蒱團▶蒱는 도박 포. 노름 포.
當从浦作蒲 水艸 可以作席 蒱摴 蒲戲也 非義▶蒲는 마땅히 蒱로 지어야 함.
마땅히 浦를 좇아 蒲(부들 포. 창포 포)로 지어야 하나니 水艸며 可以 方席을 만듦. 蒱는 摴(雙六 저. 도박 저)며 蒱戲니 뜻이 아님.
猿猱▶猱는 원숭이 노.
下奴刀切 猴也
下는 奴刀切이니 猴(원숭이 후)임.
綸言▶綸은 낙싯줄 륜.
禮記 緇衣 子曰 王言如絲 其出如綸 王言如綸 其出如綍발 故大人不倡游言 游 猶浮也 不可用之言也 綍 音弗
예기 緇衣(禮記 第三十三의 篇名) 공자가 가로되 왕의 말이 실과 같으면 그 나옴이 낚싯줄(綸)과 같고 왕의 말이 낚시줄과 같으면 그 나옴이 동아줄(綍은 동아줄 발. 원음이 불)과 같다. 고로 大人은 游言을 부르지(倡) 않는다. 游는 浮와 같나니 가히 쓰지 못할 말임. 綍은 음이 불임.
紫袍
僧史 古之所貴 名與器焉 賜人章服 極則朱紫 緣皁조黃綬乃爲降次 故曰加紫綬수 必得金章 今僧但受其紫而不金 方袍非綬也 尋諸史 僧衣赤黃黑靑等色 不聞朱紫 按唐書 則天朝有僧法朗等 重譯大雲經 陳符命言 則天是彌勒下生爲閻浮提主 唐氏含微 故由之革命稱周 法朗 薛설懷義九人竝封縣公 賜物有差 皆賜紫迦沙銀龜袋 賜紫自此始也 又玄宗時 友愛頗至 以寧王疾 遣中使尙藥 馳驚旁午 唯僧崇憲醫効 帝悅 賜緋비魚袋 又代宗永泰年中 章敬寺僧崇慧與道士角術告勝 中官鞏공庭玉宜賜紫衣一副 除魚袋也 今大宋降誕節賜 其或內道場僧已著紫 又賜紫羅衣 三事謂之重紫▶緣은 마땅히 綠으로 지어야 함.
僧史(大宋僧史略 三卷 宋 贊寧撰. 卷下) 옛적에 귀하게 여긴 바는 名과 器였다. 사람에게 章服(章은 문채 장. 곧 무늬나 기호 따위를 넣은 옷)을 하사하매 지극한 즉 朱紫였으며 녹색 검은색 황색의 인끈(綬)은 곧 降次(내림의 차례)가 되었으므로 고로 가로되 紫綬를 加하매 반드시 金章을 얻었다. 요즘 승려는 단지 그 紫衣를 받기는 하되 금장이 아니며 方袍(세 가지 가사가 모두 네모졌으므로 방포라 함)는 인끈(綬)이 아니다. 諸史를 찾아보니 僧衣는 赤黃黑靑 등의 색이며 朱紫는 듣지 못했다. 唐書를 안험하니 則天朝에 僧 法朗 등이 있어 大雲經을 重譯하고 符命(하늘에서 임금이 될 만한 사람에게 주는 상서로운 징조)의 말을 진술하되 측천은 이 미륵이 하생하여 염부제의 주인이 될 것이며 唐氏는 衰微함을 머금었습니다. 고로 이로 말미암아 혁명해 周라고 일컬었다. 法朗과 薛懷義 九人이 아울러 縣公에 封해졌으며 하사하는 물품에 차이가 있었으며 다 紫迦沙와 銀龜袋를 하사했다. 賜紫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또 玄宗 때 友愛가 자못 지극했는데 寧王이 질병이 들자 中使를 尙藥(尙은 主管할 상. 곧 약을 주관함)으로 보냈다. 馳驚하면서 旁午(旁은 오락가락할 방. 午는 어수선할 오. 곧 오고 감이 심함)했는데 오직 僧 崇憲의 의술이 卽效했다. 帝가 기뻐서 붉은 魚袋를 하사했다. 또 代宗의 永泰年中498-500 장경사의 僧 崇慧가 道士와 妖術을 다투어 승리를 고하자 中官인 鞏庭玉이 마땅히 紫衣 한 벌(副는 量詞)을 하사했으나 魚袋를 除했다. 지금 大宋은 강탄절에 하사하거나 그 혹은 내도량 승려가 이미 紫衣를 입었거나 또 紫羅衣를 내리거나 하는 三事를 重紫라고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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