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각원현선사(永覺元賢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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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경률통오종(不啻經律通五宗)
해실제자능시문(該悉諸子能詩文)
육침삼백년동종(陸沈三百年洞宗)
유사일거랑도용(由師一擧浪滔涌)
예어이권로파심(寱語二卷露婆心)
견지명백무편단(見地明白無偏端)
권형돈점비상량(權衡頓漸費商量)
하사원현일도단(何似元賢一刀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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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률(經律) 뿐만 아니라 오종(五宗)에도 통달했고
제자(諸子)를 모두 알고 시문(詩文)에도 능했도다
삼백 년 동안 육침(陸沈)한 조동종(曹洞宗)이
스님의 일거(一擧)로 말미암아 파랑이 넘쳐 솟았도다.
예어(寱語) 두 권에 노파심을 드러냈나니
견지(見地)가 명백하고 편벽된 단서(端緖)가 없도다
돈점(頓漸)을 저울질함은 상량(商量)을 허비함이니
어찌 원현(元賢)이 일도(一刀)로 끊음만 같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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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각원현선사(永覺元賢禪師)는 수창혜경(壽昌慧經)의 법사(法嗣)니 동산양개하삼십일세(洞山良价下三十一世). 박산무이(博山無異)와 사형제지간(師兄弟之間).
1~4행 시(啻)는 뿐 시. 해(該)는 모두 해. 갖출 해. 겸할 해. 실(悉)은 알 실. 해실(該悉)은 광범위하게 다 아는 것. 제자(諸子)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약칭(略稱). 육침(陸沈)은 물 없이 가라앉음. 곧 대은(大隱). 도(滔)는 넘칠 도.
5행 원현선사(元賢禪師)의 삼회어(三會語) 및 여러 찬술(撰述)이 무릇 이십종(二十種) 팔십여 권이었는데 속장경에 실린 스님의 광록(廣錄) 삼십권 중 권이십구(卷二十九)와 삼십(三十)의 제목이 예어(寱語)임.
7행 권(權)은 저울질할(稱錘) 권. 형(衡)은 저울(秤) 형. 권형(權衡)은 저울추와 저울대. 전(轉)하여 사물의 균형(均衡). 평정(評定).
8행 혹문(或問)하되 (누가 묻되) 돈오(頓悟)가 반드시 점수(漸修)를 빌린다 함은 모든 스님이 많이들 갖추어 그것을 말했으나 오직 중봉(中峯. 明本이니 高峰元妙의 法嗣. 臨濟下十八世)만이 점수(漸修)의 설(說)을 불허(不許)하였으니 이르기를 습기(習氣)를 제(除)하지 못하면 단지 이 오심(悟心)이 원만치 못하므로 반드시 그 철오(徹悟)를 역구(力求)해야 옳다 했거니와 이설(二說)에 어느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로되(永覺이 가로되) 오심(悟心)이 이미 원만하다면 명근(命根)이 돈단(頓斷)하리니 비록 습기(習氣)를 제하지 않음이 있더라도 다만 정견(正見)이 불매(不昧)함을 얻으면 습기가 자연히 점차 없어지므로 가히 따로 수습(修習)함이 있지 않느니라. 비유컨대 벌목자(伐木者)가 이미 그 뿌리를 끊었다면 곧 지엽(枝葉)이 비록 존재하더라도 불일(不日. 얼마 안 가서)에 소락(消落)하므로 따로 소락하는 법 있음이 필요치 않음과 같느니라. 만약 오심(悟心)이 원만치 못하면 곧 명근(命根)이 끊어지지 않아서 습기가 횡생(橫生. 橫은 不測, 意外, 不順理의 뜻)하므로 알치(遏治. 막고 끊어 다스림)하여도 효험(效驗)이 없는 연고로 모름지기 그 철오(徹悟)를 역구(力求)해야 옳느니라. 또 중봉의 뜻을 자세히 살피건대 또한 전혀 점수(漸修)를 허락치 않음이 아니니라. 곧 당시(當時)의 선지식들이 겨우 입두(入頭)함을 얻으면 곧 이르되 철증(徹證)했노라 했으나 및 습기(習氣)를 제하지 못하여 도리어 점수(漸修)의 이르지(到) 못한 데로 돌아가기 때문인 연고로 중봉이 끽긴(喫緊. 要緊. 重要. 喫은 承受의 뜻)하여 이 설(說)을 지었을 뿐이니라 [永覺元賢禪師廣錄卷二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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