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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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계색계무색계(欲界色界無色界)
니일념심탐진치(你一念心貪瞋痴)
대통지승오무간(大通智勝五無間)
임제개연비상류(臨濟開演非常流)
공권지상생실해(空拳指上生實解)
근경법중허날괴(根境法中虛捏怪)
아시범부타시불(我是凡夫他是佛)
백겁천생수윤회(百劫千生受輪廻)
심청정불광명법(心淸淨佛光明法)
도자무애정광시(道者無碍淨光是)
경론비니표현설(經論毗尼表顯說)
용상축답비려회(龍象蹴踏非驢會)
일상무운려태청(日上無雲麗太淸)
대해부증류사시(大海不曾留死屍)
진정견해일무의(眞正見解一無依)
입처개진수처주(立處皆眞隨處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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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계색계무색계(欲界色界無色界)가
너의 일념심(一念心)의 탐진치(貪瞋痴)로다
대통지승(大通智勝)과 오무간(五無間)을
임제(臨濟)가 개연(開演)하매 상류(常流)가 아니로다.
공권지상(空拳指上)에 실해(實解)를 내거나
근경법(根境法) 가운데 헛되이 괴이(怪異)를 만들어
나는 이 범부요 그는 이 부처라 한다면
백겁천생(百劫千生)에 윤회를 받으리라.
심청정(心淸淨)이 부처며 광명은 법이며
도란 것은 무애정광(無碍淨光)이 이것이로다
경론(經論)과 비니(毗尼)는 표현(表顯)하는 글이니
용상(龍象)의 축답(蹴踏)을 나귀가 알 게 아니로다.
해 위엔 구름이 없어 태청(太淸)을 비추며
대해는 일찍이 죽은 시체를 머물러 두지 않나니
진정(眞正)한 견해는 하나도 의지함이 없어
선 곳이 다 진(眞)이며 곳을 따라 주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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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행 너의 일념심(一念心) 탐(貪)이 이 욕계(欲界)며 너의 일념심 진(瞋)이 이 색계(色界)며 너의 일념심 치(痴)가 이 무색계(無色界)니라 [聯燈會要卷九 臨濟語]. 중이 묻되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이 십겁(十劫)을 도량(道場)에 앉았으나 불법이 현전(現前)치 않아 불도(佛道) 이룸을 얻지 못했다 (大通智勝佛 十劫坐道場 佛法不現前 不得成佛道. 法華經卷三 化城喩品의 글) 하니 미심하외다 이 뜻이 어떠합니까 스님의 지시(指示)를 걸구(乞求)합니다. 스님(臨濟)이 이르되 대통(大通)이란 것은 이 자기가 곳곳에서 그 만법의 무성무상(無性無相)임을 통달함을 이름하여 대통(大通)이며 지승(智勝)이란 것은 일체처에 의심하지 않아서 한 법도 얻지 않음을 이름하여 지승(智勝)이며 불(佛)이란 것은 마음의 청정한 광명이 법계(法界)를 투철(透徹)함을 이름하여 불(佛)이라 함을 얻느니라. 십겁좌도량(十劫坐道場)이란 것은 십바라밀(十波羅蜜)이 이것이며 불법불현전(佛法不現前)이란 것은 불(佛)이 본디 불생(不生)이며 법이 본디 불멸(不滅)이거늘 어찌 다시 현전(現前)함이 있으랴. 부득성불도(不得成佛道)란 것은 부처가 응당 다시 부처를 짓지 않음이니라 [聯燈會要卷九]. 오무간업(五無間業)을 지어야 비로소 해탈을 얻느니라.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오무간업입니까. 스님(臨濟)이 이르되 아버지를 죽이고(殺父) 어머니를 죽이고(殺母) 부처의 몸에 피를 내고(出佛身血) 화합승을 깨뜨리고(破和合僧) 경상등(經像等)을 불태움(焚燒經像等)이니 이것이 이 오무간업이니라. 이르되 무엇이 이 아버지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무명(無明)이 이 아버지니 너의 일념심(一念心)이 기멸(起滅)하는 곳을 구하여도 가히 얻지 못함이 마치 메아리가 허공에 응(應)함과 같아서 곳을 따라 일이 없나니 이름하여 살부(殺父)니라. 이르되 무엇이 이 어머니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탐애(貪愛)가 어머니가 되나니 너의 일념심이 욕계 가운데 들어가 그 탐애를 구하매 오직 제법공상(諸法空相)만 보이어 곳곳에 집착 없음을 이름하여 해모(害母)니라. 이르되 무엇이 이 출불신혈(出佛身血)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네가 청정법계(淸淨法界) 가운데를 향하여 일념심(一念心)이 앎을 냄이 없어 곧 곳곳이 흑암(黑暗)이니 이것이 출불신혈이니라. 이르되 무엇이 이 파화합승(破和合僧)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너의 일념심이 번뇌결사(煩惱結使. 結使란 九結과 十使가 있음. 둘 다 번뇌의 다른 이름)가 마치 허공의 의지하는 바 없음과 같음을 바로 통달함이 이 파화합승이니라. 이르되 무엇이 이 분소경상(焚燒經像)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인연이 공(空)하고 마음이 공하고 법이 공함을 보아서 한 생각에 결정하여 끊어 형연(逈然)하여 일 없음이 곧 이 분소경상이니라 [聯燈會要卷九]. 류(流)는 무리(類) 류.
5~8행 날(捏)은 주워 모을 날. 만들 날.
9~12행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진불진법진도(眞佛眞法眞道)입니까 개시(開示) 드리움을 걸구(乞求)합니다. 스님(臨濟)이 이르되 부처란 것은 심청정(心淸淨)이 이것이며 법이란 것은 심광명(心光明)이 이것이며 도란 것은 곳곳에 장애 없는 정광(淨光)이 이것이니라. 셋이 곧 하나며 다 이 빈 이름이며 실유(實有)가 없느니라 [聯燈會要卷九]. 산승(山僧. 임제 자신을 가리킴)이 지난날에 일찍이 비니(毗尼) 가운데를 향하여 마음을 머물렀으며 또한 일찍이 경론(經論) 등에서 찾았으나 뒤에 비로소 알았나니 이는 제세(濟世)의 약방(藥方)이며 표현지설(表顯之說)이라 곧 일시에 던져버렸느니라 [聯燈會要卷九]. 율(律)에 삼명(三名)이 있으니 1 비니(毗尼), 번역하면 선치(善治). 2 시라(尸羅), 번역하면 지득(止得) 또 계(戒). 3 바라제목차(波羅提目叉), 번역하면 해탈(解脫) [三藏法數五]. 표현(表顯)은 표현(表現)과 같은 뜻. 용상(龍象)은 코끼리 가운데 수승(殊勝)한 것이니 좋은 말을 호마(好馬) 또는 용마(龍馬)라 함과 같음. 유마경중(維摩經中) 부사의품(不思議品)에 이르되 비여(譬如) 용상이 축답하매 나귀가 감당할 바 아니다 (龍象蹴踏 非驢所堪). 축(蹴)은 찰 축. 답(踏)은 밟을 답.
13~16행 곳을 따라 주인을 짓고 선 곳이 다 진(眞)이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臨濟錄 臨濟語]. 려(麗)는 빛날 려. 고울 려. 베풀 려. 태청(太淸)은 하늘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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