㉕三座說法
❶仰山和尙 夢見往彌勒所安第三座 有一尊者 白槌云 今日當第三座說法 山乃起白槌云 ❷摩訶衍法❸離四句絕百非 ❹諦聽諦聽
無門曰 且道 是說法不說法 開口卽失 閉口又喪 不開不閉❺十萬八千
頌曰 白日青天 夢中說夢 揑怪揑怪 誑謼一衆
❶仰山和尙; 仰山慧寂和尙 慧寂(八○七~八八三) 唐代僧 爲潙仰宗開山祖師之一 韶州(廣東韶關)葉氏 初生頗有異蹟 爲童穉依番禺安和寺不語通出家 年十四父母欲奪其志 遂斷二指以爲誓 因從剃落 通累加接引 而師無所啓發 年十八 通卒 因往謁乳源 洎筠州處微 吉州性空 鵶山躭源 皆不契 至大和三年(八二九) 參大潙靈祐 擧性空如人在井之緣 因而有省 山指令請戒於襄陽之大悲 師曰 慧寂平生不妄語 山云 你但依沙門法 師從之 時年三十三矣 復還潙山作直歲 尋領衆居郴州之王莽山 旣而移錫居袁州仰山 衆盈數百 一日 有梵僧負貝葉造師 師問 近離甚處 曰 早別西天 師曰 太遲生 曰 游山翫水 師曰 神通不無你 佛法未夢見 曰 來此禮文殊 却遇小釋迦 語訖隱去 大中十三年(八五九) 韋宙中丞 爲師創洪州觀音院居之 咸通(八六○~八七三)中 歸韶州之東平山 至中和三年二月十三日 集衆說偈 以兩手抱屈膝 儼然而終 歸葬於仰山 師行道於世 蒙寵賜者三 懿宗賜號知宗 僖宗賜澄虛 昭宗諡智通 [祖庭事苑七 宋高僧傳十二] ◆仰山 位於江西宜春縣之南 山勢絶高 須仰視方得見 故稱仰山 又稱大仰山 唐僖宗時 潙山靈祐之弟子慧寂 曾於此地 開創禪院 發揚潙山靈祐之宗風 此卽禪宗之潙仰宗 仰山亦因此而聞名 慧寂滅後 經智齊擇和等 至慧南之弟子行偉時 大振法道 興盛一時 山中共有三塔 卽西塔南塔東塔 此外山下有棲隱寺 宋代更名爲太平興國禪寺
❷摩訶衍; 梵語摩訶衍 譯言大乘 大者對小之稱 乘以運載爲義 以名敎法 卽大敎也 使求灰身滅智空寂之涅槃之敎 謂之小乘 此中有聲聞緣覺之別 使開一切智之敎爲大乘 此中有一乘三乘之別 ▲翻譯名義集五 摩訶衍 大論云 摩訶此含三義 謂大多勝 衍是乘也
❸離四句絕百非; 禪門拈頌集第一六四則 拈頌說話云 四句百非者 海照頌云 强計眞常起有無 飜成十六性情麁 已起未起幷三世 根本四句百不孤 筆削(起信論疏筆削記四)云 百非者 一異有無等四句明之 則一 非一 亦一 亦非一 異 非異 亦異 亦非異 有 非有 亦有 亦非有 無 非無 亦無 亦非無等 共成十六 過現未三世 各有十六 則共成四十八 已起未起亦各有四十八 則共成九十六 幷根本四句 則却成百非也
❹諦聽; 卽從心中明白地聽聞佛法
❺十萬八千; 意謂相距禪法十萬八千里 形容距離極遠 差別極大 是禪家習用批評語
㉕삼좌설법(三座說法)
❶앙산화상(仰山和尙)이 꿈에 보니 미륵(彌勒)의 처소에 가서 제삼좌(第三座)에 앉았다. 한 존자(尊者)가 있어 백추(白槌)하고 이르되 금일은 마땅히 제삼좌(第三座)가 설법하십시오. 앙산이 이에 일어나 백추(白槌)하고 이르되 ❷마하연법(摩訶衍法)은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가 끊겼으니(❸離四句絕百非) ❹체청(諦聽)하고 체청(諦聽)하십시오.
무문(無門)이 가로되 그래 말하라, 이것이 설법인가 설법이 아닌가. 입을 열면 곧 잃고 입을 닫으면 또 죽으며(喪) 열지도 않고 닫지지 않으면 ❺십만팔천(十萬八千)이니라.
송왈(頌曰) 백일청천(白日青天)에/ 꿈 속에서 꿈을 설하누나/ 괴이(怪異)를 꾸미고 괴이를 꾸며/ 일중(一衆)을 속이는구나.
❶앙산화상(仰山和尙); 앙산혜적화상(仰山慧寂和尙)임. 혜적(慧寂. 807~883) 당대(唐代)의 승려며 위앙종(潙仰宗)의 개산조사(開山祖師)의 하나가 됨. 소주(韶州. 廣東 韶關) 섭씨(葉氏)며 처음 출생하자 자못 이적(異蹟)이 있었음. 어린이가 되자 번옹(番禺) 안화사(安和寺)의 불어통(不語通)에 의지(依止)해 출가하였음. 나이 열넷에 부모가 그 뜻을 뺏으려 하자 드디어 두 손가락을 잘라 맹서(盟誓)를 삼았으며 인하여 체락(剃落)을 좇았음. 통(通)이 누차(屢次) 접인(接引)을 가했으나 스님은 계발(啓發)한 바가 없었음. 나이 열여덟에 통이 죽자 인해 유원(乳源)에게 가서 참알(參謁)했으며 균주(筠州)의 처미(處微)ㆍ석상(石霜)의 성공(性空)ㆍ아산(鵶山)의 탐원(躭源)에 이르렀으나 다 계합(契合)치 못했음. 대화삼년(大和三年. 829)에 이르러 대위영우(大潙靈祐)를 참알(參謁)해 성공(性空)의, 마치 어떤 사람이 우물에 있음과 같다는 인연을 들어 인해 살핌이 있었음. 위산(潙山)이 양양(襄陽)의 대비원(大悲院)에 청계(請戒. 곧 수계)를 지령(指令)하자 스님이 가로되 혜적(慧寂)은 평생에 망어(妄語)를 하지 않았습니다. 위산이 이르되 너는 단지 사문법(沙門法)에 의지(依止)하라. 스님이 이를 좇았는데 때의 나이는 서른셋이었음. 다시 위산으로 돌아와 직세(直歲)가 되었으며 이윽고 대중을 거느리고 침주(郴州)의 왕망산(王莽山)에 거주하였음. 그러고는 이석(移錫)하여 원주(袁州)의 앙산(仰山)에 거주했는데 대중이 수백(數百)을 채웠음. 어느 날 어떤 범승(梵僧)이 패엽(貝葉. 佛經을 가리킴)을 지고 스님에게 나아가자 스님이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아침에 서천(西天)을 떠났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너무 느리다. 가로되 유산완수(游山翫水)했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신통(神通)은 너에게 없지 않으나 불법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가로되 여기에 와서 문수(文殊)에게 예배하려 했더니 도리어 소석가(小釋迦)를 만났습니다. 말을 마치자 은몰(隱沒)했음. 대중십삼년(大中十三年. 859) 위주중승(韋宙中丞)이 스님을 위해 홍주(洪州)에 관음원(觀音院)을 창건(創建)하고 거쳐하게 했음. 함통(咸通. 860~873) 중에 소주(韶州)의 동평산(東平山)으로 돌아갔다가 중화삼년(中和三年) 이월 십삼일에 이르자 대중을 모아 게(偈)를 설하고 두 손으로 무릎을 안아 구부러지게 하고는 의젓이 마쳤음. 앙산으로 귀장(歸葬)했음. 스님이 세상에 도를 행해 총사(寵賜)를 입은 게 세 번이니 의종(懿宗)이 호를 주어 지종(知宗)이라 했고 희종(僖宗)이 징허(澄虛)를 주었고 소종(昭宗)이 지통(智通)이라 시호(諡號)했음. [祖庭事苑七 宋高僧傳十二]. ◆앙산(仰山) 강서 의춘현(宜春縣)의 남쪽에 위치함. 산세가 몹시 높아 반드시 우러러 보아야 비로소 얻어 보는지라 고로 앙산(仰山)이라 일컬음. 또 대앙산(大仰山)이라고도 일컬음. 당(唐) 희종(僖宗) 때 위산영우(潙山靈祐)의 제자 혜적(慧寂)이 일찍이 이 땅에 선원(禪院)을 개창(開創)하여 위산영우의 종풍(宗風)을 발양(發揚)하였으니 이것이 곧 선종의 위앙종(潙仰宗)임. 앙산도 또한 이로 인해 이름이 소문(所聞)났음. 혜적(慧寂)이 입멸(入滅)한 후 지제(智齊)ㆍ택화(擇和) 등을 경유해 혜남(慧南. 黃龍慧南)의 제자 행위(行偉)에 이르렀을 때 법도(法道)를 크게 떨쳤으며 일시(一時)에 흥성했음. 산중에 모두 세 탑이 있는데 곧 서탑(西塔)ㆍ남탑(南塔)ㆍ동탑(東塔)임. 이 밖에 산 아래 서은사(棲隱寺)가 있는데 송대(宋代)에 이름을 바꿔 태평흥국선사(太平興國禪寺)라 했음.
❷마하연(摩訶衍); 범어 마하연(摩訶衍)은 번역해 말하면 대승(大乘)임. 대(大)란 것은 소(小)에 상대한 명칭이며 승(乘)은 운재(運載)로써 뜻을 삼나니 교법(敎法)으로 이름하면 곧 대교(大敎)임. 회신멸지(灰身滅智)하여 공적(空寂)의 열반의 교(敎)를 구하게 하는 것을 소승(小乘)이라고 이르며 이 가운데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구별이 있음. 일체지(一切智)의 교(敎)를 열게 하는 것을 대승(大乘)이라 하나니 이 가운데 일승(一乘)과 삼승(三乘)의 구별이 있음. ▲번역명의집오(翻譯名義集五). 마하연(摩訶衍) 대론(大論. 大智度論)에 이르되 마하(摩訶), 이것은 세 뜻을 함유(含有)하나니 이르자면 대다승(大多勝)이며 연(衍)은 이 승(乘)이다.
❸이사구절백비(離四句絕百非);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제164칙 염송설화(拈頌說話)에 이르되 사구백비(四句百非)란 것은 해조(海照. 未詳)의 송(頌)에 이르되 진상(眞常)을 억지로 계산해 유무(有無)를 일으켜/ 도리어 십육(十六)을 이루니 성정(性情)이 거칠도다/ 이기(已起)ㆍ미기(未起)와 아울러 삼세(三世)에/ 근본사구(根本四句)니 백(百)이라 외롭지 않도다. 필삭(筆削. 起信論疏筆削記四)에 이르되 백비(百非)란 것은 일(一)ㆍ이(異)ㆍ유(有)ㆍ무(無) 등 사구(四句)로 이를 밝히자면 곧 일(一)ㆍ비일(非一)ㆍ역일(亦一)ㆍ역비일(亦非一)과 이(異)ㆍ비이(非異)ㆍ역이(亦異)ㆍ역비이(亦非異)와 유(有)ㆍ비유(非有)ㆍ역유(亦有)ㆍ역비유(亦非有)와 무(無)ㆍ비무(非無)ㆍ역무(亦無)ㆍ역비무(亦非無) 등 모두 십육(十六)을 이루고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三世)에 각기 십육(十六)이 있으니 곧 모두 사십팔(四十八)을 이루고 이기(已起)와 미기(未起)에 또한 각기 사십팔(四十八)이 있으니 곧 모두 구십육(九十六)을 이루고 근본사구(根本四句. 一異有無)를 아우르니 곧 도리어 백비(百非)를 이룬다.
❹체청(諦聽); 곧 심중(心中)의 명백지(明白地)로부터 불법(佛法)을 청문(聽聞)함.
❺십만팔천(十萬八千); 뜻으로 이르자면 선법(禪法)과의 서로의 거리(距離)가 십만팔천 리니 거리가 극히 멀고 차별이 극히 큼을 형용(形容)함. 이는 선가(禪家)에서 습관(習慣)으로 쓰는 비평어(批評語)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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