殊勝)과 기특(奇特)을 별구(別求)함이 필요치 않습니다. 병(邴)이 또 글을 갖추어 가로되 요사이(比) 회답(誨答; 敎導의 답)을 받고(蒙) 심지(深旨)를 갖추어 알았습니다. 병(邴)이 스스로 증험(證驗; 驗)함이 있는 것이 셋입니다. 1. 사(事)는 역순(逆順)이 없으며 수연(隨緣)하여 곧 응하고 흉중에 머물러 두지(留) 않음입니다. 2. 숙습(宿習)이 농후(濃厚)하지만 배견(排遣)을 더하지 않아도 저절로(自爾) 경미(輕微)해졌습니다. 3. 고인의 공안(公案)에 예전(舊)엔 망연(茫然)한 바이었지만 때로 다시 별지(瞥地)니 이것은 스스로 매(昧)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혜가 또 답왈(答曰) 알지 못하나니 일래(日來; 近來)에 인연 따라 방광(放曠)하며 뜻과 같이 자재(自在)합니까. 사위의((四威儀; 행주좌와) 중에 진로(塵勞)가 이기는 바가 되지 않습니까. 오매(寤寐) 이변(二邊)에 일여(一如)함을 얻습니까. 잉구처(仍舊處)에 주작(走作)이 없습니까. 생사심(生死心)이 상속(相續)하지 않습니까. 단지 범정(凡情)을 없애면 달리 성해(聖解; 聖人의 이해)가 없습니다. 공(公)이 이미 일소(一笑)하며 정안(正眼)을 활개(豁開; 활짝 열다)하고 소식(消息)이 문득 망했다 하니 득력(得力)과 득력하지 못함은 사람이 음수(飮水)하매 냉난(冷煖)을 스스로 앎과 같습니다. 그러나 일용(日用)하는 사이에 마땅히 황면노자(黃面老子)가 말씀한 바에 의해 그 정성(正性)을 쪼개고(刳) 그 조인(助因)을 제거하고 그 현업(現業)을 위배해야 이것이 곧(乃) 요사한(了事漢)입니다. 방편이 없는 가운데 참다운 방편(眞方便)이며 수증(修證)이 없는 가운데 참다운 수증이며 취사(取捨)가 없는 가운데 참다운 취사입니다. 후에 병(邴)이 병(病)이 장차 위독(革; 중해질 극)하자 게를 미광(彌光)에게 기탁했다. 낭세(曩歲; 往年)에 일찍이 액진(厄津)을 건넘(渡)을 겪었고/ 법력(法力)을 깊이 가져 운문(雲門; 宗杲)을 짊어졌다(荷)/ 여금에 조금(稍) 신명(神明)의 환복(還復; 復)을 느끼나니/ 스님에게 보은하지 못한 것을 갚으려고(酬) 합니다. 광(光)이 답왈 호상(胡床)에 온좌(穩坐)하여 이미 나루를 통과했거늘(通津)/ 어느 곳에서 다시 불이문(不二門)을 찾겠는가(尋)/ 팔고(八苦)가 일어날 때 전체가 나타나나니/ 누가 심은(深恩)에 보답할 줄 아는지(解) 알지 못하겠네. 병(邴)이 통보(通報; 報)를 얻자 읽어 마치고(閱罷) 서거(逝去)했다.
●默照; 묵(默)은 침묵하면서 전심(專心)으로 좌선함을 가리키며 조(照)는 곧 혜(慧)로써 청정한 영지(靈知)의 심성을 감조(鑑照)함임.
●垂語; 수시(垂示)의 말임. 선문의 종장이 상당하여 학인에게 제시(提撕)함을 가로되 수시임.
●籌室; 사가(師家)의 실(室)을 일컬음 [대혜서고로주]. ▲조정사원5. 주실(籌室) 서축(西竺)의 제4조 우바국다(優婆毱多)는 전법하고 화도(化導)하여 득도(得度)한 자가 매우 많았다. 매번 한 사람을 제도하면 1주(籌)를 석실에 두었다. 그 석실은 세로가 18주(肘; 팔꿈치)며 너비가 12주(肘)인데 그 사이에 충만했다. 최후에 한 장자의 아들은 이름해 가로되 향지(香至)였다. 출가해 오도했으며 꿈을 인해 이름을 바꿨으니 가로되 제다가(提多迦)란 자며 곧 5조다.
●示諭; 고지(告知). 효시(曉示; 깨우쳐 보임). 상(上)이 하(下)에 대하거나 혹 서차(書劄; 書信) 가운데에 상용(常用)함.
●色色; 양양(樣樣)ㆍ건건(件件)이라고 이름과 같음.
●過量; 수량을 초월함. 무수.
●大人; 장배(長輩; 나이와 지위 등이 높은 사람)나 신분이 높은 사람에 대한 존칭. 대(大)는 경사(敬詞)니 대인ㆍ대부 같은 것. 인군(人君)의 덕이 있는지라 고로 대인으로 호칭함. 또 비범한 사람이나 상등근기자에 대한 칭호.
●百了千當; 또 천료백당으로 지음. 뜻으로 이르자면 참선오도의 일을 타첩(妥貼; 收拾. 정리)하여 요결(了結)함, 완전히 성공함.
●太虗空; 이르자면 호호(浩浩; 가없이 드넓음)한 우주의 허공.
●始得; 得 適合 適當 正好 可 득(得)은 적합. 적당. 정호(正好). 가(可).
●理則頓悟下; 수릉엄경10 리(理)는 곧 돈오(頓悟)인지라 승오(乘悟)하여 아울러 녹이지만(銷) 사(事)는 돈제(頓除)하지 못하고 차제(次第)로 인해 없앤다.
●比; 부사(副詞)니 근(近) 근래(近來).
●瞥地; 속급(速急; 급속)의 뜻. 일별(一瞥)ㆍ별연(瞥然)이라고 말함과 같음. 별(瞥)은 숙홀(倏忽; 갑자기)ㆍ질시(疾視; 빨리 보다)ㆍ잠견(暫見; 잠시 보다)의 뜻이며 지는 조사.
●走作; 이르자면 심신(心神)이 부탕(浮盪; 떠서 흔들림)하여 안정하지 못하고 주래주거(走來走去)함. 또 본래의 규범을 초출함을 가리킴.
●凡情; 1. 범속(凡俗)한 정식(情識). 2. 범속한 사람.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黃面老子; 석가모니불을 가리킴. 또 호칭이 황면구담(黃面瞿曇)ㆍ황면노인(黃面老人)ㆍ황면노한(黃面老漢)ㆍ황면로(黃面老)ㆍ황면(黃面)ㆍ황두대사(黃頭大士)ㆍ황두로(黃頭老)ㆍ황두(黃頭)ㆍ황로(黃老) 등. 여래는 금색의 몸이 되는지라 고로 황면의 칭호가 있음.
●現業; 업(業) 범어는 갈마(羯磨; 梵 karma)니 신구의(身口意)ㆍ선악(善惡)ㆍ무기(無記)의 소작(所作)임. 그 선성(善性)과 악성(惡性)이 반드시 고락(苦樂)의 결과를 감응(感應)하는지라 고로 이를 일러 업인(業因)이라 함. 그것이 과거에 있는 것은 숙업(宿業)이라고 이르고 현재의 것은 현업(現業)이라고 이름.
●了事; 1. 사리를 밝힘. 판사(辦事; 공무를 처리함)를 앎. 2. 선가에서 이르기를 진여의 본성을 요오(了悟)하여 생사대사를 요결(了結)함을 요사(了事)라 함. 3. 선가가 또 어언을 통과하여 표설(表說)함을 잘하거나 혹 지식의 견해를 획취(獲取)함을 가지고 요사(了事)라고 호칭함. 모두 진정으로 참선의 대사를 요각(了却; 끝을 맺다)함이 아님.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彌光; (?-1155) 송대 양기파승. 호는 회암이며 별호는 선장원(禪狀元)ㆍ광장원(光狀元)이니 민주(복건) 장락 사람이며 성은 이(李). 18세에 출가하여 수계했고 일찍이 원오극근ㆍ황벽경상ㆍ고암선오 여러 선사를 참알했음. 광인에서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문하에서 돈오하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선장원(禪狀元)의 호는 곧 대혜로부터 세워진 것임. 처음에 고산에서 홍법하다가 얼마 안되어 천주 교충사(敎忠寺)의 주지에 임명되었고 10년이 지나 복주 귀산으로 이주했음. 후에 질병으로 인해 운문암으로 귀반(歸返)하였다가 고종 소흥 25년에 시적했음. 찬술(撰述)에 회암광장원화상어요가 있어 세상에 전함 [보등록18. 연등회요17].
●胡床; 서역으로부터 전래한 일종의 좌의(坐椅)니 선사가 늘 앉아서 사용함.
●八苦; 중생이 6도(道)에 윤회하면서 받는 바의 8종 고과(苦果)니 1은 생고며 2는 노고며 3은 병고며 4는 사고며 5는 애별리고(愛別離苦)며 6은 원증회고(怨憎會苦)며 7은 구부득고(求不得苦)며 8은 오음성고(五陰盛苦)임 [법원주림66].
贊曰 一笑頓亡所得 那裡有什麽正性可刳 助因可除 現業可違 妙喜老人只管扶人上壁 不知自己脚跟下泥深數丈
찬왈 일소(一笑)에 소득(所得)이 문득 없어졌다(亡) 하니 나리(那裡)에 무슨(什麽) 정성(正性)을 가히 쪼갬(刳)이 있겠는가. 조인(助因)을 가히 제(除)하고 현업(現業)을 가히 거스른다 하니 묘희노인(妙喜老人)이 다만 사람을 부축해 벽에 올림(上)만 관대(管帶)하고 자기의 각근(脚跟) 아래 진흙 깊이가 몇 장(丈)인 줄 알지 못했다.
평심사 : 네이버 블로그
평심사주(平心寺主) 태화당( 泰華堂) 정원(淨圓)스님의 저서 공개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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