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華堂隨歲錄序
予年十九 初參一愚先師于釜山龜浦師之草廬 始知有隔山見煙早知是火隔牆見角便知是牛之玄道矣 二祀後庚戌八月 依師脫白 然諸般因緣不幸 不爲近事之 寄幻質于此山彼山東寺西寺 往來先師處 廣聞法要 而遂立平生之計 物色幽居之地 庚申七月 尋入此泰華山下廣德面梅堂里 寓一廢舍 聞洞後有一古寺阯 適有居士金濟吉同崔鳳仙䞋施 贖地壹千貳百坪 卓保社 甲子三月着工 八月落成 顔曰平心寺 明年初有幾百燕子來賀 然先師無一光臨之意 己巳五月 遷化於舊隱矣 泰華堂予室之號也 隨歲錄者 自壬申至甲申 十三年中 隨歲而或隨吟風詠月罵雪打雨弄花吃嵐而題詩 或隨竺墳綱紀列祖巴鼻好言閒語而作偈 而隨錄之 故名焉也 出家兒 曷有以此事不蘊在胸臆之中者也 予亦初禮覲先師以來 造次顚沛 不忘這箇事 念玆在玆已久矣 古云 繪雪者不能繪其淸 繪月者不能繪其明 繪花者不能繪其馨 繪泉者不能繪其聲 繪人者不能繪其情 故語言文字固不足以見道明矣 然欲忘筌蹄者 先要已獲魚兎也 欲舍寶筏者 先要已到彼岸也 詎與未獲魚兎到彼岸而舍筌蹄寶筏者 同日以語哉 隨歲錄中 間有無干於宗門中事語 雖然有不惜一覽之誠者 到頭未必言此是匪爲參學之資緣也 是爲刊錄之辯云
時檀紀四千三百三十七年歲在甲申中秋平心寺主淨圓自題于泰華堂
내 나이 열아홉에 처음 일우선사(一愚先師)를 부산구포(釜山龜浦)의 스님의 초려(草廬)에서 참(參)하고서야 비로소 산 너머 연기를 보고 벌써 이 불인 줄 알고 담 너머 뿔을 보고 곧 이 소인 줄 아는 현도(玄道)가 있는 줄 알았다. 2년 후인 경술(庚戌. 1970) 팔월 선사(先師)를 의지(依支)하여 탈백(脫白)했으나 그러나 여러 가지 인연이 불행하여 가까이에서 모시지 못하게 된지라 환질(幻質)을 차산피산(此山彼山) 동사서사(東寺西寺)에 기탁(寄託)하면서 선사(先師)의 거처로 왕래하며 널리 법요(法要)를 들었고 드디어 평생의 계획을 세워 유거(幽居)할 땅을 물색(物色)하다가 경신(庚申. 1980) 칠월에 이 태화산(泰華山) 아래 광덕면매당리(廣德面梅堂里)를 찾아 들어와 한 낡은 집에 우거(寓居)하였다. 동네 뒤에 한 고사(古寺)의 터가 있다 함을 들었고 마침 거사(居士)인 김제길(金濟吉)과 동(同) 최봉선(崔鳳仙)의 친시(䞋施)가 있어 일천이백 평의 땅을 사 보사(保社)를 세웠는데 갑자(甲子. 1984) 3월에 착공해 8월에 낙성하여 편액(扁額)을 가로되 평심사(平心寺)라 하였다. 다음 해 초 몇 백 마리의 제비가 와서 축하(祝賀)함이 있었으나 그러나 선사(先師)는 한 번 광림(光臨)할 뜻이 없으셨고 기사(己巳. 1989) 5월에 구은(舊隱)에서 천화(遷化)하셨다.
태화당(泰華堂)은 내 방의 호(號)며 수세록(隨歲錄)이란 것은 임신(壬申. 1992)으로부터 갑신(甲申. 2004)에 이르기까지 13년 중에 세월(歲月) 따라 혹 음풍영월(吟風詠月)하며 매설타우(罵雪打雨)하며 농화흘람(弄花吃嵐)함을 따라 제시(題詩)하거나 혹 축분(竺墳)의 강기(綱紀), 열조(列祖)의 파비(巴鼻), 호언(好言)과 한어(閒語)를 따라 작게(作偈)하여 그대로 그것을 기록(記錄)하였으므로 고로 이름하였음이다.
출가아(出家兒)가 어찌 차사(此事)를 흉억(胸臆) 가운데 쌓아 두지 않은 자 있으리오. 나도 또한 처음 선사(先師)를 예근(禮覲)한 이래(以來)로 조차전패(造次顚沛)에도 이 낱의 일을 잊지 않아 이를 생각하고 이에 있음이 이미 오래되었다. 고인(古人)이 이르되 눈을 그리는 자가 능히 그 맑음을 그리지 못하고 달을 그리는 자가 능히 그 밝음을 그리지 못하고 꽃을 그리는 자가 능히 그 향기를 그리지 못하고 샘을 그리는 자가 능히 그 소리를 그리지 못하고 사람을 그리는 자가 능히 그 정을 그리지 못한다 했으니 고로 어언문자(語言文字)로는 진실로 족히 도를 나타내지 못함이 명확(明確)하다. 그러나 전제(筌蹄)를 잊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이미 물고기와 토끼를 잡았음을 요하고 보벌(寶筏)을 버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이미 피안(彼岸)에 이르렀음을 요하나니 어찌 물고기와 토끼를 잡거나 피안에 이르지 않고서 전제(筌蹄)와 보벌(寶筏)을 버린 자와 더불어 동일(同日)에 말함을 쓰리오.
수세록(隨歲錄) 중에 가끔 종문(宗門) 중의 일과 상간(相干) 없는 말이 있으나 비록 그러하지만 일람(一覽)의 성의(誠意)를 아끼지 않음이 있는 자라면 마침내 꼭 이것이 이 참학(參學)의 자연(資緣)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하리니 이것이 간록(刊錄)의 변(辯)이 됨이라.
때는 단기 사천삼백삼십칠년(四千三百三十七年) 세재갑신(歲在甲申) 중추(中秋)니 평심사주(平心寺主) 정원(淨圓)이 태화당(泰華堂)에서 자제(自題)하다.
탈백(脫白)은 출가득도(出家得度)를 일컫는 말. 사(祀)는 해 사. 환질(幻質)은 허환(虛幻)의 몸뚱이. 물색(物色)은 1 물건의 빛깔. 2 생김새나 복색에 의해 사람을 찾음. 3 어떤 표준 아래 쓸 만한 사람이나 물건을 찾음. 우(寓)는 붙어살 우. 지(阯)는 터 지. 거사(居士)는 재가자(在家者)로서 불문(佛門)에 귀의(歸依)한 남자 또는 여자. 한국에선 최근 여거사(女居士)를 보살(菩薩)이라고 호칭함. 친(䞋)은 범어(梵語) 달친(達䞋)의 준말이니 보시(布施)의 뜻. 달친(達嚫)으로 표기하기도 함. 속(贖)은 구매(購買)할 속. 탁(卓)은 세울 탁. 보사(保社)는 사원(寺院)의 다른 이름. 안(顔)은 편액(扁額) 안. 광림(光臨)은 귀인(貴人)의 왕림(枉臨)을 일컫는 말. 구은(舊隱)은 옛 은처(隱處). 천화(遷化)는 교화를 다른 데로 옮김이니 곧 죽음. 영(詠)은 읊을 영. 흘(吃)은 먹을 흘. 람(嵐)은 아지랑이 람. 분(墳)은 책 이름 분이니 축분(竺墳)은 불경(佛經). 총승(總繩. 繩은 노 승)을 가로되 강(綱)이라 하고 중목(衆目. 目은 그물코 목)을 가로되 기(紀)라 함. 파비(巴鼻)는 물건의 손잡이니 긴요처(緊要處). 갈(曷)은 어찌 갈. 온(蘊)은 쌓일 운, 익힐 운이나 보통 온으로 발음함. 억(臆)은 가슴 억. 근(覲)은 뵐 근. 조차(造次)는 급거구차지시(急遽苟且之時)니 아주 급한 때. 창졸간(倉卒間). 조(造)는 창졸(倉卒)의 뜻. 전패(顚沛)는 경복유리지제(傾覆流離之際)니 엎어지고 자빠질 즈음. 물건에 걸려 넘어질 즈음. 패(沛)는 부도(仆倒)의 뜻. 논어 이인(論語 里仁)에 이르되 군자는 밥을 마치는 사이에도 인(仁)을 위배함이 없어야 하나니 조차(造次)에도 반드시 이것(仁)이요 전패(顚沛)에도 반드시 이것이니라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于是 顚沛必于是). 저(這)는 이 저. 개(箇)는 대사(代詞)니 이(這), 저(那)의 뜻. 또 양사(量詞). 조사(助詞)로 쓰임. 회(繪)는 그림 회. 수놓을 회. 형(馨)은 향기로울 형. 고(固)는 진실로 고. 굳을 고. 전(筌)은 통발 전. 제(蹄)는 토끼 올무 제. 사(舍)는 사(捨)와 같음. 벌(筏)은 떼 벌. 거 (詎)는 어찌 거. 도두(到頭)는 마침내. 드디어. 비(匪)는 아닐 비. 운(云)은 조사(助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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