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제첨발(斷際添鉢)
) -->
일무첨발책무염(一無添鉢責無厭)
구소엄비대의재(嫗笑掩扉大疑哉)
약요작적선착적(若要作賊先著賊)
약불명현병불채(藥不瞑眩病不瘥)
) -->
하나도 첨발(添鉢)함이 없으면서 만족이 없다고 꾸짖고는
할미가 웃으며 사립문을 닫으니 크게 의심스럽도다
만약 도적질을 하고자 하거든 먼저 도적에게 잡혀야 하고
약이 명현(瞑眩)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느니라.
제목 황벽(黃檗. 希運이니 百丈懷海의 法嗣)이 어느 날 예불하던 차에 대중(大中. 小太宗이라고 불린 훗날의 唐十七代 皇帝인 宣宗. 신분을 숨기고 鹽官齊安의 會下에서 書記職을 맡고 있었는데 이때 황벽은 首座였음)이 보고서 물어 가로되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며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며 중(衆. 僧)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는다 (不著佛求 不著法求 不著衆求. 維摩經卷中 不思議品文) 하였거늘 예배하여 마땅히 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황벽이 이르되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며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며 중(衆)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므로 늘 이와 같이 예배하노라. 대중이 이르되 예배를 써서 무엇하겠습니까. 황벽이 곧 손바닥으로 갈기니 (掌은 手掌을 써서 때리는 것) 대중이 이르되 태추생(太麤生. 生은 助字)이로다. 황벽이 이르되 이 속에 무엇이 소재(所在)하길래 추(麤)를 설하고 세(細)를 설하느냐 하고는 황벽이 또 손바닥으로 갈겼다. 대중이 뒤에 국위(國位)를 계승(繼承)하여 황벽에게 호(號. 諡號니 황벽이 唐宣宗 大中二年戊辰에 示寂했음)를 내리기를 추행사문(麤行沙門)이라 하였는데 배상국(裴相國. 裴休니 黃檗의 法嗣)이 조정(朝廷)에 있으면서 나중에 아뢰어 단제선사(斷際禪師)라고 사(賜)하였다 (裴休가 諫하여 말하되 三掌은 폐하를 위해 三際를 끊어 준 것입니다 하여 바꾸어 斷際라 함) [碧巖錄卷二 十一則].
1~4행 단제선사(斷際禪師)가 처음 낙경(雒京)에서 구걸(求乞)을 행(行)하며 첨발성(添鉢聲. 발우에 施物을 넣으라는 소리)을 읊었는데 한 할미가 가시 사립문(棘扉) 사이에서 나와 가로되 태무염족생(太無厭足生. 生은 助字. 너무 만족함이 없음)이로구나. 단제가 가로되 그대는 오히려 보시도 하지 않았거늘 도리어 무염(無厭)이라고 꾸짖음은 어째서입니까. 할미가 웃으며 사립문을 닫았다. 단제가 그것을 기이(奇異)하게 여겨 더불어 얘기하면서 약을 일으키는 바가 많았다. 고별하고 떠나가자 할미가 가로되 남창(南昌)으로 가서 마대사(馬大師. 馬祖의 姓이 馬)를 뵘이 옳습니다. 단제가 강서(江西)에 이르니 대사는 이미 화거(化去)했으며 탑이 석문(石門)에 있다 함을 들었고 드디어 가서 예탑(禮塔)했다. 때에 대지선사(大智禪師. 大智는 百丈懷海의 諡號)가 막 탑 곁에 초려(草廬)를 엮었는데 인해 그 멀리서 온 뜻을 서술(叙述)하고 평석(平昔)의 득력언구(得力言句)를 듣기를 원했고 대지(大智)가 일할(一喝)에 삼 일 귀먹은 얘기를 들어 그에게 보이매 단제가 혀를 토하며 크게 놀랐으며 상종(相從)함이 오래였다. 모년(暮年)에 비로소 신오(新吳)의 백장산(百丈山)으로 이거(移居)했는데 그때를 고찰(考察)하건대 할미는 죽은 지 오래이건만 대송고승전(大宋高僧傳)에 가로되 할미가 단제에게 축원(祝願)하여 백장(百丈)을 뵈라 했다 함은 아니니라 [林間錄卷上]. 책(責)은 꾸짖을 책. 염(厭)은 만족할 염. 싫을 염. 무염(無厭)은 만족함이 없음. 구(嫗)는 할미 구. 여자 구. 엄(掩)은 닫을 엄. 막을 엄. 가릴 엄. 비(扉)는 사립문 비. 착적(著賊)은 도적(盜賊)에게 잡힘. 명(瞑)은 아찔할 면이나 보통 명으로 발음함. 눈 감을 명. 현(眩)은 아찔할 현. 채(瘥)는 병 나을 채.
'태화당수세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법안문성(法眼聞性) (0) | 2019.08.10 |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신수명권(神秀冥權) (0) | 2019.08.10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원효구토(元曉嘔吐) (0) | 2019.08.10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영자팔법(永字八法) (0) | 2019.08.10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관인문조주소목불화(官人問趙州燒木佛話) (0) | 2019.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