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三 雪竇祖英上 71 려갈절(糲竭節)

태화당 2019. 9. 5. 10:05

糲竭節玄米 .

梵云糲竭節 此言杖 智門祚和上綱宗歌云 糲竭節拽路布 靈利衲僧通一路 師子不捉麒麟兒 猛獸那堪牀下顧 糲 或作剌 郞達切

 

범어로 이르되 糲竭節은 여기 말로는 . 智門光祚和上(香林澄遠法嗣. 雲門下二世)綱宗歌에 이르되 려갈절로 路布(아래 卷第六에 이르되 마땅히 露布로 지어야 함. 하지 않은 詔表를 가로되 露布)를 끄나니()/ 靈利한 납승은 一路로 통하도다/ 사자가 기린아를 잡지 않거늘/ 맹수가 어찌 아래에서 돌아봄을 감내하리오. 는 혹은 로 짓나니 郞達切.

 

露冕冕旒.

東漢郭賀 字喬卿 雒陽人 拜荊州刺史 引見賞賜 恩寵隆異 及到官 有殊政 百姓便之 歌曰 厥德仁明郭喬卿 忠正朝廷上下平 顯宗巡狩到南陽 時見嗟嘆 賜以三公之服 黼黻冕旒 敕行部去幨帷 使百姓見其容服 以彰有德 每所經過 吏人指以相示 莫不榮之

 

동한(후한)郭賀喬卿이며 낙양 사람이다. 荊州刺史除拜(除授)되었는데 引見(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불러들이어 봄)하여 상을 내렸고 은총이 隆異(隆盛하고 特異)했다. 官衙(官廳 )에 도착하자 특수한 德政이 있었으며 백성이 그것을 편안히 여겼다. 노래해 가로되 그 덕이 仁明郭喬卿이여 조정에 忠正하여 상하가 태평하네. 顯宗(後漢 第二代孝明帝 재위 58-75)巡狩하다가 南陽에 도착하자 때로 보면서 嗟嘆했으며 三公(중국 한국 일본에서 근대 이전에 세 개의 최고위 大臣職位를 나타냈던 말로 三台 三槐 등으로도 부름)의 옷과 黼黻冕旒(는 면류관술 류)를 하사했다. 行部에 칙령해 幨帷(揮帳 . 는 휘장 유)를 걷게 해 백성으로 하여금 그 容服을 보게 하여 덕이 있음을 表彰했다. 매양 경과하는 곳엔 吏人이 가리키며 서로 보이면서 그것을 영예롭게 여기지 않음이 없었다(以上後漢書卷二十六에 나옴).

 

蒼蒼

蒼蒼靑靑天之色 穹穹窿窿天之形 蓋以天地之大德 以比無私之政治也

 

蒼蒼靑靑은 하늘의 색이며 穹穹窿窿(은 하늘 궁. 높을 궁. 窿은 활꼴 륭)은 하늘의 형상이다. 대개 천지의 대덕으로써 無私한 정치에 비유함임.

 

倚毗는 도울 비.

猶毗倚也

 

毗倚와 같음.

 

生祠

古人有德政 惠及生民 往有遺愛去 思爲立生祠 繪塑形像 以四時饗之 東漢王堂 字敬伯 廣漢郪人也 永初中 西羗宼巴郡 爲民患 詔書遣中郞將尹就攻討 連年不剋 三府擧堂治劇 拜郡守 堂馳兵赴賊 斬虜千餘級 巴庸淸淨 吏民生爲立祠 庸 卽上庸縣也 郪 千私切

 

古人德政이 있어 혜택이 生民에게 미치고, 가면서 애정을 남기고 떠남이 있으면 사모해서 生祠(생전에 세우는 사당)를 세웠다. 形像繪塑(는 그릴 회. 는 진흙으로 사람이나 물건의 형상을 만들 소)하여 四時를 따라 그를 歆饗(神明이 제물을 받음)했다. 동한(후한)王堂敬伯이며 廣漢(땅 이름 처) 사람이다. 永初中107-113西羗巴郡을 겁탈해 백성의 우환이 되자 詔書로 중랑장 윤취를 보내어 공격하며 토벌했으나 連年(여러 해를 계속함)토록 이기지 못했다. 三府에서 王堂을 천거해 (이니 어려울 극)을 다스리게 하면서 군수로 除拜했다. 이 장병을 달려 도적에 다다라 오랑캐() 千餘級(首級 )을 베었다. 이 청정해졌고 吏民(관리와 백성)이 생전에 위하여 사당을 세웠다(後漢書卷三十一 王堂傳을 보라). 은 곧 上庸縣. 千私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