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보(第一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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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안국리환희희(槐安國裏歡嬉嬉)
한단침상탄오오(邯鄲枕上嘆嗚嗚)
자도자기역천겁(自倒自起歷千劫)
한유인지무금고(罕有人知無今古)
희희다시오오다(嬉嬉多時嗚嗚多)
가성고처곡성고(歌聲高處哭聲高)
종이부시미증휴(終而復始未曾休)
수지정도제일보(誰知程途第一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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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안국(槐安國) 속에서 기뻐 희희(嬉嬉)하고
한단침(鄲枕) 위에서 탄식해 오오(嗚嗚)하나니
자도자기(自倒自起)하기를 천겁을 지냈건만
금고(今古)가 없음을 아는 사람이 드물게 있더라.
희희(嬉嬉)가 많을 때 오오(嗚嗚)가 많고
가성(歌聲)이 높은 곳에 곡성(哭聲)도 높나니
마치매 다시 시작해 일찍이 쉬지 않거니와
누가 정도(程途)의 제일보(第一步)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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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석 첫번째의 걸음.
1행 영괴집(靈怪集)에 가로되 동평(東平)의 순우분(淳于棼)은 오초(吳楚)의 유협지사(遊浹之士)였는데 집을 군(郡)의 동쪽에 거주했다.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가지와 잎이 매우 성기었다. 분(棼)이 일찍이 술꾼들과 더불어 그 아래 너풀거렸으며 어느 날 과음(過飮)해 병이 되어 부축해 돌아와 동쪽 담 아래 누웠는데 몽중에 홀연히 두 사자(使者)가 보이더니 꿇어 가로되 괴안국(槐安國)의 왕께서 그대를 맞이하라 하셨습니다 하매 사자를 따라 혈중(穴中)에 들어갔으며 문루(門樓)의 방(榜)을 보니 가로되 대괴안국(大槐安國)이라 했다. 왕의 부마(駙馬. 사위)가 되어 금지공주(金枝公主)를 부인으로 맞아 즐겁게 사는데 어느 날 왕이 가로되 우리 남가군(南柯郡)의 정사(政事)가 다스려지지 못해 태수를 쫓아내고 경(卿)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할까 하노라. 드디어 성문에 이르니 방(榜)에 가로되 남가군(南柯郡)이라 했다. 이십여 년 동안 맡아 다스렸는데 분의 처가 병에 걸려 죽자 순의공주(順義公主)라고 시호(諡號)하고 나라의 동쪽 반룡강(盤龍崗. 崗은 산등성이 강)에 장사 지냈다. 왕이 분에게 일러 가로되 경이 집을 떠난 지 오래되었으니 돌아감이 옳을 것 같노라. 분이 가로되 집이 곧 이곳이거늘 또 어찌 돌아갈 바이겠습니까. 왕이 웃으며 가로되 경(卿)은 본래 인간족(人間族)이므로 여기가 아니니라. 왕이 측근들을 시켜 전송했다. 드디어 꿈을 깨었고 인해 느티나무를 찾아가서 아래의 굴을 팠는데 환하고 명랑(明朗)한 것이 하나의 좌석을 수용할 만했고 흙이 쌓여 있는데 마치 누대(樓臺)와 같았고 뭇 개미들이 보필(輔弼)하고 있었으니 이것이 곧 개미왕이었으며 괴안국의 수도(首都)였다. 또 한 굴에 작은 봉분(封墳)이 있었는데 곧 분의 처를 안장한 묘였다 [祖庭事苑卷五]. 남가몽(南柯夢)이란 말은 이 고사(故事)에서 유래함. 희(嬉)는 즐거울 희. 놀 희. 희롱할 희. 희희(嬉嬉)는 기뻐하며 웃는 모양.
2~8행 한단(邯鄲)의 한(邯)은 조나라 서울 이름 한. 단(鄲)은 조나라 서울 이름 단. 오(嗚)는 탄식할 오. 오오(嗚嗚)는 슬픈 소리의 형용. 한(罕)은 드물 한. 정(程)은 길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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