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생금수전(往生禽獸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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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정미후유좌탈(習定獼猴有坐脫)
염불앵무유사리(念佛鸚鵡遺舍利)
일실인신향하지(一失人身向何之)
망망삼계사인비(茫茫三界使人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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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禪定)을 익힌 원숭이가 좌탈(坐脫)함이 있었고
염불한 앵무새가 사리를 남겼거늘
한 번 사람 몸을 잃으면 어디를 향해 가는가
망망한 삼계가 사람으로 하여금 슬프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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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명(命)이 끝난 후 타계에서 태어나는 일을 왕생이라 함. 그러나 이는 항상 극락에 대하는 별명이며 정토문(淨土門)의 요체(要諦)이므로 사바세계를 버리고 미타여래의 극락정토에 가서 태어나는 것을 지칭하는 말. 금(禽)은 새 금. 수(獸)는 짐승 수.
1행 종남산(終南山)에 한 승인이 암자에 거주하면서 습정(習定)하는데 어느 날 승가리(僧伽梨. 三衣의 하나. 大衣)를 잃었다. 이에 보니 원숭이가 입고서 바위에 연좌(宴坐)하고 있었으며 나중에 보니 뭇 원숭이가 다 습정(習定)했으며 간혹 좌탈하는 놈도 있었다. 지금도 오미후탑(五獼猴塔)이 있다. 선종(宣宗. 唐十七代皇帝)이 게(偈)가 있어 찬(贊)해 이르되 오호라 너희 원숭이가 능히 입정(入定)하니/ 심원(心猿)이 움직이지 않음이 몇 천 년이었던고/ 붉은 나무의 삼동(三冬) 과일 당김을 그쳤고/ 푸른 못의 외로운 월륜(月輪) 희롱함을 쉬었도다./ 두 눈은 이미 푸른 봉우리를 따라 합쳤지만/ 두 눈썹은 오히려 온갖 꽃을 대하여 찌푸리도다/ 스스로 종남산에서 좌탈한 후로부터/ 부생(浮生)을 깨달아 마친 이가 몇 사람이던가 (嗟汝獼猴能入定 心猿不動幾千春 罷攀紅樹三冬菓 休弄碧潭孤月輪 雙眼已隨靑嶂合 雙眉猶對百花顰 自從坐脫終南後 悟了浮生多少人) [釋氏通鑑卷十一]. 미(獼)는 원숭이 미. 후(猴)는 원숭이 후.
2행 배씨앵무(裵氏鸚鵡)란 당성도윤위고기(唐成都尹韋皐記)에 가로되 사람이 앵무새를 헌납(獻納)하는 자가 있었다. 배씨가 이르되 이 새의 이름은 범경(梵經. 불경)에 실렸으며 지혜가 범상한 무리와 다르느니라 하고선 늘 친압(親狎)하며 공경했다. 처음엔 육재(六齋)의 금(禁)함과 및 오후비시(午後非時. 오후에 밥을 먹지 않는 것)를 고했는데 마침내 저녁엔 먹지 않았다. 혹 불명호(佛名號)를 수지(受持)함을 가르쳤는데 머리를 쳐들고 날개를 침이 마치 잘 승청(承聽)하는 듯했다. 매일 맑은 새벽과 긴 밤에 화아(和雅)한 음성을 내되 아미타불의 소리 소리가 상속(相續)했다. 어느 날 초췌(憔悴)한 얼굴이 있어 훈양(訓養)하는 자가 경쇠(磬)를 울리며 그에게 고해 가로되 장차 여기를 떠나 서쪽으로 돌아가려느냐. 매 한 번 경쇠를 칠 적마다 불(佛)을 일칭(一稱)하여 열 번 경쇠를 치니 십념(十念)이 이루어지자 날개를 거두고 다리를 굽히고 바로 절명했다. 석전(釋典)을 살펴보건대 십념(十念)을 성취하면 왕생서방(往生西方)한다 하며 또 불혜(佛慧)를 얻은 자가 죽으면 사리가 있다 하므로 드디어 명령해 불로 그것을 사루었는데 사리 십여립(十餘粒)을 얻었다. 정원십구년구월기(貞元十九年九月記. 貞元十九年은 서기 803) [佛祖統紀卷二十九]. 유(遺)는 남길 유. 끼칠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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