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거(尋思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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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천화후(南泉遷化後)
향심마처거(向甚麽處去)
석두참육조(石頭參六祖)
교이심사거(敎伊尋思去)
유승칠보어임제(猶勝七步於臨濟)
광전절후장사어(光前絶後長沙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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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南泉)이 천화(遷化)한 후에
어느 곳을 향해 갔는가
석두(石頭)가 육조를 참견(參見)하매
저로 하여금 심사거(尋思去)케 했더라.
오히려 임제보다 일곱 걸음 수승(殊勝)한
광전절후(光前絶後)의 장사어(長沙語)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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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육조(六祖)가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였다. 사미희천(沙彌希遷. 石頭希遷이니 靑原行思의 法嗣)이 있어 물어 가로되 화상의 백년후(百年後. 죽은 후)에 희천은 미심하오니 마땅히 어떤 사람에게 의부(依附)해야 합니까. 육조가 가로되 심사거(尋思去. 尋은 찾을 심. 쓸 심)하라. 및 육조가 순세(順世. 入寂)하자 희천이 매양 고요한 곳에서 단정히 앉았는데 적연(寂然)하기가 마치 삶을 잊은 것 같았다. 제일좌(第一座)가 물어 가로되 너의 스님(六祖)이 이미 서거(逝去)하셨거늘 공연히 앉아 무엇하느냐. 희천이 가로되 저는 유계(遺誡)를 품수(稟受)하는지라 고로 심사(尋思)할 뿐입니다. 제일좌가 가로되 너에겐 사형(師兄)인 행사화상(行思和尙)이 있어 지금 길주(吉州)에 거주하나니 너의 인연은 그에게 있느니라. 스님(六祖)의 말씀이 매우 곧거늘 네가 스스로 미혹했을 뿐이니라. 희천이 말을 듣자 곧 육조의 감실(龕室. 塔下室)에 예사(禮辭)하고 바로 정거사(靜居寺. 靑原山靜居寺니 行思가 住持하던 절)로 나아갔다 [傳燈錄卷五 靑原行思章].
1~6행 삼성(三聖. 慧然이니 臨濟의 法嗣. 馬祖下四世)이 수상좌(秀上座)로 하여금 물어 가로되 남천(南泉)이 천화(遷化)한 후에 어느 곳을 향해 가셨습니까 하게 했다. 스님(長沙景岑이니 南泉의 法嗣 馬祖下二世)이 가로되 석두(石頭)가 사미가 되었을 때 육조를 참견(參見)했느니라. 수(秀)가 가로되 석두가 육조를 뵌 것을 물음이 아닙니다. 남천이 천화한 후에 어느 곳을 향해 가셨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저로 하여금 심사거(尋思去)케 했느니라. 수가 가로되 화상이 비록 천척(千尺)의 한송(寒松)이 있긴 하나 또한 가지를 돋는 석순(石筍)이 없습니다 (雖有千尺寒松 且無抽條石筍). 스님이 묵연(默然)했다. 수가 가로되 화상의 답화(答話)에 감사합니다. 스님이 또한 묵연했다. 수가 돌아가 삼성에게 들어 보이자 삼성이 가로되 만약 이러하다면 오히려 임제보다 일곱 걸음 수승하다 하노라.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긴 하나 나의 다시 감험(勘驗)함을 기다려 보아라. 다음 날에 이르러 삼성이 올라가 묻되 받들어 듣자오니 화상이 어제 남천천화(南泉遷化)의 일칙어(一則語)에 답하신 것은 가히 이르노니 광전절후(光前絶後)며 금고(今古)에 듣기 드문 것입니다. 스님이 또 묵연했다 [五燈會元卷四 長沙章]. 이(伊)는 이인칭(二人稱) 또는 삼인칭(三人稱). 광전절후(光前絶後)는 앞에도 뒤에도 비할 만한 이가 없다는 말. 후생(後生)에 이와 같은 현자(賢者)가 없을 것이므로 절후(絶後)며 그 현덕(賢德)이 전세(前世)를 빛냈으므로 광전(光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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