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송구집

선림송구집(禪林頌句集) 七言四句以上 十五畫(11-15) 鴈過長空 練得身形 蓮眸一瞬 潮回寒浦 震法雷

태화당 2019. 8. 29. 10:41

鴈過長空豈遺影 影沈寒水水無心

但能體得無心處 不用無心道自深 拈頌卄九 一三七五則 義懷鴈過長空話 慧覺頌


기러기가 長空을 지나면서 어찌 그림자를 남길 것이며/ 그림자가 寒水에 빠져도 물은 무심하도다/ 다만 능히 무심한 곳을 체득한다면/ 무심을 쓰지 않아도 도가 스스로 깊으리라.

 

練得身形似鶴形 千株松下兩函經

我來問道無餘說 雲在靑天水在缾 傳燈錄十四 藥山章 李翺偈


身形練得하여 鶴形과 흡사하며/ 천 그루의 소나무 아래 두 상자의 경이로다/ 내가 와서 도를 물으매 나머지 말이 없고/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 하더라.

은 익힐 련. 助字.

藥山(惟儼이니 石頭法嗣. 靑原下二世)看經하던 차에 朗州刺史李翶(藥山法嗣)가 이르렀으나 약산이 묵연하며 달리 돌아보지도 않자 이고가 이에 가로되 얼굴을 봄이 이름을 들음만 같지 못합니다(見面不如聞名) 하고 소매를 떨치고 바로 나가자 약산이 이고를 불렀다. 이고가 머리를 돌리자 약산이 가로되 자사는 어찌해서 귀를 히 여기고 눈을 하게 여김을 얻는가(何得貴耳賤目). 이고가 돌아와 拱手하며 謝過하고 또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약산이 손으로 위를 가리키고 다시 아래를 가리키고는 가로되 알겠는가. 이고가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약산이 가로되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느니라(雲在靑天水在甁) [宗門拈古彙集卷第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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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眸一瞬孰能當 百萬衆中唯飮光

法眼至今傳不絶 綿綿地久與天長 拈頌一 五則 拈花示衆話 法眞一頌


연꽃 눈동자를 한 번 깜작이매 누가 능히 당하는가/ 백만의 대중 중에 오직 음광이로다/ 법안이 至今토록 하여 끊어지지 않았으니/ 면면히 땅의 오램과 하늘의 장구함이로다.

蓮眸는 불타의 눈이니 꽃을 들어 가섭에게 보였다고도 하고 혹은 靑蓮目으로 가섭을 돌아보았다고도 함. 는 눈동자 모. 綿은 끊어지지 않을 면. 솜 면. 綿綿은 끊어지지 않는 모양.

蓮比目 維摩經(維摩詰所說經卷上) 寶積長者에 이르되 눈이 청정하고 길고 넓어 靑蓮과 같고/ 마음이 청정하여 諸禪定에 건너셨도다/ 오래 淨業을 쌓아 無量을 일컬으며/ 중생을 引導하되 寂靜을 쓰는지라 고로 稽首합니다. 楚法師(로 의심됨. 注維摩詰經로 지어졌음. 僧肇)가 이르되 서방의 靑蓮의 꽃잎에 大人의 눈 모양이 있으므로 고로 연꽃으로써 눈에 比喩한다 [祖庭事苑卷第六].

이때 여래께서 이 寶座에 앉아 이 蓮花(大梵王이 바친 꽃)를 받고 無說無言하고 다만 연화를 집어 大會 중에 들어가셨다. 팔만사천 人天의 때의 대중이 다 그쳐() 默然했다. 때에 장로 마하가섭이 불타의 拈花示衆 불사를 보고 즉금 하여 破顔微笑했다. 불타가 바로 고해 말씀하시되 이러하니라(是也). 나에게 正法眼藏涅槃妙心이며 實相無相微妙法門이며 不立文字하는 敎外別傳이며 總持任持하여 凡夫成佛하는 第一義諦가 있어 이제 비로소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大梵天王問佛決疑經 拈花品第二].

迦葉 범어로 이르되 迦葉波는 여기에선 이르되 飮光이니 이르자면 그 身光最勝이라 諸天飮服하므로 고로 이름함 [祖庭事苑卷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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潮回寒浦月明初 父子生涯有異途

的是破家能做活 何愁放却一船魚 雜毒海一 天衣 月堂昌


潮水가 돌아오는 차가운 포구의 달 밝은 / 父子의 생애가 다른 길이 있었도다/ 端的히 이 破家하고 능히 삶을 짓거늘/ 어찌 한 배의 고기를 놓쳤음을 근심하리오.

어릴 때 船尾에 앉았는데 아버지가 물고기를 잡아 스님(天衣義懷)에게 주며 그것을 꿰게 했다. 스님이 참지를 못하고 이에 사사로이 江中에 던졌다. 아버지가 해 볼기를 쳤지만 스님은 고요히 전과 같았다 [五燈全書卷第三十四 天衣義懷禪師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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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法雷擊法鼓    布慈雲兮灑甘露

龍象蹴踏潤無邊 三乘五性皆醒悟

雪山肥膩更無雜 純出醍醐我常納

一性圓通一切性 一法遍含一切法

一月普現一切水 一切水月一月攝

諸佛法身入我性 我性同共如來合

一地具足一切地 非色非心非行業

彈指圓成八萬門 刹那滅却三祇劫

一切數句非數句 與吾靈覺何交涉 證道歌


法雷를 울리고 법고를 치며/ 慈雲을 펴고 감로를 뿌리도다/ 龍象이 차고 밟으매 윤택이 무변하여/ 三乘五性이 다 醒悟하도다/ 설산의 肥膩는 다시 잡됨이 없어/ 순전히 제호를 내어 내가 늘 받아들이노라/ 一性이 뚜렷이 一切性에 통하고/ 一法이 두루 일체법을 포함하며/ 一月이 널리 일체의 물에 나타나고/ 일체의 水月一月攝受하도다/ 제불의 법신이 나의 성품에 들어오고/ 나의 성품이 한가지로 여래와 합하도다/ 一地一切地具足하니/ 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行業도 아니로다/ 손가락 퉁기매 팔만문을 圓成하고/ 찰나에 三祇劫을 멸각하도다/ 일체의 數句가 수구가 아니거늘/ 나의 靈覺과 무슨 교섭이리오.


는 제호 제. 는 제호 호.

龍象 大毗婆沙(阿毘達磨大毘婆沙論 二百卷 五百大阿羅漢等造 唐 玄奘譯. 卷第一百三)에 이르되 大龍象이 있나니 으로써 손을 삼고 로써 어금니를 삼고 로써 머리를 삼고 思念으로써 목을 삼고 그 두 어깨에 善法擔集한다 [祖庭事苑卷第七].

雪山에 풀이 있으니 이름해 가로되 肥膩. 소가 만약 먹는다면 순전히 醍醐를 얻는다 [涅槃經卷第八].

五性 一無種性闡提定性聲聞이며 定性緣覺이며 不定性이며 菩薩性[祖庭事苑卷第七].

우유로부터 이 나오고 낙으로부터 生酥(는 타락죽 소)가 나오고 생소로부터 熟酥가 나오고 숙소로부터 醍醐가 나오나니 제호가 최상이라 만약 복용하는 자가 있으면 뭇 병이 다 제거되느니라 [涅槃經卷第十四 聖行品].

刹那心 新婆沙論(阿毘達磨大毘婆沙論 二百卷 五百大阿羅漢等造 唐 玄奘譯. 卷第一百三十六)에 이르되 저 刹那을 어떻게 가히 아는가. 어떤 이는 이 말을 짓나니 施設論에서 함에 의거하자면 예컨대() 中年의 여인이 繢毳(는 토끝 궤. 피륙의 끄트머리. 는 솜털 취. 곧 토끝. 으로 지어졌음)를 길쌈할 때 가는 털을 抖擻(털어버림)하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나니 이에 齊等함을 怛刹那量이라고 설한다. 그가 毛縷(는 실 루)短長을 설하려 하지 않고 단지 毳毛가 손가락 사이를 좇아 나옴을 설함은 손가락을 따라 나온 이 이 怛刹那間이다. 묻되 찰나를 무슨 연고로 이에 시설론의 달찰나량을 인용하는가. 답하되 이 가운데 를 들어 를 나타내기 때문이니 는 알기 어려워서 가히 나타내지 못하는 연고이다. 이르자면 百二十刹那一怛刹那를 이룬다. 俱舍(阿毘達磨俱舍釋論 二十二卷 婆藪盤豆造 陳 天竺三藏 眞諦譯. 卷第九)에 이르되 힘 있는 丈夫가 한 번 손가락 퉁기는 頃刻六十三刹那(六十五刹那로 지어졌음)가 있다 [祖庭事苑卷第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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徹骨窮來不厭窮 橫眠倒臥白雲中

飢飡一盋和羅飯 此外無能振祖風 西山亮錄 西山亮偈


뼈에 사무치게 궁핍하지만 궁핍을 싫어하지 않나니/ 백운 가운데 가로 눕고 거꾸로 눕노라/ 주리면 한 발우의 화라반을 먹나니/ 이 외엔 능히 祖風을 떨칠 게 없도다.


鉢和羅飯을 받는다는 것은 鉢中이다. 범어로 이르되 鉢多羅는 여기에선 이르되 應量器和字는 그르다. 今時에 다만 이르되 이란 것은 이다. 經題에 이른 은 곧 이 이다. 譯時隨俗하여 이를 제목해 이르되 이니 이 다 이 그릇인 연고다 [佛說盂蘭盆經疏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