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책(ㄱ)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책(ㄱ) 990-991쪽

태화당 2019. 5. 9. 09:02

極果謂至極究竟之果 如大乘之佛果 小乘之無學果 又稱無上涅槃之極果 卽指佛之正覺 乃因位修行之結果 大乘義章八 無漏極果 所謂盡智及無生智 百丈淸規六龜鏡文 至如未悟心源 時中亦不虛棄 是眞僧寶爲世福田 近爲末世之津梁 畢證二嚴之極果 無異廣錄二十二 迦葉波 此云飮光勝尊 (中略)乃至付法傳衣 爲西天初祖 此因果歷然 以嚴飾金故 而得身有金光 以願力相資 而證極果

극과(極果) 이르자면 지극한 구경의 과()니 대승의 불과와 소승의 무학과 같은 것임. 또 명칭이 위없는 열반의 극과니 곧 불타의 정각을 가리킴. 곧 인위에서 수행한 결과임. 대승의장8. 무루극과(無漏極果) 이른 바 진지(盡智) 및 무생지다. 백장청규6 귀경문. 심원을 깨치지 못함과 같음에 이르더라도 시중(時中)에 또한 헛되이 버리지 않는다면 이는 참다운 승보며 세상의 복전이 되나니 가깝기로는 말세의 진량(津梁)이 되고 필경엔 2()의 극과(極果)를 증득한다. 무이광록22. 가섭파 여기에선 이르되 음광승존(飮光勝尊)이다 (중략) 내지 부법전의(付法傳衣; 법을 부촉 받고 옷을 전해 받음)하여 서천의 초조가 되었다. 이 인과가 역연하여 금으로 엄식(嚴飾; 장엄하게 장식)한 연고로 몸에 금빛이 있음을 얻고 원력이 서로 도움으로써 극과(極果)를 증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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克勤(1063-1135) 又作克懃 宋代楊岐派僧 四川崇寧人 俗姓駱 字無著 幼於妙寂院依自省出家 受具足戒後 於成都依圓明學習經論 後至五祖山參法演 蒙其印證 與佛鑑慧懃 佛眼淸遠齊名 世有演門二勤一遠之稱 被譽爲叢林三傑 崇寧(1102-1106)中 於成都昭覺寺開法 政和初年(1111)至荊州 當世名士張無盡禮謁之 與之談論華嚴要旨及禪門宗趣 復受澧州刺史之請 住夾山靈泉禪院 復徙道林 時因樞密鄧子常之奏請 敕賜紫服及佛果禪師之號 政和中 奉詔移住金陵蔣山 次住天寧萬壽 大振宗風 後居於金山 高宗幸揚州時 詔其入對 賜號圜悟 世稱圜悟克勤 後歸成都昭覺寺 紹興五年示寂 壽七十三 諡號眞覺禪師 弟子有大慧宗杲 虎丘紹隆等禪門龍象 曾於夾山之碧巖 集雪竇重顯之頌古百則 編成碧巖錄十卷 世稱禪門第一書 此外有圜悟佛果禪師語錄二十卷 [大慧普覺禪師年譜 僧寶正續傳四 嘉泰普燈錄十一 佛祖歷代通載三十 釋氏稽古略四]

극근(克勤) (1063-1135) 또 극근(克懃)으로 지음. 송대 양기파승. 사천 숭녕(崇寧) 사람이며 속성은 낙이며 자는 무착. 어릴 적에 묘적원에서 자성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구족계를 받은 후에 성도(成都)에서 원명에게 의지해 경론을 학습했음. 후에 오조산에 이르러 법연(法演)을 참알해 그의 인증을 받았음. 불감혜근(佛鑑慧懃)ㆍ불안청원(佛眼淸遠)과 더불어 이름이 가지런해 세상에 연문(演門; 法演門下)의 이근일원(二勤一遠)의 칭호가 있으며 총림의 삼걸(三傑)이란 명예를 입었음. 숭녕(1102-1106) 중 성도 소각사(昭覺寺)에서 개법했음. 정화 초년(1111) 형주에 이르러 당세(當世)의 명사(名士)인 장무진을 예알해 그와 더불어 화엄의 요지(要旨) 및 선문의 종취(宗趣)를 담론했음. 다시 예주자사의 청을 받아 협산의 영천선원에 주지하다가 다시 도림으로 이사했음. 때에 추밀(樞密) 등자상의 주청(奏請)으로 인해 자복(紫服)과 및 불과선사(佛果禪師)란 호를 칙령으로 주었음. 정화(1111-1117) 중에 조칙(詔勅)을 받들어 금릉의 장산(蔣山)으로 이주했고 다음에 천녕의 만수(萬壽)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음. 후에 금산에 거주했는데 고종이 양주에 거둥했을 때 그를 불러 입대(入對. 궁에 들어가 마주함)했으며 원오(圜悟)란 호를 주었으니 세칭이 원오극근(圜悟克勤). 후에 성도 소각사로 돌아갔으며 소흥 5년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73이며 시호는 진각선사(眞覺禪師). 제자에 대혜종고ㆍ호구소륭 등의 선문의 용상(龍象)이 있음. 일찍이 협산의 벽암(碧巖)에서 설두중현의 송고(頌古) 100칙을 모아 벽암록 10권을 편성했는데 세칭이 선문제일서(禪門第一書). 이 밖에 원오불과선사어록 20권이 있음 [대혜보각선사년보. 승보정속전4. 가태보등록11. 불조역대통재30. 석씨계고략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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克岐(1309-1391) 明代臨濟宗僧 字仲邠 別號尙素 台之臨海(今屬浙江)徐氏 年十三 依天台明巖太古熙得度 得法於龍翔笑隱大訢禪師 出世四明五峰 遷大梅 升淨慈 [增集續燈錄五]

극기(克岐) (1309-1391) 명대 임제종승. 자는 중빈이며 별호는 상소니 태()의 임해(지금 절강에 속함) 서씨. 나이 13에 천태 명암의 태고희에게 의지해 득도하고 용상의 소은대흔선사(笑隱大訢禪師)에게서 득법했음. 사명의 오봉에서 출세했으며 대매로 옮겼다가 정자로 올라갔음 [증집속등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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克己克 除己之私心也 [禪林寶訓音義] 禪林寶訓一 欲行所得之道而利於人 先須克己惠物下心於一切

극기(克己) ()은 자기의 사심을 제거함임 [선림보훈음의]. 선림보훈1. 얻은 바의 도를 행하여 사람을 이롭게 하고자 한다면 먼저 모름지기 극기(克己)하여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일체에 하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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克期約定期限 克 約定 大川普濟語錄 結夏上堂 禁足護生 脚跟下乞命底 紛紛紜紜 克期取證 平地上埋沒人 千千萬萬 倂却咽喉唇吻 道得一句 岳林墮落拔舌地獄 不入虎穴爭得虎子

극기(克期) 약정의 기한이니 극()은 약정. 대천보제어록. 결하에 상당하다. 금족하여 호생(護生)하거늘 발뒤꿈치 아래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자가 분분운운(紛紛紜紜)하다. 극기(克期)하여 취증(取證)하면 평지상에서 사람을 매몰함이 천천만만(千千萬萬)이다. 목구멍과 입술을 닫아버리고 1구를 말해 얻는다면 악림(岳林)이 발설지옥에 타락한다. 범의 굴에 들지 않으면 어찌 범의 새끼를 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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