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오위명(吳偉明)

태화당 2026. 7. 6. 07:47

吳偉明(宗杲禪師法嗣)

吳偉明 字元昭 邵武人 久參眞歇 得自用三昧爲極致 甞跋華嚴梵行品 自言於梵行品有悟入處 大慧見之笑曰 此人只悟得箇無梵行而已 已被邪師印破面門了也 雲門若見須盡力救他 明遂至長樂 隨衆入室 慧曰 公所悟者 永嘉所謂豁達空撥因果 莾莾蕩蕩招殃禍耳 遂爲引梵行品中錯證據處 曰 若依此引證 謂無梵行是眞梵行 則是謗大般若 入地獄如箭射 又今諸方邪說 各各自言得無上道 欺胡謾漢 將古人入道因緣妄生穿鑿 又有一般於座主處作短販 逴得一言半句 狐媚聾俗 臨濟曰 有一般禿兵 向敎乘中取意度商量成於句義 如將屎塊子口中含了 却吐與別人 明聞之心疑 當晚入室 慧擧狗子無佛性話問之 纔擬答 慧便打 遂留咨參 一日慧曰 不須呈伎倆 直須啐地折嚗地斷 方敵得生死 若只呈伎倆 有甚了期 卽辭去 道次延平 忽然契悟 連書數頌寄慧 皆室中所聞者 有曰 不是心不是佛不是物 通身一串金鎻骨 趙州親見老南泉 解道鎭州出蘿蔔 慧證偈曰 通身一串金鎻骨 堪與人天爲軌則 要識臨濟小廝兒 便是當年白拈賊

眞歇; 淸了(1089-1151) 宋代曹洞宗僧 丹霞子淳法嗣 左綿安昌(四川)人 俗姓雍 諱淸了 道號眞歇 又稱寂庵 十一歲 依聖果寺淸俊出家 初學法華 十八歲受具足戒 入成都大慈寺 學圓覺經金剛經等 至鄧州(河南)丹霞山 參子淳 開悟得證 竝嗣其法 宣和四年主眞州長蘆 建炎四年(1130) 入主雪峰寺 紹興十五年(1145) 住能仁興聖萬壽禪寺 二十一年 住崇先顯孝禪院 同年十月寂 壽六十三 臘四十五 諡號悟空禪師 著信心銘拈古一卷 一掌錄等 門人編集長蘆了和尙劫外錄一卷 [眞歇淸了禪師語錄 普燈錄九 五燈會元十四 續傳燈錄十七]

永嘉; 玄覺(665-713) 唐代僧 溫州永嘉(位於浙江)人 俗姓戴 字明道 號永嘉玄覺 八歲出家 博探三藏 尤通天台止觀 後於溫州龍興寺側巖下自構禪庵 獨居硏學 常修禪觀 偶因左溪玄朗之激勵 遂起遊方之志 與東陽玄策共遊方尋道 至韻陽時 謁曹溪慧能 與慧能相問答而得其印可 慧能留之一宿 翌日卽歸龍興寺 時人稱之一宿覺 其後 學者輻湊 號眞覺大師 玄朗贈書招之山棲 師覆書辭退 先天二年(七一三 一說開元二年 或先天元年)十月十七日 趺坐入寂 壽四十九 賜諡無相大師 塔曰淨光 著證道歌一篇 梵僧傳歸天竺 彼皆欽仰目爲東土大乘經 又著禪宗悟修圓旨十篇 及觀心十門 永嘉集十卷 並盛傳于世 [宋高僧傳八 佛祖歷代通載十三 佛祖統紀十 傳燈錄五 五燈會元二]

莾莾蕩蕩; 莽莽蕩蕩 迂闊貌

短販; 缺斤短兩的小販 卽在交易中故意減少商品重量或數量 以牟取不正當利益的攤販

禿兵; 對僧人的斥罵語 禿 無髮也 經中斥破戒無行之比丘 謂之禿人 又云禿居士 以彼雖剃髮而無出家沙門之行 但是禿頭之俗人 禿頭之居士耳

狗子無佛性; 從容錄第十八則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有 僧云 旣有 爲甚麽卻撞入這箇皮袋 州云 爲他知而故犯 又有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曰 無 僧云 一切衆生皆有佛性 狗子爲什麽卻無 州云 爲伊有業識在

啐地折嚗地斷; 突然折斷 隱指當下悟入 頓領禪法 啐地 嚗地 皆象聲詞 迸裂聲

小廝兒; 對人的蔑稱 小孩兒 廝爲賤役之通稱 又使也

白拈賊; 略稱白拈 白 空無之義 拈 以指取物 卽手不持刃等之物 而以指尖盜拈 更不留盜之形跡 稱爲白拈賊 指賊手之最巧者 一說 白爲白晝之意 卽在大白天 衆目睽之下 機巧迅捷 盜取物品 亦指賊手之巧 於禪林中 轉指宗師家接引學人時之機巧迅捷

 

오위명(吳偉明)(宗杲禪師法嗣)

오위명(吳偉明)은 자가 원소(元昭)며 소무(邵武) 사람이다. 진헐(眞歇; 淸了)을 오래 참()했고 자용삼매(自用三昧)를 얻어 극치(極致)로 삼았다. 일찍이 화엄범행품(華嚴梵行品)을 발()하고는 스스로 말하되 범행품에서 오입처(悟入處)가 있다. 대혜(大慧)가 이를 보고 웃으며 가로되 차인(此人)은 다만 저() 무범행(無梵行)을 오득(悟得)했을 따름이니 이미 사사(邪師)가 면문(面門; 面部)을 인파(印破)해버림을 입었다. 운문(雲門; 대혜)이 만약 본다면 모름지기 힘을 다해(盡力) 그를 구제하겠다. 위명(偉明)이 드디어 장락(長樂)에 이르렀고 대중 따라 입실하자 혜왈(慧曰) ()이 깨친 바의 것은 영가(永嘉; 玄覺)가 이른 바 활달(豁達)한 공()이라 하여 인과(因果)를 제거(除去; )하면 망망탕탕(莾莾蕩蕩)하여 앙화(殃禍)를 초래함일 뿐이다. 드디어 범행품 중 잘못 증거(證據處)한 곳을 당기고() 가로되 만약 여기에 의해 인증(引證)해 이르기를 무범행(無梵行)이 이 진범행(眞梵行)이라 한다면 곧 이는 대반야(大般若)를 비방함인지라 지옥에 들어가기가 화살을 쏨과 같으리라. 또 지금 제방(諸方)의 사설(邪說)은 각각 스스로 말하되 무상도(無上道)를 얻었다 하면서 기호만한(欺胡謾漢)하나니 고인의 입도인연(入道因緣)을 가지고 허망하게 천착(穿鑿)을 낸다. 또 일반(一般)이 있어 좌주처(座主處)에서 단판(短販)을 짓고 일언반구(一言半句)를 탁득(逴得; 초월해 획득)하여 호미(狐媚; 알씬거리며 아양을 부림)로 농속(聾俗; 세속을 愚昧하게 함)한다. 임제(臨濟)가 가로되 일반(一般)의 할독병(瞎禿兵)이 있어 교승(敎乘) 중을 향해 의탁(意度)하고 상량(商量)함을 취해 구의(句義)를 이루니 시괴자(屎塊子; 똥 덩어리. 는 조사)를 가져다 입 속에 머금고는 도리어 토해 다른 사람에게 줌과 같다. ()이 이를 듣고 마음에 의심했다. 당만(當晚)에 입실하자 대혜가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를 들고 물었다. 겨우 답하려고 하는데 대혜가 바로 때렸다. 드디어 머물며 자참(咨參)했다. 어느 날 대혜가 가로되 기량(伎倆; 技倆과 같음)을 보임()을 쓰지() 말고 바로() 모름지기 쵀지절박지단(啐地折嚗地斷)해야 비로소 생사에 적득(敵得; 對敵)한다. 만약 다만 기량을 보이기만 한다면 무슨(; 저본에 로 지었음) 마칠 기약이 있으리오. 곧 고별하고 떠났다. 연평(延平)의 도차(道次; 道路邊)에서 홀연히 계오(契悟)했다. 몇 송()을 연서(連書)하여 대혜에게 기탁했는데 모두 실중(室中)에서 물은 바의 것이다. 말함이 있되(有曰) 불시심(不是心)이며 불시불(不是佛)이며 불시물(不是物)이여/ 온몸(通身)이 일천(一串; 한 꿰미)의 금쇄골(金鎻骨)이다/ 조주가 노남천(老南泉)을 친견하여/ 진주(鎭州)에 나복(蘿蔔; )이 나온다고 말할 줄 알았다. 대혜가 게로 증명해 가로되 통신(通身; 온몸)이 일천(一串; 한 꿰미)의 금쇄골(金鎻骨)이여/ (; )히 인천(人天)에게 궤칙이 되어 준다/ 임제 소시아(小廝兒)를 알고자 한다면/ 바로 이 당년(當年)의 백념적(白拈賊)이다.

眞歇; 청료(淸了; 1089-1151)니 송대 조동종 승. 단하자순(丹霞子淳)의 법사(法嗣). 좌면 안창(사천) 사람이며 속성은 옹()이며 휘()는 청료(淸了)며 도호(道號)는 진헐(眞歇)이며 또 명칭이 적암(寂庵). 11세에 성과사 청준에게 의지해 출가했으며 처음엔 법화(法華)를 배웠고 18세에 구족계를 받았고 성도(成都) 대자사에 들어가 원각경과 금강경 등을 배웠음. 등주(鄧州; 河南) 단하산(丹霞山)에 이르러 자순(子淳)을 참알(參謁)해 개오(開悟)하고 득증(得證)했으며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선화 4년 진주(眞州) 장로(長蘆)에 주지(主持)했고 건염 4(1130) 설봉사에 입주(入主; 들어가 主持)했고 소흥(紹興) 15(1145) 능인흥성만수선사에 주()했으며 21년 숭선현효선원에 주()했으며 같은 해 10월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63이며 승랍(僧臘)45며 시호는 오공선사(悟空禪師). 저서는 신심명염고(信心銘拈古) 1권ㆍ일장록(一掌錄) 등과 문인(門人)이 편집(編集)한 장로료화상겁외록(長蘆了和尙劫外錄) 1권임 [진헐청료선사어록. 보등록9. 오등회원14. 속전등록17].

永嘉; 현각(玄覺; 665-713)이니 당대승. 온주(溫州) 영가(永嘉; 浙江에 위치)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대(), ()는 명도(明道), 호는 영가현각(永嘉玄覺). 8세에 출가하여 3()을 널리 탐구했으며 특히 천태지관(天台止觀)에 정통했음. 뒤에 온주(溫州)의 용흥사(龍興寺) 곁 바위 아래 스스로 선암(禪庵)을 구축(構築)하고 독거하며 학문을 연마했는데 늘 선관(禪觀)을 닦았음. 우연히 좌계현랑(左溪玄朗)의 격려로 인해 드디어 유방(遊方)할 뜻을 일으켜 동양현책(東陽玄策)과 함께 유방하며 도를 찾았음. 운양(韻陽)에 이르렀을 때 조계혜능(曹溪慧能)을 알현(謁見)했으며 혜능과 서로 문답하고 그 인가(印可)를 얻었음. 혜능이 그를 머물러 일숙(一宿)케 했는데 다음날 곧 용흥사(龍興寺)로 돌아간지라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일숙각(一宿覺)이라 했음. 그 후 학자가 복주(輻湊)하였으며 호가 진각대사(眞覺大師). 현랑(左溪)이 글을 주어 산서(山棲)로 그를 초대하자 스님이 복서(覆書; 편지의 회답. 返信)하고 사퇴(辭退)했음. 선천(先天) 2(713. 一說開元二年 혹은 先天元年) 1017일에 부좌(趺坐; 책상다리)하고 입적했으니 나이는 49. 무상대사(無相大師)란 시호(諡號)를 주었으며 탑은 가로되 정광(淨光). 증도가(證道歌) 1()을 지었는데 범승(梵僧)이 천축으로 돌아가 전하자 그곳에서 다 흠앙(欽仰)하며 제목하기를 동토(東土)의 대승경(大乘經)이라 했음. 또 선종오수원지(禪宗悟修圓旨) 10() 및 관심십문(觀心十門)ㆍ영가집(永嘉集) 10권을 지었는데 모두 세상에 왕성히 전함 [송고승전8. 불조역대통재13. 불조통기10. 전등록5. 오등회원2].

莾莾蕩蕩; 망망탕탕(莽莽蕩蕩)과 같음. 우활(迂闊; 곧바르지 아니하고 에돌아서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한 모양.

短販; 결근단량(缺斤短兩)의 소판(小販). 곧 교역 중에 고의(故意)로 상품의 중량 혹 수량을 감소(減少)하여 정당하지 못한 이익을 모취(牟取; 追求)하는 탄판(攤販; 露店商).

禿兵; 승인에 대해 가리키며 욕하는 말. (禿)은 머리카락이 없음임(곧 대머리). 경중에서 파계하여 행위가 없는 비구를 가리켜() 독인(禿人)이라고 일컬으며 또 이르되 독거사라 함. 그가 비록 머리를 깎았으나 출가사문의 행위가 없기 때문에 단지 이 머리털 없는 속인이며 머리털 없는 거사일 뿐임.

狗子無佛性; 종용록 제18. 중이 조주에게 묻되 개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조주가 이르되 있다. 중이 이르되 이미 있다면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이 피대(皮袋; 가죽 자루)에 치고 들어갔습니까. 조주가 이르되 그가 알면서도 짐짓 범했기(知而故犯) 때문이다. 또 어떤 중이 묻되 개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조주가 가로되 없다. 중이 이르되 일체중생이 다 불성이 있거늘 개는 무엇 때문에 도리어 없습니까. 조주가 이르되 그가 업식이 있기 때문이다.

啐地折嚗地斷; 돌연히 절단됨. 당하에 오입(悟入)하여 선법을 영오(頓領)함을 은유로 가리킴. 쵀지(啐地)와 박지(嚗地)는 모두 상성사(象聲詞)니 병렬(迸裂; 破裂)하는 소리.

小廝兒; 사람에 대한 멸칭(蔑稱)이니 소해아(小孩兒; 어린이). ()는 천역(賤役)의 통칭이 됨. 또 사(使).

白拈賊; 약칭이 백념(白拈). ()은 비어서 없음의 뜻이며 념()은 손가락으로 물건을 취함임. 곧 손에 칼 등의 물건을 가지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 훔쳐 집어내면서 다시 훔침의 형적을 남기지 않음을 일컬어 백념적이라 함. 적수(賊手)의 가장 교묘한 자를 가리킴. 일설엔 백()은 백주의 뜻이 되며 곧 대백천(大白天; 백주 대낮)에 중인의 눈이 노려보는 아래에서 기교(機巧)가 신첩(迅捷; 빠름)하여 물품을 훔침이니 또한 적수(賊手)의 교묘함을 가리킴. 선림 중에선 전()하여 종사가가 학인을 접인할 때의 기교가 신첩함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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