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峰和尙禪要 底本 卍新續藏 第 70 冊
侍 者 持 正 錄
參學直翁居士 洪喬祖 編
開堂普說
僧問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龐居士恁麽道 還有爲人處也無 師云有 進云 畢竟在那一句 師云 從頭將問來 進云 如何是十方同聚會 師云 龍蛇混雜 凡聖交參 進云 如何是箇箇學無爲 師云 口吞佛祖 眼蓋乾坤 進云 如何是選佛場 師云 東西十萬 南北八千 進云 如何是心空及第歸 師云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進云 恁麽則言言見諦 句句朝宗 師云 你甚處見得 僧喝 師云 也是掉棒打月 進云 此事且止 只如西峰今日 十方聚會 選佛場開 畢竟有何祥瑞 師云 山河大地 萬象森羅 情與無情 悉皆成佛 進云 旣皆成佛 因甚學人不成佛 師云 你若成佛 爭敎大地成佛 進云 畢竟學人過在甚麽處 師云 湘之南潭之北 進云 還許學人懺悔也無 師云 禮拜著 僧纔拜 師云 獅子咬人 韓獹逐塊 師乃豎拂 召大衆云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怜悧漢 若向者裏見得 便見龐居士安身立命處 旣見龐居士安身立命處 便見從上佛祖安身立命處 旣見佛祖安身立命處 便見自己安身立命處 旣見自己安身立命處 不妨向者裏拗折拄杖 高掛鉢囊 三條椽下 七尺單前 咬無米飯 飮不濕羮 伸脚打眠 逍遙度日 若是奴郞不辨 菽麥不分 抑不得已 按下雲頭 向虗空裏 書一本上大人 敎諸人依㨾畫猫兒去也
●高峰和尙禪要; 全稱高峰原妙禪師禪要 一卷 宋代臨濟宗僧原妙(1238-1295)撰 侍者持正錄 元代洪喬祖編 收於卍續藏第一二二冊 收錄開堂普說 示衆法語 除夜小參 書等 揭示參禪學道之旨要 本書之注釋書有朝鮮僧白坡亙璇所撰之高峰和尙禪要私記一卷
●居士; <梵> gṛha-pati 梵云迦羅越 伽羅越 此云長者 家主 家長 指印度四姓中吠舍種之富豪 或在家有道之士 經律典籍中 常稱吠舍種之富豪爲居士 佛敎中之居士 常與古來所稱之長者混同 如慧遠之維摩義記一末 居士有二 一廣積資産 居財之士名爲居士 二在家修道 居家道士名爲居士 後者卽爲佛敎中之居士 如印度之維摩賢護等常修佛道之在家菩薩 及支那梁代傅大士 北魏劉謙之 唐代李通玄等 能通佛道之在家者 今則泛指在家修道之男子爲居士 亦有稱女在家修道之女子爲居士者 在支那居士一詞原出於禮記玉藻篇 於韓非子一書中 亦謂有任矞華仕等居士 皆指頗有道藝而不求仕宦之處士 其後 支那與韓國日本多不依經律所說之本意 而泛稱有道之處士爲居士 [首楞嚴經義疏註一 法華經演義七之一 祖庭事苑三 大佛頂首楞嚴經六 十誦律六 維摩經文疏九] ▲祖庭事苑三 居士 凡具四德 乃稱居士 一不求仕宦 二寡欲蘊德 三居財大富 四守道自悟 又菩薩行經云 有居財之士 居家之士 居法之士 居朝居山之士 通名居士也
●開堂; 禪院新任住持 始初上堂說法稱作開堂 ▲祖庭事苑八 開堂 開堂迺譯經院之儀式 每歲誕節 必譯新經上進 祝一人之壽 前兩月 二府皆集 以觀飜譯 謂之開堂 前一月 譯經使潤文官又集 以進新經 謂之開堂 今宗門命長老住持演法之初 亦以謂之開堂者 謂演佛祖正法眼藏 上祝天筭 又以爲四海生靈之福 是亦謂之開堂也
●普說; 禪家之說法也 禪師上法堂升法座 爲大衆說法 稱爲普說 ▲百丈淸規證義記五 普說起止之儀 與小參彷彿 小參唯住持說 語須直截 類於上堂 普說語有多種不同 住持說者 或遇告香 或夏前告香 或中夏 或特爲某事 或因請開示 或爲求決疑 或爲行者說 或警策於學者 或激揚於古道 故文長義足 名普說也 抑或命人人各說 隨其語言 而勘辯之
●無爲; 無造作之意 有爲之對稱 卽非由因緣所造作 離生滅變化而絶對常住之法 又作無爲法 原是涅槃之異名 後世更於涅槃以外 立種種無爲 於是産生三無爲六無爲九無爲等諸說 ▲道德經觀妙章第一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道德經無爲章第三十七 道常無爲而無不爲 ▲道德經第四十八日損章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矣 ▲易繫辭上 易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祖庭事苑六 無爲 華嚴疏主云 爲 作也 作卽生滅 寂寞沖虛 湛然常住無彼造作 故名無爲 又瑜伽云 無生滅不繫屬因緣 是名無爲 又智論云 無得故名曰無爲 又淨名云 不墮數故(上文竝出華嚴經疏二十四)
●龐居士; 龐蘊(?-808) 唐代著名在家禪者 世稱龐居士 龐翁 衝州衡陽縣人 字道玄 世以儒爲業 而居士少悟塵勞 志求眞諦 唐貞元(785-805)初 謁石頭希遷忘言會旨 復與丹霞天然爲友 後之江西參問馬祖云 不與萬法爲侶者 是什麽人 祖云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居士言下頓領玄要 乃留駐參承經涉二載 元和(806-820)中 北遊襄漢 隨處而居 或鳳嶺鹿門 或廛肆閭巷 初住東巖 後居郭西小舍 居士將入滅 州牧于公問疾次 居士謂曰 但願空諸所有 愼勿實諸所無 好住世間皆如影響 言訖枕公膝而化 有詩偈三百餘篇傳於世 [傳燈錄八 佛祖綱目三十二 居士傳十七]
●恁麽; 這 這樣 如此 其類似用語有與麽 什麽 漝麽 甚麽 怎麽 作麽等
●進云; 進 奉獻 送上 進云者 禪家問答的記錄用語 表示問話者繼續向禪師提問
●悄然; 與寂然同義 悄 寂靜無聲 字彙 悄 靜也
●諦; 一眞實不虛之義 言眞實之道理不虛妄也 如俗事虛妄之道理 名爲俗諦 涅槃寂靜之道理 名爲眞諦 見此諦理者爲聖者 不然爲凡夫 [大日經疏八 義林章二末 二諦義上] 二細察 仔細
●朝宗; 禪家轉義契合禪宗旨意 朝 訪也 見也 一臣見君 二下屬見上官 三子媳向父母 宗 諸侯夏天朝見天子之禮 周禮 春見曰朝 夏見曰宗
●喝; 許葛切 (一)叱咤之聲音 唐代以後 禪師常以大喝破除學人之謬見邪執 或發於言語思慮所不及之際 按古尊宿語錄一 百丈曾受馬祖大寂禪師一喝 或卽爲用喝之起源 按臨濟錄 臨濟之喝有四種作用 有時一喝如金剛王寶劍(截破名相言句之執著拘礙) 有時一喝如踞地金毛獅子(破小機小見) 有時一喝如探竿影草(驗定學人或勘辨師家) 有時一喝則不作一喝用(指收歸一切 具有各種作用而未作用之向上一喝) 此卽所謂臨濟四喝 但若不知其用而喝 則稱爲胡喝亂喝 此種應機接物之法 其後成爲臨濟宗風 [宗門統要續集九臨濟條 人天眼目三] (二)卽唱之意 禪林中用之 喝參卽告知自己已來到 喝散卽宣告解散大衆 喝火指就寢前點檢各寮 以防火災
●棒; 禪錄多指拄杖 棒 步項切 棍也 棓也 又用棍棒打 廣韻 棒 打也
●且止; 且 發辭也 又只也 却也 禪宗典籍中常用且字 如且住(暫且停止) 且莫(暫且莫要 或作罷之意) 且道(試說看) 且如(例如) 且說(轉語詞) 且置(暫且擱置)等語 其用法與語意竝無一定
●無情; 無情識者 謂山川草木等
●湘之南潭之北; 唐書地理志三十一江南道曰 潭州長沙郡 (中略)縣六 長沙 湘潭 湘鄕 益陽 醴陵 瀏陽 又一統志六十三湖廣長沙府曰 晉永嘉初於此置湘州 (中略)劉宋復爲長沙國 (中略)隋廢長沙郡置潭州 (中略)領縣十二 (中略)湘潭縣(云云) 按此 湘州潭州是一州異名 又湘潭縣一縣名 今言湘之南潭之北 但一湘潭縣分字言之也 [虛堂錄犂耕] ▲宗門拈古彙集六 國師因涅槃時至乃辭代宗帝 帝曰 師滅度後弟子將何所記 師曰 告檀越與老僧造個無縫塔 帝曰 請師塔樣 師良久曰 會麽 帝曰 不會 師曰 貧道去後 有侍者應眞却諳此事 乞詔問之 後代宗詔應眞入內問前語 眞良久曰 聖上會麽 帝曰 不會 眞乃述偈曰 湘之南潭之北 中有黃金充一國 無影樹下合同船 琉璃殿上無知識
●懺悔; 止觀七曰 懺名陳露先惡 悔名改往修來 然懺爲梵語懺摩之略 而非漢語 故台宗之子弟不取之 ▲金光明經文句記三 懺悔二字 乃雙擧二音 梵語懺摩 華言悔過 ▲寄歸傳二 舊云懺悔 非關說罪 何者 懺摩乃是西音 自當忍義 悔乃東夏之字 追悔爲目 懺之與忍 迥不相干
●韓獹逐塊; 韓獹 乃戰國時代産於韓國之名犬 又作韓盧逐塊 狂狗逐塊 癡犬逐塊 原意謂向犬投土塊 犬竟誤認土塊爲食物 遂追逐之 轉指禪徒竝無自己眞正見解 僅於言句上詮解 或執著於事物之形迹 捕捉枝葉末節等 而欲了達事物之眞相 可謂徒勞無功 ▲大般若經五百六十九 譬如有人塊擲師子 師子逐人而塊自息 菩薩亦爾 但斷其生而死自滅 犬唯逐塊不知逐人 塊終不息 外道亦爾 不知斷生終不離死
●拂; 拂子 用以撣塵拂蟲之具 禪師說法時常持之 ▲毘奈耶雜事六 佛在廣嚴城獼猴池側高閣堂中 時諸比丘爲蚊蟲所食身體患痒 抓搔不息 俗人見已 問曰 聖者何故如是 以事具答 彼言 聖者何故不持拂蚊子物 答言 世尊不許 以緣白佛 佛言 我今聽諸苾芻畜拂蚊子物 是時六衆聞佛許已 便以衆寶作柄 犛牛尾爲其拂 俗人旣見 此是何物 答言 佛令苾芻畜拂蚊子物 是故我持 彼言 聖者仁雖剃髮 貪染未除 以緣白佛 佛言 有五種祛蚊子物 一者撚羊毛作 二用麻作 三用細裂氎布 四用故物 五用樹枝梢 若用寶物 得惡作罪
●安身立命; 又作安心立命 卽安立身命之意 亦卽盡人事行道 竝隨順天命而安住其心 不爲一切外物所動
●拄杖; 又作柱杖 主杖 祖庭事苑八 拄杖 佛在鷲峰山 有老苾芻登山上下 脚跌倒地 佛言 應畜拄杖 聞佛許已 六衆卽便以金銀雜綵等物 雕飾其杖 俗旅嫌賤 苾芻白佛 佛言 苾芻有二種緣應畜拄杖 一爲老瘦無力 二爲病苦嬰身 又制大小不得過麤指 正如今禪家游山拄杖 或乘危涉險 爲扶力故 以杖尾細怯 遂存小枝許 串鐵永者是也 行脚高士多携麤重堅木 持以自衒 且曰 此足以禦宼防身 往往愚俗必謂禪家流固當若是 豈不薄吾佛之遺訓乎
●鉢囊; 又作鉢袋 鉢絡 絡囊 盛裝鉢盂(應量器) 以便於攜行之囊袋 ▲四分律五十二 手捉鉢 難護持 佛言 聽作鉢囊盛 不繫囊口 鉢出 佛言 應繩繫 手捉鉢囊 難護持 佛言 應作帶絡肩
●三條椽下 七尺單前; 僧堂之床 每人之座位橫占三尺許 其頭上之椽有三條 因指禪床曰三條椽下 於其下坐禪者 稱爲三條椽下客 又禪堂貼己名單之坐床 謂之單位 又其床前之板謂之單 闊八寸 據周尺故爲一尺 謂之單板一尺 而床闊六尺 加以單板一尺則爲七尺 謂之七尺單前 若除單板則爲六尺 謂之六尺單前
●打眠; 睡眠 打 前綴
●奴郞不辨; 奴僕與主人 都不能分辨 喩參學者不知自心是佛 自我爲主 却向外尋覓成佛之道 將種種言敎施設 權宜法門 認作佛法 郞 奴僕對主人的尊稱
●菽麥不分; 左傳十三成十八年曰 周子有兄而無惠 不能辨菽麥 註 菽 大豆也 豆麥殊形易別 故以爲癡者之候 [虛堂錄犂耕]
●上大人; 是中國傳統兒童識字課本的開篇句(上大人 孔乙己 化三千 七十士……)
●依㨾畫猫兒; 㨾 同樣 猫兒 兒 後綴 依㨾畫猫兒 與依樣畵葫蘆同義 比喩單純模仿 沒有絲毫獨創獨革新
개당보설(開堂普說)
승문(僧問) 시방(十方)이 함께 취회(聚會)하여/ 개개(箇箇)가 무위(無爲)를 배운다/ 여기는 이 선불장(選佛場)이니/ 마음이 공(空)해야 급제(及第)하여 돌아간다. 방거사(龐居士)가 이렇게(恁麽) 말함은 도리어 위인(爲人)하는 곳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운(師云) 있다. 진운(進云) 필경 어느(那) 1구(句)에 있습니까. 사운 첫머리(頭)로 좇아 물어 가지고 오느라. 진운 무엇이 이 시방이 함께 취회함입니까. 사운 용사(龍蛇)가 혼잡(混雜)하고 범성(凡聖)이 교참(交參; 서로 섞임)했다. 진운 무엇이 이 개개가 무위를 배움입니까. 사운 입이 불조(佛祖)를 삼켰고 눈이 건곤(乾坤)을 덮었다(蓋). 진운 무엇이 이 선불장입니까. 사운 동서가 십만이며 남북이 팔천이다. 진운 무엇이 이 마음이 공해야 급제하여 돌아감입니까. 사운 동용(動容; 動作의 容儀)에 고로(古路)를 드날리고 초연(悄然)한 기(機)에 떨어지지 않는다. 진운 이러하다면(恁麽) 곧 언언(言言)에서 견체(見諦)하고 구구(句句)에서 조종(朝宗)할 것입니다. 사운 네가 어느 곳(甚處)에서 봄을 얻었느냐. 중이 할(喝)했다. 사운 또한 이는 몽둥이(棒)를 흔들어 달을 때림이다. 진운 차사(此事)는 차지(且止; 그만 둠)하고 지여(只如; 예를 듦) 서봉(西峰)에 금일 시방이 취회(聚會)하여 선불장(選佛場)이 열렸으니 필경 어떤 상서(祥瑞)가 있습니까. 사운 산하대지, 만상삼라(萬象森羅), 정(情)과 무정(無情)이 모두 다 성불했다. 진운 이미 모두 성불했다면 무엇으로(甚) 인해 학인은 성불하지 못했습니까. 사운 네가 만약 성불했다면 어찌(爭) 대지(大地)로 하여금 성불하게 하겠는가. 진운 필경 학인의 허물이 어느 곳(甚麽處)에 있습니까. 사운 상의 남이며 담의 북이다(湘之南潭之北). 진운 도리어 학인의 참회(懺悔)를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예배하거라(禮拜著). 중이 겨우 예배하자 사운 사자(獅子)는 사람을 물고 한로는 흙덩이를 쫓아간다(韓獹逐塊). 스님이 이에 불자(拂子; 拂)를 세우고(豎) 대중을 부르며 이르되 여기는 이 선불장(選佛場)이니 마음이 공해야 급제하여 돌아간다. 영리한(怜悧漢)이 만약 이 속(者裏)을 향해 봄을 얻는다면 바로(便) 방거사의 안신입명(安身立命)한 곳을 볼 것이며 이미 방거사의 안신입명한 곳을 보았다면 바로 종상(從上) 불조(佛祖)의 안신입명한 곳을 볼 것이며 이미 불조의 안신입명한 곳을 보았다면 바로 자기의 안신입명하는 곳을 볼 것이며 이미 자기의 안신입명하는 곳을 보았다면 이 속(者裏)을 향해 주장(拄杖)을 요절(拗折)하고 발낭(鉢囊)을 고괘(高掛; 높이 걸다)하고 삼조연하(三條椽下) 칠척단전(七尺單前)에서 무미반(無米飯)을 씹고(咬) 불습갱(不濕羮; 축축하지 않는 국)을 마시고 발 뻗고 타면(打眠)하면서 소요(逍遙)하며 날을 지내려니와(度) 만약 이 노랑을 분변하지 못하고(奴郞不辨) 숙맥을 분별하지 못한다면(菽麥不分) 다시(抑; 助詞로도 씀) 부득이하여 운두(雲頭; 頭는 조사)를 안하(按下; 눌러 내림)하여 허공 속을 향해 일본(一本)의 상대인(上大人)을 서사(書寫; 書)하여 제인(諸人)으로 하여금 양식(樣式)에 의해 묘아(猫兒; 고양이. 兒는 조사)를 그려(依㨾畫猫兒) 가게 하겠다.
●高峰和尙禪要; 전칭이 고봉원묘선사선요(高峰原妙禪師禪要)니 1권. 송대 임제종승 원묘(原妙; 1238-1295)가 지었고 시자 지정(持正)이 기록했고 원대 홍교조(洪喬祖)가 편(編)했음. 만속장 제122책에 수록되었음. 개당보설(開堂普說)ㆍ시중법어(示衆法語)ㆍ제야소참(除夜小參)ㆍ서(書) 등을 수록했으니 참선학도(參禪學道)의 지요(旨要)를 보였음. 본서의 주석서로는 조선승 백파긍선(白坡亙璇)이 지은 바의 고봉화상선요사기 1권이 있음.
●居士; <범> gṛha-pati. 범어로 이르되 가라월(迦羅越)ㆍ가라월(伽羅越)은 여기에선 이르되 장자ㆍ가주ㆍ가장임. 인도 4성(姓) 중의 폐사종(吠舍種)의 부호를 가리킴. 혹은 재가하면서 도가 있는 남자임. 경률의 전적 가운데 늘 폐사종의 부호를 일컬어 거사라 함. 불교 중의 거사는 늘 고래로 일컫는 바의 장자와 혼동함. 예컨대(如) 혜원의 유마의기1말에 거사에 2이 있다. 1은 자산을 광대하게 쌓은 거재지사(居財之士)를 이름해 거사라 하고 2는 재가하면서 수도하는 거가도사(居家道士)를 이름해 거사라 한다 했는데 후자가 곧 불교 중의 거사가 됨. 예컨대(如) 인도의 유마나 현호(賢護) 등은 늘 불도를 닦는 재가 보살이며 및 지나(支那)의 양대(梁代)의 부대사ㆍ북위의 유겸지(劉謙之)ㆍ당대의 이통현(李通玄) 등은 불도에 능통한 재가자임. 지금은 곧 널리 재가하면서 수도하는 남자를 가리켜 거사라 함. 또한 여인을 호칭하여 재가하면서 수도하는 여자를 거사라 함이 있음. 지나에 있어서 거사라는 일사(一詞)는 원래 예기(禮記) 옥조편(玉藻篇)에 나옴. 한비자 일서(一書) 중에도 또한 이르기를 임율(任矞)과 화사(華仕) 등의 거사가 있다 했음. 모두 자못 도예(道藝)가 있으나 사환(仕宦; 벼슬)을 구하지 않는 처사를 가리킴. 그 후 지나 한국과 일본에선 다분히 경률에서 설한 바의 본의에 의하지 않고 도가 있는 처사를 널리 일컬어 거사라 함 [수릉엄경의소주1. 법화경연의7지1. 조정사원3. 대불정수릉엄경6. 십송률6. 유마경문소9]. ▲조정사원3. 거사(居士) 무릇 4덕을 갖춰야 이에 거사라고 일컬음. 1은 사환(仕宦; 벼슬)을 구하지 않으며 2는 욕심이 적고 덕을 쌓으며 3은 거재(居財; 거처하는 집과 재물)가 대부며 4는 도를 지켜 스스로 깨침임. 또 보살행경에 이르되 거재지사(居財之士)ㆍ거가지사(居家之士)ㆍ거법지사(居法之士)ㆍ거조거산지사(居朝居山之士; 조정에 거처하거나 산에 거처하는 거사)가 있나니 통명(通名)이 거사다.
●開堂; 선원의 신임 주지가 처음으로 상당하여 설법함을 일컬어 개당이라 함. ▲조정사원8. 개당(開堂). 개당은 곧 역경원의 의식이다. 매세(每年) 탄절(誕節; 임금이나 妃. 또는 聖人의 생일을 높여 부르는 말. 탄생절)에 반드시 번역한 신경(新經)을 상진(上進; 진상)하여 1인(천자)의 장수를 축원하였다. 2달 전에 2부(府)가 다 모여 번역을 보는 것을 이를 일러 개당이며 1달 전에 역경사와 윤문관이 또 모여 신경(新經)을 진상하는 것을 이를 일러 개당이라 한다. 여금에 종문에서 장로나 주지를 임명하여 법을 연설하는 처음을 또한 따라서 이를 일러 개당이라 하는 것은 이르자면 불조의 정법안장을 연설하고 위로 천산(天筭; 筭은 나이 산. 곧 천자의 나이)을 축원하고 또 사해 생령(생명. 생민)의 복을 삼나니 이 또한 이를 일러 개당이다.
●普說; 선가의 설법임. 선사가 법당에 올라가 법좌에 올라 대중을 위해 설법함을 일컬어 보설이라 함. ▲백장청규증의기5. 보설(普說)의 기지(起止)의 의식(儀式)은 소참과 방불하다. 소참은 오직 주지가 설하고 말이 직절(直截)을 쓰며 상당과 유사하다. 보설은 말이 여러 종류가 있어 같지 못하다. 주지가 설하는 것은 혹 고향(告香)을 만나거나 혹 하전(夏前)의 고향ㆍ혹 중하(中夏)ㆍ혹 어떤 일을 특별히 위하거나 혹 청으로 인해 개시하거나 혹 결의(決疑)를 구함을 위하거나 혹 행자를 위해 설하거나 혹 학자를 경책하거나 혹 고도(古道)를 격양(激揚)함인지라 고로 글이 길고 뜻이 풍족하나니 이름이 보설이다. 또한 혹 여러 사람에게 명하여 각기 설하게 하면 그 어언을 따라 그것을 감변(勘辯)한다.
●無爲; 조작이 없음의 뜻이니 유위의 대칭임. 곧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된 바가 아닌,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여읜 절대상주(絶對常住)의 법임. 또 무위법으로 지으며 원래 이것은 열반의 다른 이름임. 후세에 다시 열반의 밖에 갖가지 무위를 세워 이에 3무위ㆍ6무위ㆍ9무위 등의 여러 설을 산생(産生)했음. ▲도덕경 관묘장 제1. 이런 가닭으로 성인은 무위지사(無爲之事)에 처하면서 불언(不言)의 교를 행한다. ▲도덕경 무위장 제37. 도는 늘 무위이면서 하지 않음이 없다. ▲도덕경 제48 일손장. 학(學)을 하면 날로 더하고(益) 도(道)를 하면 날로 더나니(損)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르면 무위이면서 하지 못함이 없다. ▲역(易) 계사상(繫辭上). 역(易)은 무사(無思)며 무위(無爲)니 적연(寂然)하여 부동(不動)하면서 감응하여 드디어 천하의 고(故. 事. 萬事)에 통한다. 천하의 지신(至神)이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하겠는가. ▲조정사원6. 무위(無爲) 화엄소주(華嚴疏主. 澄觀)가 이르되 위(爲)는 작(作)이며 작(作)은 곧 생멸이다. 적막(寂寞)하고 충허(沖虛. 沖은 빌 충)하여 담연(湛然)히 상주(常住)하며 저 조작(造作)이 없으므로 고로 이름이 무위다. 또 유가(瑜伽)에 이르되 생멸이 없고 인연에 계속(繫屬)하지 않나니 이 이름이 무위다. 또 지론(智論)에 이르되 얻음이 없는 고로 이름해 가로되 무위다. 또 정명(淨名. 維摩詰經)에 이르되 수(數)에 떨어지지 않는 연고라 하였다(위의 글은 모두 華嚴經疏24에 나옴).
●龐居士; 방온(龐蘊; ?-808)임. 당대의 저명한 재가선자(在家禪者)니 세칭이 방거사ㆍ방옹(龐翁). 형주 형양현 사람이며 자가 도현(道玄). 가세(家世)가 유교로 업을 삼았으며 거사가 어릴 적에 진로(塵勞)를 깨달아 의지(意志)가 진제(眞諦)를 구했음. 당 정원(785-805) 초 석두희천(石頭希遷; 靑原行思의 法嗣)을 알현하여 언설을 잊고 지취를 알았으며 다시 단하천연(丹霞天然; 石頭希遷의 法嗣)과 벗이 되었음. 후에 강서로 가서 마조(馬祖)를 참알하고 물어 이르되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가 이르되 네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마셔 없앰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리라. 거사가 언하에 현요(玄要)를 문득 알았음. 이에 머물면서 참문(參問)하고 승수(承受)하며 두 해를 지냈음. 원화(80 6-820) 중에 북쪽 양한(襄漢)에 노닐면서 곳을 따라 거처했으니 혹은 봉령(鳳嶺)ㆍ녹문(鹿門)이며 혹은 전사(廛肆; 시장의 가게)ㆍ여항(閭巷)이었음. 처음에 동암(東巖)에 거주하고 뒤에 곽서(郭西)의 작은 집이었음. 거사가 장차 입멸하려 하자 주목(州牧)인 우공(于公; 于頔)이 문질(問疾. 문병)하던 차에 거사가 일러 가로되 단지 모든 있는 것을 공하기를 원하고 삼가 모든 없는 것을 실답다 하지 말지니 세간에 머물기 좋아함이 다 그림자와 곡향(谷響)과 같다. 말을 마치자 우공의 무릎을 베개로 하여 화거(化去)했음. 시게(詩偈) 300여 편이 있어 세상에 전함 [전등록8. 불조강목32. 거사전17].
●恁麽; 저(這)ㆍ저양(這樣; 이 모양)ㆍ여차(如此)니 그와 유사한 용어에 여마ㆍ십마ㆍ습마ㆍ심마ㆍ즘마ㆍ작마 등이 있음.
●進云; 진(進)은 봉헌. 송상(送上). 진운(進云)이란 것은 선가문답의 기록용어니 문화자(問話者)가 계속 선사를 향해 제문(提問)함을 표시함.
●悄然; 적연(寂然)과 같은 뜻. 초(悄)는 적정하고 소리가 없음임. 자휘 초(悄) 정(靜)이다.
●諦; 1. 진실불허(眞實不虛)의 뜻. 말하자면 진실한 도리가 허망하지 않음임. 예컨대(如) 속사(俗事)의 허망한 도리를 이름하여 속제(俗諦; 諦의 慣音이 제)며 열반의 적정(寂靜)의 도리를 이름하여 진제(眞諦)니 이 체리(諦理)를 본 자는 성자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범부가 됨 [대일경소8. 의림장2말. 이체의상]. 2. 자세히 관찰함(細察). 자세(仔細).
●朝宗; 선가에서 전의(轉義)하여 선종의 지의(旨意)에 계합(契合)함. 조(朝)는 방(訪)임. 현(見)임. 1. 신(臣)이 군(君)을 뵘. 2. 하속(下屬)이 상관을 뵘. 3. 자식(子媳; 아들과 며느리)이 부모를 향함. 종(宗)은 제후가 하천(夏天; 여름철)에 천자를 조현(朝見)하는 예(禮). 주례 봄에 뵘을 가로되 조(朝)며 여름에 뵘을 가로되 종(宗)이다.
●喝; 허갈절(許葛切; 할)임. (1). 질타(叱咤)의 성음(聲音)이니 당대 이후 선사들이 늘 대할(大喝)로 학인의 유견사집(謬見邪執)을 파제(破除)하거나 혹 언어와 사려가 미치지 않는 바의 제애(際涯)를 계발(啓發)했음. 고존숙어록1을 안험컨대 백장이 일찍이 마조대적선사(馬祖大寂禪師)의 1할(喝)을 받았는데 혹 곧 용할(用喝)의 기원(起源)이 됨. 임제록을 안험컨대 임제의 할(喝)에 4종의 작용이 있으니 어떤 때의 1할(喝)은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과 같고(名相言句의 집착과 拘礙를 截破함) 어떤 때의 1할은 거지금모사자(踞地金毛獅子)와 같고(小機小見을 타파함) 어떤 때의 1할은 탐간영초(探竿影草)와 같고(학인을 驗定하거나 혹 師家를 勘辨함) 어떤 때의 1할은 곧 부작일할용(不作一喝用; 1할의 용을 짓지 않음)이다(일체를 收歸함이니 각종 작용을 갖추고 있으되 작용하지 않는 향상의 1할을 가리킴). 이것이 소위 임제의 4할임. 다만 그 용을 알지 못하고 할하면 곧 일컬어 호할난할(胡喝亂喝)이라 함. 이런 종류의 응기접물(應機接物)의 법은 그 후에 임제종풍을 이루었음 [종문통요속집9임제조. 인천안목3]. (2). 곧 창(唱)의 뜻이니 선림 중에서 이를 씀. 할참(喝參)은 자기가 이미 내도(來到)했음을 고지함이며 할산(喝散)은 곧 대중을 해산함을 선고함이며 할화(喝火)는 취침 전 각료(各寮)를 점검하며 화재를 방지함을 가리킴.
●棒; 선록에서 다분히 주장자를 가리킴. 방(棒)은 보항절(步項切; 방)이니 곤(棍; 몽둥이. 곤장)임. 부(棓; 몽둥이)임. 또 곤봉을 사용해 때림임. 광운(廣韻) 방(棒) 때림이다.
●且止; 차(且)는 발사(發辭)임. 또 지(只)임. 각(却)임. 선종 전적 중에 차자(且字)를 상용함. 예컨대(如) 차주(且住; 暫且 정지)ㆍ차막(且莫; 暫且 莫要, 罷의 뜻을 지음)ㆍ차도(且道; 시험삼아 설해 보라)ㆍ차여(且如; 例如)ㆍ차설(且說; 轉語詞)ㆍ차치(且置; 暫且 擱置) 등의 말임. 그 용법과 의의는 모두 일정함이 없음
●無情; 정식(情識)이 없는 것이니 이르자면 산천초목 등.
●湘之南潭之北; 당서지리지31 강남도(江南道)에 가로되 담주(潭州) 장사군(長沙郡) (중략) 현(縣)이 여섯이니 장사ㆍ상담(湘潭)ㆍ상향ㆍ익양ㆍ예릉ㆍ유양이다. 또 일통지63 호광(湖廣) 장사부(長沙府)에 가로되 진(晉) 영가(永嘉) 초 여기에 상주(湘州)를 설치했다 (중략) 유송(劉宋)에서 다시 장사국(長沙國)으로 삼았다 (중략) 수(隋)에서 장사군(長沙郡)을 폐하고 담주(潭州)를 설치했다 (중략) 영현(領縣)이 12이다 (중략) 상담현(湘潭縣) (운운). 이것을 안험컨대 상주(湘州)와 담주(潭州)는 이 1주(州)의 다른 이름임. 또 상담현(湘潭縣)은 1현의 이름임. 여금에 말한 상지남담지북(湘之南潭之北)은 단지 1상담현(湘潭縣)을 분자(分字)하여 이를 말한 것임 [허당록이경]. ▲종문염고휘집6. 국사가 열반할 때가 이름으로 인해 이에 대종제(代宗帝)에게 고별했다. 제(帝)가 가로되 스님이 멸도한 후 제자는 무엇을 가져 기억할 바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단월에게 고하노니 노승에게 무봉탑을 조성해 주십시오. 제가 가로되 스님에게 탑양(塔樣)을 청합니다. 스님이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아십니까. 제가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스님이 가로되 빈도(貧道)가 떠난 후 시자 응진(應眞)이 있어 도리어 이 일을 압니다. 구걸하오니 조서로 그에게 물으십시오. 후에 대종이 응진을 불러 입내(入內)케 하고 전어(前語)를 물었다. 응진이 양구하고 가로되 성상은 아십니까. 제가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응진이 이에 게를 진술해 가로되 상의 남쪽이며 담의 북쪽(湘之南潭之北)이니/ 가운데 황금이 있어 일국을 채운다/ 무영수 아래에서 배를 합동하니/ 유리전(琉璃殿) 위에 지식이 없다.
●懺悔; 지관7에 가로되 참(懺)은 이름이 선악(先惡)을 진로(陳露)함이며 회(悔)는 이름이 개왕수래(改往修來; 과거를 고쳐서 미래를 닦음)다. 그러나 참(懺)은 범어 참마(懺摩; 梵 kṣama)의 약칭이며 한어(漢語)가 아니다. 고로 천태종의 자제들은 이를 취하지 않는다. ▲금광명경문구기3. 참회(懺悔) 2자는 곧 2음을 쌍거(雙擧)했다. 범어 참마(懺摩)는 화언으로 회과(悔過)다. ▲기귀전2. 구역(舊譯)에 이른 참회(懺悔)는 설죄(說罪)와 상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참마(懺摩)는 곧 이 서음(西音)이며 스스로 인(忍)의 뜻에 상당한다. 회(悔)는 동하(東夏)의 글자니 추회(追悔)로 명목한다. 참(懺)과 인(忍)은 멀어서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韓獹逐塊; 한로(韓獹)는 곧 전국시대(戰國時代) 한국(韓國)에서 산출되던 명견임. 또 한로축괴(韓盧逐塊)ㆍ광구축괴(狂狗逐塊)ㆍ치견축괴(癡犬逐塊)로 지음. 원래의 뜻으로 이르자면 개를 향해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마침내 흙덩이를 오인하여 음식물로 삼아 드디어 그것을 추축(追逐)함. 전(轉)하여 선도(禪徒)가 자기의 진정한 견해는 모두 없고 다만 언구상에서 전해(詮解)하거나 혹 사물의 형적(形迹)에 집착하여 지엽(枝葉)과 말절(末節) 등을 포착(捕捉)하여 사물의 진실상을 요달하려고 함을 가리킴이니 가위(可謂) 헛수고만 하고 공로가 없음. ▲대반야경569. 비여(譬如) 어떤 사람이 흙덩이를 사자에게 던지면 사자가 사람을 쫓으므로 흙덩이는 저절로 쉬어진다.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 단지 그 생(生)을 끊으므로 사(死)가 저절로 멸(滅)한다. 개는 오직 흙덩이를 쫓고 사람을 쫓을 줄 알지 못하므로 흙덩이는 마침내 쉬지 못한다. 외도(外道)도 또한 그러하여 생을 끊을 줄 알지 못하므로 마침내 사를 여의지 못한다.
●拂; 불자(拂子)니 먼지를 털거나 벌레를 떨치는 데 사용하는 도구. 선사가 설법할 때 늘 이것을 가짐. ▲비나야잡사6. 불타가 광엄성의 미후지(獼猴池) 옆 고각당(高閣堂) 가운데 계셨다. 때에 모든 비구가 모기에게 먹히는 바가 되어 신체가 가려움이 우환이었으며 긁음을 쉬지 않았다. 속인이 보고 나서 물어 가로되 성자(聖者)가 무슨 연고로 이와 같습니까. 사실을 갖추어 답했다. 그가 말하되 성자는 무슨 연고로 모기를 떨치는 물건을 가지지 않습니까. 답해 말하되 세존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사연을 불타에게 사뢰자 불타가 말씀하시되 내가 이제 청허(聽許; 허락)하나니 모든 필추(苾芻)는 모기를 떨치는 물건을 수용(受容; 畜)하라. 이때 육중(六衆; 六群比丘)이 불타의 허락을 들은 다음 바로 뭇 보물로써 자루를 만들고 이우(犛牛; 犛는 검정소 리, 모)의 꼬리로 그 불자를 만들었다. 속인이 이미 보고는 이것이 이 무슨 물건입니까. 답해 말하되 불타가 필추로 하여금 모기를 떨치는 물건을 수용하게 하셨다. 이런 고로 내가 가졌다. 그가 말하되 성자가 어질어(仁) 비록 머리를 깎았으나 탐염(貪染; 탐하여 오염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사연을 불타에게 사뢰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5종의 모기를 물리치는 물건이 있다. 1자는 양모를 꼬아서 만든다. 2는 삼을 써서 만든다. 3은 가늘게 찢은 첩모(氎布; 氎은 모직물)로 만든다. 4는 낡은 물건을 쓴다. 5는 나뭇가지의 끝(梢는 나무 끝 초)을 쓴다. 만약 보물을 쓰면 악작죄(惡作罪)를 얻는다.
●安身立命; 또 안심입명(安心立命)으로 지음. 곧 신명을 안립함의 뜻. 또한 곧 인사(人事)를 다해 행도(行道)하고 아울러 천명(天命)에 수순(隨順)하여 그 마음에 안주하면서 일체의 외물(外物)에 동요되는 바가 되지 않음임.
●拄杖; 또 주장(柱杖)ㆍ주장(主杖)으로 지음. 조정사원8 주장(拄杖) 불타가 취봉산(鷲峯山; 鷲는 독수리 취)에 계셨다. 어떤 늙은 필추(苾芻)가 등산하여 올라가서 내려오다가 발이 미끄러져 땅에 자빠졌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응당 주장자(拄杖子; 子는 조사)를 수용(受容; 畜은 受容할 축)하라. 불타의 허락을 들은 다음 6중(衆)이 곧 바로 금은(金銀)과 잡채(雜綵; 綵는 비단 채) 등의 물건으로써 그 지팡이에 새기고 장식(裝飾)했다. 세속의 무리가 천박(淺薄)함을 혐오(嫌惡)하자 필추가 불타에게 사뢰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필추가 두 가지 인연이 있어 응당 주장자를 수용(畜)한다. 1은 늙고 여위어 힘이 없음이며 2는 병고(病苦)가 몸에 걸림이다(以上의 인연은 毘奈耶雜事六에 나옴). 또 제계(制戒)하여 대소(大小; 크고 작음. 크기)가 굵은 손가락을 지남을 얻지 못하게 했다. 바로 여금(如今)에 선가(禪家)가 유산(游山)하는 주장자이다. 혹은 위험을 타거나 험난을 건너면서 힘을 도우기 위한 연고이다. 지팡이 끝이 가늘고 약하여 드디어 작은 가지만큼 두고 쇠를 꿰어 길게 한 것이 이것이다. 행각하는 고사(高士; 高潔한 사람)가 많이들 굵고 무겁고 단단한 나무를 휴대(携帶)하여 가지고서 스스로 자랑하면서 단지 가로되 이것은 족히 도적을 막고 몸을 방어함에 쓰는 것이다 하매 왕왕(往往) 어리석은 속인(俗人)이 반드시 이르기를 선가류(禪家流)가 진실로 이와 같음이 마땅하다 하나니 어찌 우리 불타의 유훈(遺訓)을 경박(輕薄)히 여김이 아니겠는가.
●鉢囊; 또 발대(鉢袋)ㆍ발락(鉢絡)ㆍ낙낭(絡囊)으로 지음. 발우(응량기)를 성장(盛裝; 담다)하여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한 낭대(囊袋; 주머니). ▲사분율52. 손으로 발우를 가지매 호지(護持)하기 어려웠다. 붙타가 말씀했다. 발낭(鉢囊)을 만들어 담는 것을 청허한다. 발낭의 입구를 묶지 않자 발우가 튀어나왔다. 불타가 말씀했다. 응당 끈으로 묶고 손으로 발낭을 잡아라. 호지하기 어려웠다. 불타가 말씀하셨다. 응당 대(帶)를 만들어 어깨에 두르라.
●三條椽下 七尺單前; 승당의 상은 매 사람의 좌위(座位)가 가로로 3척 가량 점유하고 그 머리 위의 서까래가 3조(條) 있는지라 인하여 선상을 가리켜 가로되 삼조연하라 하고 그 아래에서 좌선하는 자를 일컬어 삼조연하객이라 함. 또 선당(禪堂)에 자기의 명단을 붙이는 좌상을 일컬어 단위(單位)라 하고 또 그 상 앞의 판(板)을 일컬어 단(單)이라 하는데 너비가 8촌(寸)이며 주척(周尺)에 의거하는 고로 1척이 되며 이를 일러 단판일척(單板一尺)이라 함. 상의 너비 6척에 단판 1척을 더하면 곧 7척이 되므로 이를 일러 칠척단전이라 함. 만약 단판을 제하면 곧 6척이 되며 이를 일러 육척단전이라 함.
●打眠; 수면. 타(打)는 전철(前綴; 접두사).
●奴郞不辨; 노복과 주인을 모두 능히 분변하지 못함. 참학자가 자심이 이 부처며 자아가 이 주인인 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밖을 향해 성불할 도를 찾으면서 갖가지 언교의 시설과 권의(權宜)의 법문을 가지고, 인정해 불법으로 삼음에 비유함. 랑(郞)은 노복이 주인에 대한 존칭.
●菽麥不分; 좌전13 성(成) 18년에 가로되 주자(周子)에게 형이 있었는데 지혜가 없어 능히 숙맥(菽麥)을 분변하지 못했다. 주(註) 숙(菽)은 대두(大豆; 콩)다. 콩과 보리는 형상이 달라 구별하기 쉬운지라 고로 어리석은 자의 징후(徵候)로 삼는다 [허당록이경].
●上大人; 이는 중국 전통 아동식자과본(兒童識字課本)의 개편구(開篇句; 上大人 孔乙己 化三千 七十士……)
●依㨾畫猫兒; 양(㨾)은 양(樣)과 같음. 묘아(猫兒)의 아(兒)는 후철(後綴; 접미사). 의양화묘아(依㨾畫猫兒)는 의양화호로(依樣畵葫蘆)와 같은 뜻. 단순히 모방하고 실터럭만큼의 독창(獨創)이나 독창의 혁신이 있지 않음에 비유함.
山僧昔年在雙徑歸堂 未及一月 忽於睡中 疑著萬法歸一 一歸何處 自此疑情頓發 廢寢忘餐 東西不辨 晝夜不分 開單展鉢 屙屎放尿 至於一動一靜 一語一默 總只是箇一歸何處 更無絲毫異念 亦要起絲毫異念 了不可得 正如釘釘膠粘 撼搖不動 雖在稠人廣衆中 如無一人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澄澄湛湛 卓卓巍巍 純淸絕點 一念萬年 境寂人忘 如癡如兀 不覺至第六日 隨衆在三塔諷經次 擡頭忽覩五祖演和尙眞 驀然觸發日前仰山老和尙問拖死屍句子 直得虗空粉碎 大地平沈 物我俱忘 如鏡照鏡 百丈野狐 狗子佛性 靑州布衫 女子出定話 從頭密擧 驗之無不了了 般若妙用 信不誣矣
●山僧; 猶云山野僧 謙辭也
●開單; 一齋食時 啓開鉢袋(鉢囊)而置鉢單於自己座位前之行爲 鉢單 鉢下之敷具 橫一尺豎八寸之布 古時或以厚紙製作 二就寢時 欲臥而開眠單 此指一
●釘釘; 一反復地以釘釘物 釘 以釘釘物 二釘 專注地看 注視 此指一
●卓卓巍巍; 高超出衆貌
●五祖演; 法演(?-1104) 北宋楊岐派僧 綿州巴西(四川綿陽)人 俗姓鄧 年三十五始出家受具足戒 遊學成都 習百法 唯識諸論 究其奧義 後投白雲守端禪師 參究精勤 遂廓然徹悟 受印可 尋依命分座 開示來衆 初住四面山 後還遷白雲山 次住太平 次住海會 更遷蘄州五祖山(東山)東禪寺 徽宗崇寧三年六月二十五日上堂辭衆 淨髮澡身而示寂 壽八十餘 世稱五祖法演 法嗣頗多 以佛眼淸遠 太平慧懃 圜悟克勤最著 有法演下三佛之稱 [法演禪師語錄序 五燈會元十九 聯燈會要十六 釋氏稽古略四]
●仰山老和尙; 祖欽(?-1287) 宋代楊岐派僧 婺州(今浙江金華)人 號雪巖 世稱雪巖祖欽禪師 五歲時爲沙彌 十六歲得度 先後參雙林寺短篷遠 妙峰之善 淨慈寺滅翁文禮 復至徑山參無準師範禪師(楊岐下八世) 後嗣其法 寶祐元年(1153) 出住潭州龍興寺 歷住湘西道林寺 浙江南明佛日禪寺 仙居護聖禪寺 光孝禪寺 江西仰山禪寺 凡六大寺 帝賜紫衣 名震一時 元世祖至元二十四年示寂 壽七十餘 著有雪巖和尙語錄四卷 [五燈會元續略五 五燈全書四十九 續釋氏稽古略一]
●拖死屍; 祖庭嫡傳指南下 天目高峯原妙禪師 巖忽問阿誰與你拖箇死屍來 聲未絕 便打出 如是不知其幾 一日少林忌辰 隨衆詣三塔諷經次 忽擡頭覩五祖演和尙眞讚曰 百年三萬六千朝 返覆元來是者漢 驀然打破拖死屍之疑 時年二十四矣
●百丈野狐; 古尊宿語錄一百丈懷海 師每日上堂 常有一老人聽法 隨衆散去 一日不去 師乃問 立者何人 老人云 某甲於過去迦葉佛時曾住此山 有學人問 大修行底人 還落因果也無 對云 不落因果 墮在野狐身 今請和尙代一轉語 師云 汝但問 老人便問 大修行底人還落因果也無 師云 不昧因果 老人於言下大悟 告辭師云 某甲已免野狐身 住在山後 乞依亡僧燒送 師令維那白槌告衆 齋後普請送亡僧 大衆不能詳 至晩參 師擧前因緣次 黃檗便問 古人錯對一轉語 落在野狐身 今人轉轉不錯是如何 師云 近前來 向汝道 黃檗近前打師一掌 師云 將謂胡鬚赤 更有赤鬚胡
●狗子佛性; 從容錄第十八則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有 僧云 旣有 爲甚麽卻撞入這箇皮袋 州云 爲他知而故犯 又有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曰 無 僧云 一切衆生皆有佛性 狗子爲什麽卻無 州云 爲伊有業識在 ◆佛性; 佛者覺悟也 一切衆生皆有覺悟之性 名爲佛性 性者不改之義也 通因果而不改自體是云性 ▲涅槃經二十七 一切衆生悉有佛性 如來常住無有變易 ▲涅槃經二十八 欲見佛性 應當觀察時節形色
●靑州布衫; 碧巖錄第四十五則 僧問趙州 萬法歸一 一歸何處 州云 我在靑州 作一領布衫 重七斤
●女子出定; 祖庭事苑五 女人定 諸佛要集經(下) 文殊尸利欲見佛集 不能得到 諸佛各還本處 文殊尸利到諸佛集處 有一女人近彼佛坐 入三昧 文殊尸利入 禮佛足已 白佛言 云何此女人得近佛坐 而我不得 佛告文殊尸利 汝覺此女人 令從三昧起 汝自問之 文殊尸利卽彈指覺之 而不可覺 以大聲喚 亦不可覺 捉手牽 亦不可覺 又以神足動三千大千世界 猶亦不覺 文殊尸利白佛言 我不令覺 是時佛放大光明 照下方世界 是中有一菩薩名棄諸蓋(經文作棄諸陰蓋) 卽時從下方來到佛所 頭面禮足 一面而立 佛告棄諸蓋菩薩 汝覺此女人 卽時彈指 此女從三昧起 文殊尸利白佛 以何因緣 我動三千大千世界 不能令此女起 棄諸蓋菩薩一彈指 便從三昧起 佛告文殊尸利 汝因此女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 是女人因棄諸蓋菩薩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是故汝不能令覺 ○頌家謂網明菩薩 乃傳燈錄(二十七)所載 未詳桉何經論 撿藏乘不見所出
●般若; <梵> Prajna 又作波若 般羅若 鉢剌若 此翻爲慧 智慧 明 黠慧 菩薩爲達彼岸 必修六種行 亦卽修六波羅蜜 其中之般若波羅蜜(智慧波羅蜜) 卽稱爲諸佛之母 成爲其他五波羅蜜之根據 [解脫道論九分別慧品 梁粱譯攝大乘論中 大智度論四十三 同七十二]
산승(山僧)이 석년(昔年; 과거의 해)에 쌍경(雙徑; 雙徑寺)에 있으면서 귀당(歸堂; 僧堂으로 복귀)했다. 한 달에 이르지 아니하여 홀연히 수중(睡中)에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거니와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萬法歸一 一歸何處)를 의착(疑著)했다. 이로부터(自此) 의정(疑情)이 문득 일어나(發)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동서를 분변하지 못하고 주야를 분별하지 못했다. 개단전발(開單展鉢)하고 아시방뇨(屙屎放尿; 똥 누고 오줌 내보냄)하고 일동일정(一動一靜)과 일어일묵(一語一默)에 이르기까지 모두(總) 다만 시개(是箇)의 일귀하처(一歸何處)였고 다시 실 터럭(絲毫)만큼의 이념(異念)이 없었고 또한 실 터럭만큼의 이념(異念)을 일으키려고 해도 마침내(了) 불가득이었으니 바로(正) 못으로 박고(釘釘) 아교(阿膠; 膠)로 붙인(粘; 붙일 점) 듯하여(如) 감요(撼搖; 흔들다)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비록 조인광중(稠人廣衆; 사람이 많은 장소) 가운데 있더라도 마치 한 사람도 없음과 상사(相似)했다. 아침으로 좇아 저녁에 이르고 저녁으로 좇아 아침에 이르도록 징징담담(澄澄湛湛; 매우 맑은 모양)하고 탁탁외외(卓卓巍巍)하고 순청절점(純淸絕點; 순전히 맑아 점이 끊어짐)하고 일념만년(一念萬年; 일념이 萬年)이었으며 경적인망(境寂人忘; 경계가 고요하고 사람을 잊음)하고 여치여올(如癡如兀; 兀은 無知)하였다. 불각에 제6일에 이르렀는데 대중 따라 삼탑(三塔)에 있으면서 풍경(諷經)하던 차에 머리를 들매(擡) 홀연히 오조연(五祖演; 法演) 화상의 진(眞; 肖像)이 보였다(覩). 맥연(驀然; 갑자기)히 일전(日前)의 앙산노화상(仰山老和尙; 祖欽)이 물은 타사시(拖死屍; 죽은 시체를 끌다)의 구자(句子; 子는 조사)를 촉발(觸發)했고 바로(直) 허공이 분쇄되고 대지가 평침(平沈; 沈沒)하고 물아(物我)를 모두(俱) 잊음을 얻었으니 거울이 거울을 비춤과 같았다. 백장야호(百丈野狐)ㆍ구자불성(狗子佛性)ㆍ청주포삼(靑州布衫)ㆍ여자출정화(女子出定話)를 첫머리(頭)로 좇아 가만히(密) 들어(擧) 그것을(之) 시험하매 요료(了了)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반야(般若)의 묘용(妙用)은 참으로(信) 속이지 않는다.
●山僧; 산야승(山野僧)이라고 이름과 같음. 겸사임.
●開單; 1. 재식(齋食) 시에 발대(鉢袋; 발낭)를 열어 발단(鉢單)을 자기의 좌위 앞에 두는 행위임. 발단은 발우 아래의 부구(敷具)니 가로가 1척 세로가 8촌의 베임. 옛적에 혹 두꺼운 종이로 제작하기도 했음. 2. 취침 시 눕고자 하여 면단(眠單)을 엶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釘釘; 1. 반복하며 못으로 물건을 박음. 정(釘)은 못으로 물건을 박음임. 2. 정(釘)은 전념(專念)하여 주의해 봄(專注地看). 주시(注視).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卓卓巍巍; 높이 초월해 무리를 벗어난 모양.
●五祖演; 법연(法演; ?-1104)이니 북송 양기파승. 면주 파서(巴西; 사천 면양) 사람이며 속성은 등(鄧). 나이 35에 비로소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음. 성도(成都)에 유학(遊學)하여 백법(百法)과 유식(唯識) 여러 논을 익히며 그 오의(奧義)를 연구했음. 후에 백운수단선사(白雲守端禪師)에게 투신해 참구하며 정근(精勤)했으며 드디어 휑하게 철오(徹悟)했고 인가(印可)를 받았음. 이윽고 명령에 의해 분좌(分座)하여 내중(來衆)에게 개시(開示)했음. 처음엔 사면산(四面山)에 주(住)했고 뒤에 백운산(白雲山)으로 돌아와 옮겼음. 다음에 태평(太平)에 주(住)했고 다음에 해회(海會)에 주(住)했고 다시 기주(蘄州) 오조산(五祖山; 東山) 동선사(東禪寺)로 옮겼음. 휘종(徽宗) 숭녕 3년 6월 25일에 상당하여 대중에게 고별하고 머리를 세정(洗淨)하고 몸을 씻고 시적했으니 나이는 80 남짓. 세칭이 오조법연(五祖法演)임. 법사(法嗣)가 파다(頗多)하지만 불안청원(佛眼淸遠)ㆍ태평혜근(太平慧懃)ㆍ원오극근(圜悟克勤)이 가장 저명하여 법연하(法演下)의 3불(佛)이란 칭호가 있음 [법연선사어록서. 오등회원19. 연등회요16. 석씨계고략4].
●仰山老和尙; 조흠(祖欽; ?-1287)이니 송대 양기파승. 무주(지금의 절강 금화) 사람이며 호가 설암(雪巖)이며 세칭 설암조흠선사(雪巖祖欽禪師)임. 5세에 사미가 되었고 16세에 득도(得度)했음. 선후로 쌍림사의 단봉원ㆍ묘봉지선ㆍ정자사의 멸옹문례를 참알(參謁)했고 다시 경산(徑山)에 이르러 무준사범선사(無準師範禪師; 양기하 8세)를 참했으며 후에 그의 법을 이었음. 보우 원년(1153) 출세하여 담주 용흥사에 주(住)했고 상서 도림사ㆍ절강 남명 불일선사ㆍ선거 호성선사ㆍ광효선사ㆍ강서 앙산선사(仰山禪寺), 무릇 여섯의 큰 사원을 역주(歷住; 經歷하며 住持)했음. 황제가 자의(紫衣)를 주었으며 명성이 일시에 진동(震動)했음. 원 세조 지원 24년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70여. 저서에 설암화상어록(雪巖和尙語錄) 4권이 있음 [오등회원속략5. 오등전서49. 속석씨계고략1].
●拖死屍; 조정적전지남하 천목고봉원묘선사(天目高峯原妙禪師). 암(巖; 雪巖祖欽)이 홀연히 묻되 누가(阿誰) 너와 더불어 이(箇) 사시(死屍)를 끌고(拖) 왔느냐. 소리가 끊어지기도 전에 바로 때리고 쫓아내었다. 이와 같음이 그 얼마인지(幾)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소림기신(少林忌辰)에 대중 따라 삼탑(三塔)으로 나아가 풍경(諷經)하던 차에 홀연히 머리를 들매(擡) 오조연(五祖演) 화상의 진찬(眞讚)이 보였는데(覩) 가로되 백 년 삼만육천조(三萬六千朝)에 반복하는 게 원래 이 자한(者漢; 이 놈)이다. 갑자기(驀然) 타사시(拖死屍)의 의심을 타파했다. 당시의 나이 24였다.
●百丈野狐; 고존숙어록1 백장회해(百丈懷海). 스님이 매일 상당(上堂)하매 늘 한 노인이 있어 청법(聽法)하고 대중을 따라 흩어지더니 어느 날 가지 않자 스님이 이에 묻되 선 자는 어떤 사람인가. 노인이 이르되 모갑(某甲)은 과거 가섭불(迦葉佛) 때 일찍이 이 산에 거주했는데 어떤 학인(學人)이 묻되 크게 수행한 사람도 도리어 인과에 떨어집니까 또는 아닙니까. 대답해 이르되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 했는데 들여우(野狐)의 몸에 떨어졌습니다. 이제 화상에게 청하오니 일전어(一轉語)를 대체하십시오. 스님이 이르되 네가 다만 물어라. 노인이 곧 묻되 크게 수행한 사람도 도리어 인과에 떨어집니까 또는 아닙니까. 스님이 이르되 인과에 매(昧. 어두울 매)하지 않는다(不昧因果). 노인이 언하(言下)에 대오했다. 스님에게 고별(辭)하며 이르되 모갑이 이미 들여우의 몸을 면해 산 뒤에 머물러 있습니다. 망승(亡僧; 죽은 승려)의 소송(燒送. 화장하여 전송함)에 의하기를 구걸(求乞)합니다. 스님이 유나(維那)를 시켜 백추(白槌)하여 대중에게 알리게 했다. 재(齋. 정오 이전의 식사) 한 후에 보청(普請)하여 망승을 전송(餞送)할 것입니다. 대중이 능히 상세히 알지 못했다. 만참(晩參)에 스님이 앞의 인연을 들던 차에 황벽(黃檗; 黃檗希運)이 곧 묻되 고인이 1전어(轉語)를 잘못 대답해 들여우의 몸에 떨어져 있었습니다만 지금 사람이 전전(轉轉)히 그릇되지 않으면 곧(是) 어떻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를 향해 말하리라. 황벽이 앞으로 가까이 가서 스님을 일장(一掌) 갈겼다. 스님이 이르되 장차 오랑캐 수염이 붉다 하렸더니 다시 붉은 수염 오랑캐가 있구나.
●狗子佛性; 종용록 제18칙. 중이 조주에게 묻되 개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조주가 이르되 있다. 중이 이르되 이미 있다면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이 피대(皮袋; 가죽 자루)에 치고 들어갔습니까. 조주가 이르되 그가 알면서도 짐짓 범했기(知而故犯) 때문이다. 또 어떤 중이 묻되 개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조주가 가로되 없다. 중이 이르되 일체중생이 다 불성이 있거늘 개는 무엇 때문에 도리어 없습니까. 조주가 이르되 그가 업식이 있기 때문이다. ◆佛性; 불(佛)이란 것은 각오(覺悟)임. 일체중생이 모두 각오의 성이 있음을 이름해 불성임. 성(性)이란 것은 불개(不改)의 뜻이니 인과에 통하되 자체를 고치지 않나니 이를 이르되 성임. ▲열반경27.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으며 여래는 상주하여 변역(變易)이 있지 않다. ▲열반경28. 불성(佛性)을 보고자 한다면 응당 시절의 형색을 관찰하라.
●靑州布衫; 벽암록 제45칙. 중이 조주에게 묻되 만법이 일(一)로 돌아가거니와 일은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조주가 이르되 내가 청주(靑州)에 있으면서 한 벌의 베적삼(布衫)을 지었는데 무게가 7근이더라.
●女子出定; 조정사원5. 여인정(女人定) 제불요집경(下) 문수시리(文殊尸利)가 제불의 집회를 보고자 했으나 능히 도착함을 얻지 못했다. 제불이 각기 본처로 돌아가자 문수시리가 제불이 모인 곳에 도착했다. 한 여인이 있어 그 불타 가까이 앉아 삼매에 들었다. 문수시리가 들어가 불타 발에 예배한 다음 불타께 사뢰어 말하되 어찌하여 이 여인은 불타 가까이 앉음을 얻고 나는 얻지 못합니까. 불타가 문수시리에게 고하시되 네가 이 여인을 깨워 삼매로부터 일어나게 해서 네가 스스로 그에게 물어라. 문수시리가 곧 손가락을 퉁겨 그를 깨웠으나 가히 깨우지 못했다. 큰 소리로 불렀으나 또한 가히 깨우지 못했다. 손을 잡아 끌었으나 또한 가히 깨우지 못했다. 또 신족으로써 삼천대천세계를 움직였으나 오히려 또한 깨우지 못했다. 문수시리가 불타께 사뢰어 말하되 나는 깨게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때 불타가 대광명을 놓아 하방세계를 비추셨다. 이 가운데 한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이 기제개(棄諸蓋; 경문엔 棄諸陰蓋로 지어졌음)다. 즉시 하방으로부터 와서 불타 처소에 도착해 두면(頭面)으로 발에 예배하고 1면에 섰다. 불타가 기제개보살에게 고하시되 네가 이 여인을 깨워라. 즉시 손가락을 퉁기자 이 여자가 삼매로부터 일어났다. 문수시리가 불타께 사뢰되 무슨 인연으로써 내가 삼천대천세계를 움직여도 능히 이 여자를 일어나게 하지 못했거늘 기제개보살이 한 번 손가락을 퉁기매 곧 삼매로부터 일어났습니까. 불타가 문수시리에게 고하시되 너는 이 여인으로 인하여 처음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일으켰고 이 여인은 기제개보살로 인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켰으므로 이 연고로써 네가 능히 깨게 하지 못했느니라. ○송가(頌家)가 이른 망명보살은 이에 전등록(27)에 실린 바이지만 어떤 경론을 안험했는지는 미상이며 장승(藏乘)을 검교(撿校)했지만 나온 곳을 보지 못했음.
●般若; <범> Prajna. 또 파야(波若)ㆍ반라야(般羅若)ㆍ발랄야(鉢剌若)로 지음. 여기에선 혜(慧)ㆍ지혜ㆍ명(明)ㆍ힐혜(黠慧)로 번역함. 보살이 피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6종의 행을 닦는데 또한 곧 6바라밀을 닦음. 그 중의 반야바라밀(지혜바라밀)을 곧 일컬어 제불의 모(母)라 하며 기타의 5바라밀을 성취하는 근거임 [해탈도론9분별혜품. 양역섭대승론중. 대지도론43, 동72].
前所看無字 將及三載 除二時粥飯 不曾上蒲團 困時亦不倚靠 雖則晝夜東行西行 常與昏散二魔 輥作一團 做盡伎倆 打屛不去 於者無字上 竟不曾有一餉間省力 成片自決之後 鞠其病源 別無他故 只爲不在疑情上做工夫 一味只是擧 擧時卽有 不擧便無 設要起疑 亦無下手處 設使下得手疑得去 只頃刻間 又未免被昏散打作兩橛 於是空費許多光陰 空喫許多生受 略無些子進趣 一歸何處 却與無字不同 且是疑情易發 一擧便有 不待返覆思惟計較作意 纔有疑情 稍稍成片 便無能爲之心 旣無能爲之心 所思卽忘 致使萬緣不息而自息 六窓不靜而自靜 不犯纖塵 頓入無心三昧 忽遇喫粥喫飯處 管取向鉢盂邊摸著匙筯 不怕甕中走却鼈 此是已驗之方 決不相賺 如有一句誑惑諸人 自招永墮拔舌犂耕
●載; 爾雅云 夏曰歲 取歲行一次也 商曰祀 取四時祭祀一終也 周曰年 取禾熟之意 唐虞曰載 取物終更始之義 已上俱年也 [禪林寶訓音義]
●二時粥飯; 早朝粥與齋時飯 合稱粥飯
●蒲團; 以蒲草編織而成之圓形扁平坐具 乃僧人坐禪及跪拜時所用之物
●魔; 梵語魔羅之略 譯爲能奪命 障礙 擾亂 破壞等 害人命 障礙人之善事者 欲界之第六天主爲魔王 其眷屬爲魔民魔人
●打屛; 驅逐 除去
●一餉; 片刻 片時
●省力; 節省力氣 不費力氣
●打作兩橛; 分成兩段 謂對虛妄事物强作區分 橛 量詞 段
●光陰; 明亮與陰暗 白晝與黑夜 指日月的推移 後世卽用以表時間 [百度百科]
●六窓; 指六根 三藏法數二十一 六根[出首楞嚴經] 根卽能生之義 謂六根能生六識 故名六根 一眼根 謂眼能於色境 盡見諸色 瑜伽論云 能觀衆色是也 二耳根 謂耳能聽聞衆聲 瑜伽論云 數由此故 聲至能聞是也 三鼻根 謂鼻能齅聞香氣 瑜伽論云 數由此故 能齅於香是也 四舌根 謂舌能嘗於食味 瑜伽論云 能嘗衆味 數發言論是也 五身根 謂身爲諸根之所依止 瑜伽論云 諸根積聚是也 六意根 謂意於五塵境界 若好若惡 悉能分別也
●三昧; 玄應音義六 三昧 正言三摩地 此云等持 持諸功德也 或云正定 謂住緣一境 離諸邪亂也 舊云三摩提者訛也 ▲翻譯名義集四 三昧 此云調直定 又云正定 亦云正受 圭峰疏云 不受諸受 名爲正受
●管取; 包管 肯定 取 後綴
●鉢盂; 百丈淸規五辨道具 梵云鉢多羅 此云應量器 今略云鉢 又呼云鉢盂 卽華梵兼名
●相賺; 相 表示一方對另一方有所動作 如相訪 相煩等等
●拔舌; 拔舌地獄 作口業之惡者 所墮之地獄也
전에 간(看)하던 바 무자(無字)가 거의(將) 3재(載; 年)에 이르렀는데(及) 이시죽반(二時粥飯)을 제하고는 일찍이 포단(蒲團)에 오르지 않았고 피곤할 때도 또한 의고(倚靠; 기대다)하지 않았다. 비록 곧 주야(晝夜)에 동행서행(東行西行)했지만 늘 혼산(昏散; 昏沈과 散亂) 2마(魔)와 더불어 구르며(輥) 일단(一團; 한 덩어리)을 지었나니 진기량(盡伎倆; 온 기량. 伎倆은 技倆과 같음)을 지어(做) 타병(打屛; 쫓아냄)해도 가지 않았다. 이(者) 무자상(無字上; 上은 방면을 표시)에 마침내(竟) 일찍이 일향(一餉; 片刻) 간(間)의 생력(省力)이 있지 않았다. 일편(一片; 片)을 이루어 자결(自決; 스스로 決疑)한 후에 그 병원(病源)을 추궁(推窮; 鞠; 鞫과 통함)하매 달리 다른(他) 연고가 없었고 다만 의정상(疑情上)에 있으면서 공부(工夫)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爲). 일미(一味)로 다만 이 거(擧)하매 거(擧)할 때는 곧 있다가 거하지 않으면 바로 없었다. 설사(設使; 設) 기의(起疑)하려고 해도 또한 하수(下手; 著手)할 곳이 없었고 설사 손을 내림을 얻고(下得手) 의심함을 얻어 가더라도 다만 경각(頃刻) 사이라 또 혼산(昏散)으로 양궐을 지음을(打作兩橛) 면치 못했다. 이에 허다한 광음(光陰)을 공연히 허비하고(費) 공연히 허다한 생수(生受; 고통을 받음)를 받으면서(喫) 조금도(略) 사자(些子; 些少)의 진취(進趣)가 없었다. 일귀하처(一歸何處)는 도리어 무자(無字)와 부동(不同)했고 다만(且) 이는 의정(疑情)이 쉽게 일어나(發) 일거(一擧)하매 바로 있었으니 반복(返覆)하며 사유(思惟)하고 계교(計較; 헤아림)하여 작의(作意)함을 기다리지 않았다. 겨우(纔) 의정(疑情)이 있어 초초(稍稍; 조금씩. 점차)히 일편(一片; 片)을 이루어 바로(便) 능위(能爲)하는 마음이 없었다. 이미 능위하는 마음이 없으니 소사(所思; 사유하는 바)도 곧 잊어졌고(忘) 만연(萬緣)으로 하여금 쉬게(息) 하지 않아도 저절로 쉬어지고 6창(六窓)을 고요하게(靜) 하지 않아도 저절로 고요해짐에 이르렀다(致). 섬진(纖塵)도 범하지 않고 무심삼매(無心三昧)에 돈입(頓入)했고 끽죽끽반(喫粥喫飯)하는 곳을 홀연히 만나면 발우(鉢盂) 가를 향해 시저(匙筯; 숟가락과 젓가락)를 모착(摸著; 더듬다)함을 관취(管取; 肯定)했고 독 속에서 자라가 달아나버림을 두려워하지(怕) 않았다. 이것은 이 이미 경험(經驗; 驗)한 방법(方法; 方)이니 결정코 상잠(相賺; 속이다)하지 않는다. 1구(句)라도 제인(諸人)을 광혹(誑惑; 속여 미혹하게 함)함이 있을 것 같으면 영원히 발설(拔舌)에 떨어져(墮) 쟁기(犂; 음이 리)로 밭을 갊(耕)을 자초(自招)하리라.
●載; 이아(爾雅)에 이르되 하(夏)는 가로되 세(歲)라 했으니 세(歲; 歲星)가 1차 행함을 취했으며 상(商)은 가로되 사(祀)라 했으니 4시(時)에 한 번 제사하고 마침을 취했으며 주(周)는 가로되 연(年)이라 했으니 벼가 익음의 뜻을 취했으며 당우(唐虞)는 가로되 재(載)라 했으니 사물이 마치면 다시 시작함의 뜻을 취했다. 이상은 모두 연(年)이다 [선림보훈음의].
●二時粥飯; 조조(早朝)의 죽과 재시의 밥을 합칭해 죽반이라 함.
●蒲團; 포초(蒲草; 부들풀)로 편직(編織)하여 만든 원형이면서 편평(扁平; 납작하고 평평)한 좌구니 곧 승인이 좌선 및 궤배(跪拜)할 때 쓰는 바의 물건.
●魔; 범어 마라(魔羅; 梵 māra)의 약칭. 능히 목숨을 뺏다ㆍ장애ㆍ요란ㆍ파괴 등으로 번역함. 인명을 해치고 사람의 선사(善事)를 장애하는 자니 욕계의 제6천주가 마왕이 되고 그 권속은 마민(魔民)ㆍ마인(魔人)이 됨.
●打屛; 구축(驅逐; 쫓아냄). 제거.
●一餉; 편각(片刻). 편시(片時).
●省力; 역기(力氣)를 절생(節省; 절약해 줄임)함. 역기(力氣)를 소비하지 않음.
●打作兩橛; 나누어 양단(兩段)을 이룸. 허망한 사물을 상대로 억지로 구분을 지음. 궐(橛)은 양사니 단(段).
●光陰; 명량(明亮)과 음암(陰暗). 백주와 흑야. 일월의 추이를 가리킴. 후세에 곧 시간을 표시함에 사용했음 [백도백과].
●六窓; 육근(六根)을 가리킴. 삼장법수21. 육근(六根) [출수릉엄경] 근(根)은 곧 능생(能生)의 뜻이니 이르자면 6근(根)이 능히 6식(識)을 내는지라 고로 이름이 6근임. 1. 안근(眼根) 이르자면 눈(眼)이 능히 색경(色境)에 모두 제색(諸色)을 보나니 유가론(瑜伽論)에 이르되 능히 뭇 색(色)을 본다 한 게 이것임. 2. 이근(耳根) 이르자면 귀(耳)가 능히 뭇 소리를 청문(聽聞)하나니 유가론에 이르되 자주 이것을 말미암는 고로 소리가 이르면 능히 듣는다 한 게 이것임. 3. 비근(鼻根) 이르자면 코(鼻)가 능히 향기를 냄새 맡나니 유가론에 이르되 자주 이것을 말미암는 고로 능히 향기를 냄새 맡는다 한 게 이것임. 4. 설근(舌根) 이르자면 혀(舌)가 능히 식미(食味)를 맛보나니 유가론에 이르되 능히 뭇 맛을 맛보며 자주 언론(言論)을 발(發)한다 한 게 이것임. 5. 신근(身根) 이르자면 몸(身)이 제근(諸根)의 의지(依止)하는 바가 되나니 유가론에 이르되 제근이 적취(積聚)한다 한 게 이것임. 6. 의근(意根) 이르자면 뜻(意)이 5진(塵)의 경계에 좋거나 나쁘거나 모두 능히 분별함임.
●三昧; 현응음의6. 삼매(三昧) 바른 말로는 삼마지(三摩地; 梵 samādhi)니 여기에선 이르되 등지(等持)임. 모든 공덕을 등지함임. 혹은 이르되 정정(正定)이니 이르자면 한 경계에 인연을 머물러 모든 사란(邪亂)을 여읨임. 예전에 이른 삼마제(三摩提)는 그름. ▲번역명의집4. 삼매(三昧) 여기에선 이르되 조직정(調直定)이며 또 이르되 정정(正定)이며 또는 이르되 정수(正受)다. 규봉소(圭峯疏)에 이르되 모든 수(受)를 받지 않으므로 정수(正受)라고 이름한다.
●管取; 포관(包管; 보증하다. 보장하다). 긍정. 취는 후철.
●鉢盂; 백장청규5 판도구(辨道具). 범어로 이르되 발다라(鉢多羅)는 여기에선 이르되 응량기(應量器)다. 여금에 생략해 이르기를 발(鉢)이라 한다. 또 호칭해 이르기를 발우(鉢盂)라 함음 곧 화범(華梵)의 겸명(兼名)이다.
●相賺; 상(相)은 일방(一方)이 다른 일방에 대해 동작하는 바가 있음을 표시함. 예컨대(如) 상방(相訪)ㆍ상번(相煩) 등등.
●拔舌; 발설지옥(拔舌地獄)이니 구업의 악을 지은 자가 떨어지는 바의 지옥임.
現前學般若菩薩 必要明此一段大事 不憚山高水闊 得得來見西峰 況兼各各然指然香 立戒立願 礪齒磨牙 辦鐵石志 旣有如是操略 如是知見 切須莫負自己初心 莫負父母捨汝出家心 莫負新建僧堂檀信心 莫負國王大臣外護心 直下具大信去 直下無變異去 直下壁立萬仞去 直下依㨾𦘕猫兒去 𦘕來𦘕去 𦘕到結角羅紋處 心識路絕處 人法俱忘處 筆端下驀然突出箇活猫兒來 㘞 元來盡大地是箇選佛場 盡大地是箇自己
●菩薩; (一)具名菩提薩埵 舊譯爲大道心衆生 道衆生等 新譯曰大覺有情 覺有情等 謂是求道之大心人 故曰道心衆生 求道求大覺之人 故曰道衆生 大覺有情 又薩埵者勇猛之義 勇猛求菩提故名菩提薩埵 又譯作開士 始士 高士 大士等 義譯也 總名求佛果之大乘衆 [注維摩經一 大乘義章十四 法華玄贊二 佛地論二 淨名疏一] (二)對僧人的敬稱 此指(二)
●大事; 領悟禪法 超脫生死之事 禪家以此爲本分大事
●得得; 特地
●礪齒磨牙; 指磨利齒牙 伺機攫食 形容凶狠相 比喩人勤勉努力 不斷練磨自己
●檀信; 施主之信仰 檀越之信施 檀爲施與之義
●外護; 乃僧侶以外之在家人 如族親檀越等 爲佛敎所從事之種種善行 如供給僧尼衣食以助其安穩修行 或盡力援護佛法之弘通等 亦卽從外部以權力財富知識或勞力等 護持佛敎 竝掃除種種障礙以利傳道 從事以上諸行者 亦稱爲外護
●直下; 指卽時卽刻之意 與合下當下同義
●壁立萬仞; 壁 陟峭的山崖 如懸崖峭壁 壁立萬仞者 形容禪悟者明見自心 自我爲主 絶無依倚 超脫塵俗的氣槪與境界
●結角羅紋; 同羅紋結角 言布滿四周角落 意爲處處 事事 泛指一切事物
●心識; 祖庭事苑六 心識 順正理論(11)云 心意識三 體雖是一 而訓詞等義類有異也 謂集起故名心 思量故名意 了別故名識
●人法; 世俗觀念中的人(卽我)和外物 卽人執和法執
●箇; 一代詞 相當于這 那 二助詞 猶底 地 多用于雙音節形容詞之後
●㘞; 用同咄 表示用力之聲 正字通 㘞 一說梵言 㘞之一聲 㘞同咄 ▲玉篇 㘞 牽船聲 正字通 㘞 進船聲 ▲廬山蓮宗寶鑑十 此箇㘞字 一切世人 口中未嘗不說 喩如失物人忽然尋見 不覺發此一聲是㘞字也 宗門多言此字者 蓋尋師訪道之人 參究三二十年 忽然心花發現 會得此事 不覺㘞地一聲 如失物得見 慶快平生 是其字義也
현전(現前)의 반야를 배우는 보살(菩薩)은 이 일단(一段)의 대사(大事)를 밝힘이 필요(必要)하다. 산고수활(山高水闊)을 꺼리지(憚) 않고 득득(得得; 특별히) 와서 서봉(西峰; 原妙)을 상견(相見; 見)했다. 하물며 겸해 각각 연지연향(然指然香; 然은 燃과 통함)하고 입계입원(立戒立願)하고 려치마아(礪齒磨牙)하고 철석지(鐵石志)를 판비(辦備; 辦)했다. 이미 이와 같은 조략(操略), 이와 같은 지견(知見)이 있으니 간절히 꼭(切須) 자기의 초심(初心)을 저버리지 말고 부모가 너를 버려 출가하게 한 마음을 저버리지 말고 승당(僧堂)을 신건(新建)한 단신(檀信)의 마음을 저버리지 말고 국왕(國王)ㆍ대신(大臣)의 외호(外護)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말고 직하(直下; 즉각)에 대신(大信)을 갖추어 가고, 직하에 변이(變異)가 없이 가고, 직하에 벽립만인(壁立萬仞)하여 가고, 직하에 양식(樣式; 㨾)에 의해 묘아(猫兒; 고양이)를 그려(𦘕; 畫의 이체자) 가야 하나니 그려 오고 그려 가다가 그려 결각라문처(結角羅紋處), 심식(心識)의 길이 끊긴 곳, 인법(人法)을 모두(俱) 잊은 곳에 이르면 필단(筆端; 붓끝) 아래 맥연(驀然; 갑자기)히 저(箇) 활묘아(活猫兒)가 돌출(突出)해 오리라, 화(㘞), 원래 온 대지가 시개(是箇)의 선불장(選佛場)이며 온 대지가 시개(是箇)의 자기다.
●菩薩; (1). 갖춘 이름은 보리살타(菩提薩埵; 梵 bodhi- sattva). 구역(舊譯)으론 대도심중생(大道心衆生)ㆍ도중생(道衆生) 등이 되며 신역(新譯)은 가로되 대각유정(大覺有情)ㆍ각유정(覺有情) 등임. 이르자면 이는 구도하는 대심(大心)의 사람이므로 고로 가로되 도심중생(道心衆生)이며 도를 구하고 대각을 구하는 사람이므로 고로 가로되 도중생(道衆生)ㆍ대각유정(大覺有情)임. 또 살타란 것은 용맹의 뜻이니 용맹하게 보리를 구하는 고로 이름이 보리살타임. 또 개사(開士)ㆍ시사(始士)ㆍ고사(高士)ㆍ대사(大士) 등으로 번역함은 의역(義譯)이니 총명(總名)이 불과(佛果)를 구하는 대승중(大乘衆)임 [주유마경1. 대승의장14. 법화현찬2. 불지론2. 정명소1]. (2). 승인에 대한 경칭.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大事; 선법(禪法)을 영오(領悟)하여 생사를 초탈하는 일. 선가에서 이것으로써 본분대사로 삼음.
●得得; 특지(特地; 특별히. 일부러).
●礪齒磨牙; 치아를 갈아 날카롭게 해 기회를 살피다가 먹이를 움킴을 가리킴이니 흉한상(凶狠相; 흉악하고 사나운 모양)을 형용. 사람이 근면(勤勉)하며 노력(努力)해 부단(不斷)히 자기를 연마(練磨)함에 비유.
●檀信; 시주의 신앙. 단월의 신시(信施). 단(檀)은 시여의 뜻.
●外護; 곧 승려 이외의 재가인, 예컨대(如) 족친(族親)이나 단월 등이 불교를 위해 종사하는 바의 갖가지 선행임. 예컨대(如) 승니의 의식(衣食)을 공급하여 그 안온(安穩)한 수행을 도우거나 혹 힘을 다해 불법의 홍통(弘通)을 원호(援護)하는 등, 또한 곧 외부로부터 권력ㆍ재부(財富)ㆍ지식 혹 노력 등으로 불교를 호지(護持)하거나 아울러 갖가지 장애를 소제(掃除)하여 전도(傳道)에 이롭게 함. 이상의 제행(諸行)에 종사하는 것을 또한 일컬어 외호라 함.
●直下; 즉시ㆍ즉각의 뜻을 가리킴. 합하(合下)ㆍ당하(當下)와 같은 뜻.
●壁立萬仞; 벽(壁)은 아주 높고 가파른 산애(山崖)니 현애초벽(懸崖峭壁. 아득한 낭떠러지와 가파른 벽)과 같음. 벽립만인(壁立萬仞)이란 것은 선오자(禪悟者)가 자심(自心)을 환히 보아 자아(自我)를 위주(爲主)로 하여 절대(絶對)로 의의(依倚)함이 없이 진속(塵俗)을 초탈(超脫)한 기개(氣槪)와 경계(境界)를 형용(形容)함.
●結角羅紋; 나문결각(羅紋結角)과 같음. 말하자면 사방 주위의 각락(角落; 모퉁이)에 포만(布滿)함. 뜻이 처처(處處; 곳곳마다)ㆍ사사(事事; 일마다)가 됨. 널리 일체의 사물을 가리킴.
●心識; 조정사원6. 심식(心識) 순정리론(11)에 이르되 심의식(心意識) 셋은 체가 비록 이 하나지만 훈사(訓詞; 訓은 註낼 훈) 등의 뜻 종류가 다름이 있다. 이르자면 집기(集起)하는 고로 이름이 심(心)이며 사량하는 고로 이름이 의(意)며 요별(了別)하는 고로 이름이 식(識)이다.
●人法; 卽人執和法執 세속관념 중의 인(人; 즉 我)과 외물(外物)이니 곧 인집(人執)과 법집임.
●箇; 1. 대사(代詞)니 저(這)ㆍ나(那)에 상당함. 2. 조사니 지(底)ㆍ지(地)와 같음. 다분히 쌍음절의 형용사 뒤에 씀.
●㘞; 용(用)이 돌(咄)과 같음. 힘쓰는 소리를 표시함. 정자통 화(㘞) 일설에 범언(梵言)이다. 화지일성(㘞之一聲) 화(㘞)는 돌(咄)과 같다. ▲옥편. 화(㘞) 배를 끄는 소리다. 정자통 화(㘞) 진선(進船)하는 소리다. ▲여산연종보감10(廬山蓮宗寶鑑十). 이것 화자(㘞字)는 일체의 세인(世人)이 구중(口中)에서 일찍이 설하지 않음이 없다. 유여(喩如; 비유로 예를 듦) 물건을 잃은 사람이 홀연히 심견(尋見)하고는 불각에 이 일성(一聲)을 발함이 이 화자(㘞字)다. 종문에서 이 글자를 많이 말하는 것은 대개 심사방도(尋師訪道)하는 사람이 3, 20년 참구하고는 홀연히 심화(心花)가 발명하여 이 일을 회득(會得)하매 불각에 화지일성(㘞地一聲)함이 잃었던 물건을 득견함과 같아서 경쾌(慶快)한 평생이니 이것이 그 자의(字義)다.
到者裏說甚龐居士 直饒三乘十地膽喪魂驚 碧眼黃頭容身無地 然雖如是 若要開鑿人天眼目 發揚佛祖宗猷 更須將自己與選佛場 鎔作一團 颺在百千萬億世界之外 轉身移步 向威音那邊更那邊打一遭 却來喫西峰痛棒 大衆 旣是和自己颺了 又將甚麽喫棒 忽有箇不顧性命底漢子 聞恁麽擧 出來掀倒禪床 喝散大衆 是則固是 要且西峰師子巖未肯點頭在
●三乘; 三藏法數七 三乘[出法華經] 一聲聞乘 聞佛聲敎而得悟道 故曰聲聞 謂其知苦斷集 慕滅修道 故以此四諦爲乘也 二緣覺乘 因觀十二因緣 覺眞諦理 故名緣覺 謂始觀無明緣乃至老死 此是觀十二因緣生 次觀無明滅乃至老死滅 此是觀十二因緣滅 觀此因緣生滅 卽悟非生非滅 故以此十二因緣爲乘也 三菩薩乘 菩薩 梵語具云菩提薩埵 華言覺有情 謂覺悟一切有情衆生也 菩薩行六度行 廣化衆生 出離生死 故以此六度爲乘也 ▲大乘起信論疏略上 乘者運載之義 謂諸佛乘此而證菩提般涅槃 菩薩乘此而趣果海 衆生乘之而輪轉生死
●十地; 或曰十住 種種不一 一歡喜地 二離垢地 三發光地 四焰慧地 五難勝地 六現前地 七遠行地 八不動地 九善慧地 十法雲地 [三藏法數]
●碧眼; 祖庭事苑三 碧眼 初祖達磨大師 眼有紺靑之色 故稱祖曰碧眼
●黃頭; 指釋迦牟尼佛 又稱黃頭大士 黃頭老子 黃頭老 黃頭 黃面瞿曇 黃面老 黃面 黃老 如來爲金色身 故有斯等之稱
●人天; 一人趣與天趣 此是六道十界中之二界 皆爲迷妄之界 又指人與天神 二禪家常將法堂上聽法大衆稱作人天
●宗猷; 禪法 猷 道也
●世界; 梵語曰路迦 世爲遷流之義 謂過現未時之遷行也 界謂具東西南北之界畔 卽有情依止之國土也 又曰世間 間爲間隔之義 故與界之義同 此二者雖通用於有情與國土 而常言者爲國土也 [楞嚴經四 名義集三]
●威音那邊; 猶威音那畔 威音王佛乃是過去莊嚴劫最初之佛 此佛出世以前爲絶待無限之境界 故禪家多以威音王佛出世以前 稱爲威音那畔 其意與父母未生以前 天地未開以前等語相同
●一遭; 遭 量詞 一周 轉 二次 回
●性命; 有情之性與命也
●禪床; 又作禪牀 牀 同床 玉篇 床 俗牀字 禪牀又作繩牀 坐禪牀 卽以繩草或籐 所製之折疊牀 以其輕巧 且攜帶方便 故爲比丘經常攜行之道具 屬十八物之一 禪)
●要且; 終是 然而 却
●點頭; 點 向下微動
이 속에 이르러 무슨(甚) 방거사(龐居士)를 설하느냐, 직요(直饒; 가령) 삼승(三乘)과 십지(十地)일지라도 담상혼경(膽喪魂驚; 쓸개를 잃고 혼이 놀라다)하고 벽안(碧眼; 달마)과 황두(黃頭; 석가)일지라도 몸을 용납(容納; 容)할 땅이 없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인천(人天)의 안목을 개착(開鑿)하고 불조(佛祖)의 종유(宗猷; 禪法)를 발양(發揚)함을 요한다면 다시 꼭 자기와 선불장(選佛場)을 가져다 녹여(鎔) 일단(一團)을 만들어 백천만억 세계(世界) 밖으로 날려(颺) 있게 하고는 전신이보(轉身移步)하여 위음나변(威音那邊)을 향하고 다시 나변(那邊)에서 일조(一遭; 一回) 때리고(打) 돌아와서(却來) 서봉(西峰; 原妙)의 통방(痛棒)을 받아야(喫) 하리라. 대중이여 이미 이 자기마저(和自己) 날려버렸거늘(颺了) 또 무엇을(甚麽) 가져다 끽방(喫棒)하느냐. 홀연히 저(箇), 성명(性命)을 돌아보지 않는 한자(漢子; 남자. 子는 조사)가 있어 이러한(恁麽) 거(擧)를 듣고 나와서 선상(禪床)을 흔도(掀倒; 번쩍 들어 엎다)하고 대중을 할산(喝散; 꾸짖고 흩어지게 함)한다면 옳기는(是) 곧 참으로(固) 옳지만 요차(要且; 끝내) 서봉(西峰)의 사자암(師子巖)이 점두(點頭)를 수긍하지 아니하여 있다.
●三乘; 삼장법수7. 3(乘) [출법화경] 1. 성문승(聲聞乘) 불타의 성교(聲敎)를 듣고 오도(悟道)를 얻나니 고로 가로되 성문이다. 이르자면 그가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고 멸(滅)을 흠모해 도를 닦나니 고로 이 4제(諦)로써 승(乘)을 삼는다. 2 연각승(緣覺乘) 12인연(因緣)을 관(觀)함으로 인해 진제(眞諦)의 이치를 깨치므로 고로 이름이 연각이다. 이르자면 처음에 무명(無明)의 인연 내지 노사(老死)를 관하나니 이는 곧 12인연의 생(生)을 관함이며 다음에 무명의 멸(滅) 내지 노사(老死)의 멸을 관하나니 이는 곧 십이인연의 멸을 관함이다. 이 인연의 생멸을 관하여 곧 비생비멸(非生非滅)을 깨치나니 고로 이 12인연으로써 승(乘)을 삼는다. 3 보살승(菩薩乘) 보살은 범어니 갖추어 이르면 보리살타(菩提薩埵)며 중화(中華; 중국)의 말로는 각유정(覺有情)이니 이르자면 일체의 유정중생(有情衆生)을 각오(覺悟)케 함이다. 보살은 육도(六度; 六波羅蜜)의 행을 행하여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 생사를 출리(出離)케 하나니 고로 이 6도(度)로써 승(乘)을 삼는다. ▲대승기신론소략상. 승(乘)이란 것은 운재(運載)의 뜻이다. 이르자면 제불이 이것을 타고 보리와 반열반(般涅槃; 약칭이 열반)을 증득하고 보살이 이것을 타고 과해(果海)로 나아가며 중생이 이것을 타고 생사에 윤전(輪轉)한다.
●十地; 혹 가로되 십주(十住)니 갖가지라 일치하지 않음. 1은 환희지며 2는 이구지며 3은 발광지며 4는 염혜지며 5는 난승지며 6은 현전지며 7은 원행지며 8은 부동지며 9는 선혜지며 10은 법운지임 [삼장법수].
●碧眼; 조정사원3. 벽안(碧眼) 초조 달마대사의 눈에 감청(紺靑; 紺은 검은 빛을 띤 푸른빛)의 색이 있는지라 고로 조사를 일컬어 벽안이라 함.
●黃頭; 석가모니불을 가리킴. 또 명칭이 황두대사ㆍ황두노자ㆍ황두로ㆍ황두ㆍ황면구담ㆍ황면로ㆍ황면ㆍ황로. 여래는 금색의 몸이 되는지라 고로 이런 등의 명칭이 있음.
●人天; 1. 인취(人趣)와 천취(天趣)니 이것은 이 6도(道)와 10계(界) 중의 2계며 다 미망(迷妄)의 경계가 됨. 또 사람과 천신(天神)을 가리킴. 2. 선가에서 늘 법당상(法堂上)의 청법대중(聽法大衆)을 가지고 인천(人天)이라 호칭함.
●宗猷; 선법(禪法)이니 유(猷)는 도(道)임.
●世界; 범어(梵語)로 가로되 로가(路迦; 梵 loka)임. 세(世)는 천류(遷流)의 뜻이니 이르자면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시간이 천행(遷行)함이며 계(界)는 이르자면 동서남북의 계반(界畔)을 갖췄으니 곧 유정(有情)이 의지하는 국토임. 또 가로되 세간(世間)이니 간(間)은 간격의 뜻이 되므로 고로 계(界)의 뜻과 한가지임. 이 2자가 비록 유정과 국토에 통용되지만 늘 말하는 것은 국토가 됨 [릉엄경4. 명의집3].
●威音那邊; 위음나반(威音那畔)과 같음. 위음왕불(威音王佛)은 곧 이 과거장엄겁 최초의 불타임. 이 불타가 출세하기 이전은 절대(絶待) 무한의 경계가 되는지라 고로 선가에서 다분히 위음왕불 출세 이전을 일컬어 위음나반이라 함. 그 뜻은 부모미생이전(父母未生以前), 천지미개이전(天地未開以前) 등의 말과 서로 같음.
●一遭; 조(遭)는 양사니 1. 주(周), 전(轉). 2. 차, 회.
●性命; 유정(有情)의 성(性)과 명(命)임.
●禪床; 또 선상(禪牀)으로 지음. 상(牀)은 상(床)과 같음. 옥편 상(床) 상(牀)의 속(俗) 글자다. 선상(禪牀)은 또 승상(繩牀)ㆍ좌선상(坐禪牀)으로 지음. 곧 승초(繩草)나 혹 등(籐)으로 제작한 바의 절첩상(折疊牀; 접이식 상)이니 그것이 경교(輕巧)하고 또 휴대하기가 방편(方便)한지라 고로 비구가 경상(經常; 平時) 가지고 다니는 도구가 됨. 18물의 하나에 속함.
●要且; 종시(終是; 끝내. 종내). 연이(然而; 그러나). 각(却; 도리어).
●點頭; 점(點)은 아래를 향해 조금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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