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❶俱胝竪指
俱胝和尙 凡有詰問 唯擧一指 後有❷童子 因外人問 和尙說何❸法要 童子亦竪❹指頭 胝聞 遂以刃斷其指 童子負痛號哭而去 胝復召之 童子迴首 胝却竪起指 童子忽然❺領悟 胝將❻順世 謂衆曰 吾得❼天龍一指頭禪 一生受用不盡 言訖❽示滅
無門曰 俱胝幷童子悟處 不在指頭上 若向者裏見得 天龍同俱胝幷童子 與自己❾一串穿却
頌曰 俱胝❿鈍置老天龍 利刃⓫單提⓬勘小童 ⓭巨靈擡手⓮無多子 分破華山千萬重
❶俱胝; 俱胝和尙 唐代僧 名元修 福淸(今屬福建)人 武宗時 結庵於靈石山 嘗誦七俱胝咒 故名 宣宗四年(八四九) 創翠石院 曾參杭州天龍 龍竪一指 遂得悟 自是凡有學者參問 唯竪一指曰 吾得天龍一指禪 一生用不盡 後住婺州金華山 [五燈會元四 傳燈錄十一 祖堂集十九]
❷童子; 梵語究摩羅 鳩摩羅迦 爲八歲以上未冠者之總稱 西國希出家而寄侍於比丘所者 稱曰童子 又經中稱菩薩爲童子 卽非稚齒 以菩薩是如來之王子故也 又取無婬欲念 如世童子之意 [寄歸傳三 玄應音義五 釋氏要覽上]
❸法要; 簡約說法之樞要者 卽樞要之法義也
❹指頭; 卽指 頭 後綴
❺領悟; 理解他人所敎 如所敎而開悟
❻順世; 指僧之逝世 又作順化 順寂 取其順世道而死化示滅之義 按釋氏要覽下 佛門中稱死爲涅槃 圓寂 歸眞 歸寂 滅度 遷化 順世等 其意義皆同
❼天龍一指頭禪; 天龍 唐代僧 嗣大梅法常(嗣馬祖) 住杭州天龍 傳法於婺州金華山俱胝 [傳燈錄十 五燈會元四] ▲傳燈錄十一 金華俱胝 初住庵 有尼名實際 到庵戴笠子執錫繞師三匝云 道得卽拈下笠子 三問 師皆無對 尼便去 師曰 日勢稍晩且留一宿 尼曰 道得卽宿 師又無對 尼去後歎曰 我雖處丈夫之形 而無丈夫之氣 擬棄庵往諸方參尋 其夜山神告曰 不須離此山 將有大菩薩來爲和尙說法也 果旬日天龍和尙到庵 師乃迎禮具陳前事 天龍竪一指而示之 師當下大悟 自此凡有參學僧到 師唯擧一指無別提唱 有一童子於外被人詰曰 和尙說何法要 童子竪起指頭 歸而擧似師 師以刀斷其指頭 童子叫喚走出 師召一聲 童子回首 師却竪起指頭 童子豁然領解 師將順世 謂衆曰 吾得天龍一指頭禪 一生用不盡 言訖示滅
❽示滅; 同示寂 寂者圓寂 又寂滅也 是涅槃之譯語 示寂(示滅)者爲示現涅槃之義 言佛菩薩及高德之死也
❾一串; 串 量詞 用于連貫起夾的東西
❿鈍置; 意爲折磨 作弄 折騰 ▲祖庭事苑一 鈍置 下當作躓 音致 礙不行也
⓫單提; 不拘泥語言知解 不執著俗情妄念 直截指向本心根源 稱爲單提
⓬勘; 禪人之間試驗對方悟道之深淺稱爲勘 亦作勘辨勘驗等
⓭巨靈; 銷釋金剛科儀會要註解八 言巨靈者 乃太華山之神 巨靈卽乃名也 因母昔有染緣之業 受罪於斯山底 巨靈欲救母罪 力所不能 後入華山西 恭禮鏡月峰光照禪師處 拜告曰 吾母受罪於此山未出 今欲請師求救 師卽書一唵字 與神斧上 於是持斧于山頂 用斧一劈 山卽兩開 其母承斯總持神呪之力 卽生忉利天 巨靈求道三年 立化於華山之頂 後爲金剛密跡大神也 所以云 劈開華嶽連天色 放出黃河至海聲 ▲祖庭事苑一 巨靈 郭緣生述征記云 華山(又稱太華山 華嶽)與首陽 本一山 河神巨靈擘開 以通河流 故掌迹存焉
⓮無多子; 沒多少 很少 子 助詞
③❶구지수지(俱胝竪指)
구지화상(俱胝和尙)은 무릇 힐문(詰問)하는 이가 있으면 오직 한 손가락을 들었다. 후에 ❷동자(童子)가 있어 외인(外人)이 묻되 화상(和尙)이 어떤 ❸법요(法要)를 설하시는가 함으로 인해 동자도 또한 ❹지두(指頭)를 세웠다. 구지가 듣고는 드디어 칼로 그 손가락을 잘랐다. 동자가 고통을 지고 호곡(號哭)하면서 가자 구지가 다시 그를 불렀다. 동자가 머리를 돌리자 구지가 도리어 손가락을 세워일으켰다. 동자가 홀연히 ❺영오(領悟)했다. 구지가 장차 ❻순세(順世)하려 하면서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❼천룡(天龍)의 일지두선(一指頭禪)을 얻어 일생에 수용(受用)하고도 다하지 않았다. 말을 마치자 ❽시멸(示滅)했다.
무문(無門)이 가로되 구지와 동자의 깨친 곳은 손가락 상에 있지 않다. 만약 이 속을 향해 보아 얻는다면 천룡과 구지와 동자를 자기(自己)와 더불어 ❾일곶(一串)으로 꿰어버릴 것이다.
송왈(頌曰) 구지가 노천룡(老天龍)을 ❿둔치(鈍置)하여/ 예리한 칼로 ⓫단제(單提)하여 소동(小童)을 ⓬감(勘)했도다/ ⓭거령(巨靈)이 손을 들매 ⓮무다자(無多子)지만/ 화산(華山)의 천만 겹을 분파(分破)했도다.
❶구지(俱胝); 구지화상(俱胝和尙)이니 당대(唐代)의 승려며 이름은 원수(元修)며 복청(福淸. 지금 福建에 속함) 사람임. 무종(武宗) 때 영석산(靈石山)에 암자를 엮어 늘 칠구지주(七俱胝咒)를 외운지라 고로 이름함. 선종사년(宣宗四年. 849) 취석원(翠石院)을 창건했음. 일찍이 항주(杭州)의 천룡(天龍)을 참알(參謁)했는데 천룡이 한 손가락을 세우자 드디어 깨침을 얻었음. 이로부터 무릇 학자의 참문(參問)이 있으면 오직 한 손가락을 세우고 가로되 내가 천룡의 일지선(一指禪)을 얻어 일생에 써도 다하지 않는다. 후에 무주(婺州)의 금화산(金華山)에 머물렀음. [五燈會元四 傳燈錄十一 祖堂集十九].
❷동자(童子); 범어로는 구마라(究摩羅)ㆍ구마라가(鳩摩羅迦)임. 여덟 살 이상의 갓을 쓰지 않은 자의 총칭(總稱)임. 서국(西國. 西域)에서 출가를 희망하여 비구(比丘)의 처소에서 기숙(寄宿)하며 시봉하는 자를 일컬어 가로되 동자임. 또 경중(經中)에 보살(菩薩)을 일컬어 동자라 함은 곧 어린 나이가 아니라 보살은 이 여래의 왕자(王子)이기 때문이며 또 음욕(婬欲)의 생각이 없음이 세속의 동자와 같다는 뜻을 취함임. [寄歸傳三 玄應音義五 釋氏要覽上].
❸법요(法要); 설법(說法)의 추요(樞要)를 간약(簡約)한 것. 곧 추요(樞要)의 법의(法義)임.
❹지두(指頭); 곧 지(指. 손가락)니 두(頭)는 후철(後綴. 接尾辭)임.
❺영오(領悟); 타인이 가르친 바를 이해(理解)함. 가르친 바와 같이 개오(開悟)함.
❻순세(順世); 승인(僧人)의 서세(逝世)를 가리킴. 또 순화(順化)ㆍ순적(順寂)으로 지음. 그가 세도(世道)를 따라 사화(死化)ㆍ시멸(示滅)함의 뜻을 취했음. 석씨요람하(釋氏要覽下)를 안험(按驗)컨대 불문(佛門) 중에 죽음을 일컬어 열반(涅槃)ㆍ원적(圓寂)ㆍ귀진(歸眞)ㆍ귀적(歸寂)ㆍ멸도(滅度)ㆍ천화(遷化)ㆍ순세(順世) 등이라 하나니 그 의의(意義)가 다 같음.
❼천룡일지두선(天龍一指頭禪); 천룡(天龍) 당대(唐代)의 승려며 대매법상(大梅法常. 馬祖를 이었음)을 이었고 항주(杭州) 천룡(天龍)에 거주했고 법을 무주(婺州) 금화산(金華山)의 구지(俱胝)에게 전했음. [傳燈錄十 五燈會元四]. ▲전등록십일(傳燈錄十一) 금화구지(金華俱胝). 처음 암자(庵子)에 머물 적에 비구니(比丘尼)가 있어 이름이 실제(實際)였는데 암자에 이르러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잡고 스님을 세 바퀴 돌고는 이르되 말해 얻는다면 곧 삿갓을 집어 내리겠습니다. 세 번 물었지만 스님이 다 대답을 못했다. 니(尼)가 곧 떠나려 하자 스님이 가로되 일세(日勢)가 조금 늦었으니 다만 머물며 일숙(一宿)하시오. 니가 가로되 말해 얻는다면 곧 일숙하겠습니다. 스님이 또 대답을 못했다. 니가 간 후 탄식해 가로되 내가 비록 장부(丈夫)의 형상(形相)에 처했지만 장부의 기상(氣像)이 없도다. 암자를 버리고 제방(諸方)으로 가서 참심(參尋)하려 했는데 그날 밤에 산신(山神)이 고해 가로되 이 산을 떠남을 쓰지 마시오, 장차 대보살(大菩薩)이 오셔서 화상(和尙)을 위해 설법함이 있을 것입니다. 과연 열흘 만에 천룡화상(天龍和尙)이 암자에 이르렀다. 스님이 이에 맞이하여 예배하고 앞의 일을 갖추어 진술(陳述)했다. 천룡(天龍)이 한 손가락을 세워 그에게 보였다. 스님이 당하(當下)에 대오했다. 이로부터 무릇 참학승(參學僧)의 내도(來到)함이 있으면 스님이 오직 한 손가락을 들고 특별한 제창(提唱)이 없었다. 한 동자(童子)가 있었는데 밖에서 타인의 힐문(詰問)을 입었으니 가로되 화상(和尙)이 어떤 법요(法要)를 설하시는가. 동자가 손가락(指頭. 頭는 助詞)을 세워 일으켰다. 돌아와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스님이 칼로 그 손가락을 잘랐다. 동자가 부르짖으며 달려 나갔다. 스님이 부르는 한 소리에 동자가 머리를 돌렸다. 스님이 도리어 손가락을 세워 일으켰다. 동자가 휑하게(豁然) 영해(領解. 받아들여 이해함)했다. 스님이 장차 순세(順世. 죽음)하려 하면서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천룡의 일지두선(一指頭禪)을 얻어 일생(一生)에 쓰고도 다하지 않았다. 말을 마치자 시멸(示滅. 示寂)했다.
❽시멸(示滅); 시적(示寂)과 같음. 적(寂)이란 것은 원적(圓寂)이며 또 적멸(寂滅)이니 이는 열반(涅槃)의 역어(譯語)임. 시적(示寂. 示滅)이란 것은 열반을 시현(示現)함의 뜻이 됨. 불(佛)ㆍ보살(菩薩) 및 고덕(高德)의 죽음을 말함.
❾일곶(一串); 곶(串) 양사(量詞)임. 연결해 꿰거나 끼는(夾) 동서(東西)에 사용함.
❿둔치(鈍置); 뜻이 절마(折磨)ㆍ희롱함ㆍ절등(折騰)이 됨. ▲조정사원일(祖庭事苑一). 둔치(鈍置) 아래는 마땅히 지(躓)로 지어야함. 음이 치(致)니 막혀서 가지 못함임.
⓫단제(單提); 언어와 지해(知解)에 구니(拘泥. 拘束)되지 않고 속정(俗情)의 망념(妄念)에 집착하지 않고 바로 끊어 본심의 근원으로 지향(指向)함을 일컬어 단제(單提)라 함.
⓬감(勘); 선인(禪人) 들 사이에 상대방의 오도(悟道)의 심천(深淺)을 시험함을 일컬어 감(勘)이라 함. 또 감변(勘辨)ㆍ감험(勘驗) 등으로 지음.
⓭거령(巨靈); 소석금강과의회요주해팔(銷釋金剛科儀會要註解八). 말한 거령(巨靈)이란 것은 곧 태화산(太華山)의 신(神)이니 거령은 곧 이에서 이름했다. 어머니가 옛적에 염연(染緣)의 업(業)이 있음으로 인해 이 산의 바닥에서 죄를 받았다. 거령이 어머니의 죄를 구제하고자 하였으나 힘으로 능히 하지 못할 바이였다. 후에 화산(華山)의 서쪽으로 들어가 경월봉(鏡月峰) 광조선사(光照禪師)의 처소에 공례(恭禮)하고 예배하고 가로되 나의 어머니가 이 산에서 죄를 받으면서 나오지 못합니다. 이제 스님에게 청해 구구(求救)할까 합니다. 선사가 곧 하나의 옴자(唵字)를 써서 신(神)의 도끼 위에 붙여 주었다. 이에 도끼를 가지고 산정(山頂)에서 도끼를 사용해 한 번 쪼개매 산이 곧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의 어머니가 이 총지신주(總持神呪)의 힘을 받들어 곧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 거령은 구도(求道)한 지 삼 년에 화산의 꼭대기에서 입화(立化. 서서 죽음)했으며 후에 금강밀적대신(金剛密跡大神)이 되었다. 소이(所以)로 이르되 화악(華嶽)을 벽개(劈開)하매 천색(天色)에 닿아, 바다에 이르는 황하(黃河)의 소리를 방출(放出)한다(劈開華嶽連天色 放出黃河至海聲). ▲조정사원일(祖庭事苑一). 거령(巨靈) 곽연생(郭緣生. 晉나라 사람)의 술정기(述征記)에 이르되 화산(華山. 또 명칭이 太華山ㆍ華嶽)과 수양산(首陽山)이 본디 일산(一山)이었으나 하신(河神)인 거령(巨靈)이 벽개(擘開. 擘은 쪼갤 벽)하여 강하(江河)의 흐름을 통하게 했으므로 고로 장적(掌迹)이 현존한다.
⓮무자다(無多子); 얼마(多少) 없음. 매우 적음. 자(子)는 조사(助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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