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당수세록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요원(遙遠)

태화당 2019. 8. 8. 11:11

요원(遙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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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막수어보장(長壽莫壽於寶掌)

입정난비어혜지(入定難比於慧持)

백운진처시청산(白雲盡處是靑山)

행인부재청산리(行人不在靑山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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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하기론 보장(寶掌)보다 장수한 이가 없고

입정(入定)은 혜지(慧持)에 비교하기가 어렵도다

흰 구름 다한 곳이 이 청산이거니와

행인이 청산 속에 있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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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는 멀 요. 요원(遙遠)은 까마득함.

1행 천세보장화상(千歲寶掌和尙)은 중인도인(中印度人)이니 주위열십이년정묘(周威烈十二年丁卯. 西紀前 414)에 강신수질(降神受質)하였다. 왼손으로 주먹을 쥐었는데 일곱 살에 축발(祝髮. 은 깎을 축)하고서 곧 펴졌으므로 인하여 보장(寶掌)이라고 이름했다. 위진간(魏晋間)에 동쪽 이 땅으로 유람(遊覽)하여 촉()에 들어가 보현(普賢)에 예배하고 대자(大慈)에 머물렀는데 늘 먹지 않았고 매일 반야(般若) 등의 경 수천 권을 독송(讀誦)했다. (중략) 달마가 양()에 들어옴을 만나 나아가 구청(扣請)하여 무생인(無生忍)을 깨달았다. (중략) 현경이년(顯慶二年. 唐高宗 顯慶二年이니 서기 657) 정단(正旦)에 손수 일상(一像)을 소조(塑造)하여 구일(九日)에 상()을 완성하고는 그 도제(徒弟)인 혜운(慧雲)에게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를 닮았느냐. 혜운이 가로되 화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곧 조욕(澡浴)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부좌(跏趺坐)하고 혜운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세상에 머문 지 이미 일천칠십이 년인데 이제 곧 세상을 떠날까 하노라. (중략) 주열정묘(周烈丁卯)로써 당고종 현경정사(顯慶丁巳)에 이르렀으니 이를 고찰(考察)하건대 실로 일천칠십이 년인 것이다 [五燈全書卷三].

2행 석혜지(釋慧持)는 여산(廬山) 혜원법사(慧遠法師)의 동생이다. () 융안이년(隆安二年. 398)에 당하여 원공(遠公)을 고별하고 촉()에 들어가 가주용연사(嘉州龍淵寺)에 머물렀는데 백흑(白黑. 僧俗)이 공경하였으며 혜지(慧持)의 당()에 오른 자는 다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호()했다. 이에 이르러 의희팔년임자(義熙八年壬子. 412)에 문도(門徒)에게 계면(誡勉)을 내리고 드디어 용연(龍淵)의 감수(龕樹)에 입정(入定)했는데 송() 정화삼년(政和三年. 1113)에 이르러 바람이 그 나무를 꺾어 혜지가 이에 출정(出定)했으며 휘종(徽宗)의 찬게(贊偈) 삼수(三首)가 있다 [釋氏稽古略卷二]. 사월(四月. 宋徽宗政和三年四月)에 서촉가주(西蜀嘉州)에서 아뢰되 바람이 큰 나무를 꺾었는데 고주(枯株)에 어떤 승인이 정()에 있었으며 수염과 머리카락이 몽밀(蒙密. 덮혀 빽빽함)하고 지조(指爪. 는 손가락 발가락 지. 곧 손톱 발톱)가 온몸을 감쌌다 했다. 황제가 경사(京師. 는 서울 사니 곧 서울)에 이르게 했으며 추팔월(秋八月)에 영접해 금중(禁中)에 들게 했다. 역경원삼장대사(譯經院三藏大師) 금총지(金總持)가 금경(金磬)을 울려 그 정()에서 나오게 했다. 승인이 가로되 나는 동림(東林)의 혜원법사(慧遠法師)의 동생 혜지(慧持)입니다. 서쪽 아미산(峨嵋山)에 유람했다가 여기에 입정했거니와 원공(遠公)은 무양(無恙. 은 병 양)하십니까. 삼장이 가로되 원공은 동진인(東晋人)이며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칠백 년입니다. 승인이 마침내 말하지 않자 삼장이 서서히 계발(啓發)하고는 이제 어디로 돌아가시려고 하십니까. 승인이 가로되 진류현(陳留縣)입니다 하고는 곧 다시 입정(入定)했다. 이에 그의 말을 써서 진류(陳留)에 장사지냈으며 황제가 그 상()을 그리게 해 천하에 반포(頒布)했다 운운(云云) [釋氏稽古略卷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