錢塘▶塘은 둑 당. 못 당.
昔郡議曹華倍 義立此塘 以防海水 遂開募有能致土石一斛 與錢一千 旬日之間 來者雲集 塘未成而譎휼不復取 遂弃土石而去 塘以之成也 見東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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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에 郡議인 曹華倍가 義擧로 이 둑을 세워 海水에 방비하려 했다. 드디어 開募(公開하여 모집함)하기를 능히 土石 一斛(斛은 열말들이 곡. 휘 곡)을 이르게 하면 錢 一千을 준다. 열흘 사이에 來者가 운집했다. 둑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속이어 다시 취하지 않는다 하자 드디어 土石을 버리고 떠났다. 둑이 이로써 이루어졌다. 東漢書(後漢書)를 보라(후한서에 나오지 않는 얘기임).
單傳
傳法諸祖 初以三藏敎乘兼行 後達摩祖師單傳心印 破執顯宗 所謂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然不立文字 失意者多 往往謂屛去文字 以默坐爲禪 斯實吾門之啞羊爾 且萬法紛然 何止文字不立者哉 殊不知道猶通也 豈拘執於一隅 故卽文字而文字不可得 文字旣爾 餘法亦然 所以爲見性成佛也 豈待遺而後已 予嘗覧新金山 或曰十篇 其八 或曰 人心本質 皆住其自性 柰내何奔走道路 遺?淳風 且吾聖人之道 自無上乘中不立一塵一名 至於有法過於涅盤 亦說如幻如夢 故蕭梁之世 有達磨西來 不立文字 貴在從其要也 今之知識 昏默斯道 乃互立事迹 得不增其迁천倚 而不乖濫者哉 曰 子之所議 志在匹夫 而不善聖人之行事也 且古之人君而有天下 皆省方觀民而設敎化 欲使民不濫 吾聖人之道豈不然乎 豈獨志子不言而爲無爲者邪 子豈不聞始皇坑儒焚書 欲我黔검黎려歸于淳素 民至于今 咸稱無道 子當飮我昌言 無以覆車同轍也 夫爲天下之宗匠者 事欲光大吾道 厥有百家蹊徑 無所不學 苟不然者 凡升堂入室 而四方學者雲萃戶庭 機鋒竝進 則將何以頓挫 旣亡精辨 玉石胡分 紊亂是非 不能排擯 夫是則非爲異人不服 抑亦將吾道之墜地也▶書에 ?字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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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법한 諸祖가 처음엔 三藏敎乘을 兼行했다. 뒤에 달마조사가 心印을 單傳(홑으로 전함)하며 집착을 깨뜨리고 宗(근본 宗이니 心을 가리킴)을 나타냈으니 이른 바 敎 밖에 따로 傳하여 문자를 세우지 않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하고 성불함이다. 그러나 不立文字에 뜻을 잃는 자가 많다. 왕왕 이르되 문자를 屛去(屛은 물리칠 병. 곧 물리쳐 제거함)하고 默坐로써 禪을 삼는다 하거니와 이는 실로 吾門(宗門을 가리킴)의 啞羊일 뿐이다. 또 만법이 紛然하거늘 어찌 문자를 세우지 않는 것에 그치리오. 너무 알지 못하나니(殊不知) 도는 오히려 通이거늘 어찌 한 모퉁이에 拘執하겠는가. 고로 문자에 卽(나아갈 즉)해서 문자를 가히 얻지 않아야 하리라. 문자가 이미 그러하여 나머지 법도 또한 그러하므로 所以로 견성성불하는 것이다. 어찌 버림(遺)을 기다린 후에 그치랴. 내가 일찍이 新金山(金山瑞新이니 福昌重善의 法嗣. 雲門下三世. 아래 卷第六에 新金山의 胡陽集이란 문구가 있음)을 보았는데 혹은 가로되 十篇임. 그 八에 혹은 가로되(누가 말하되) 人心의 본질이 다 그 自性에 머물거늘 어찌하여(柰는 奈와 통함. 어찌 나. 어찌 내) 도로에 奔走하며 淳風을 遺?(書에 ?字가 없음)하는가. 또 우리 聖人의 도는 無上乘 중에 一塵도 세우지 않음으로부터 열반을 초과하는 법이 있음에 이르기까지 또한 설하기를 幻과 같고 꿈과 같다 하였다. 고로 蕭梁(南朝의 梁은 蕭씨임)의 時代(世)에 달마가 西來함이 있어 문자를 세우지 않음은 귀하게 여김이 그 宗要를 좇음에 있음이거늘 지금의 지식이 이 도를 昏默(어둡고 잠잠함)케 하여 이에 서로 事迹을 세우니 그 迁倚(迁은 遷의 俗字. 곧 옮겨 기댐)를 더하지 않고 乖濫(어그러지고 넘침)하지 않음을 얻는 것이라 하겠는가. 가로되 자네의 의논하는 바는 뜻이 匹夫에 있음이라 聖人의 行事를 잘하지 못함이다. 또 옛적의 人君이 천하를 가짐(有)은 다 지방을 살피고 인민을 보아서 교화를 베풀었음이며 인민으로 하여금 넘치지 않게 하려 함이었으니 우리 성인의 道도 어찌 그렇지 않다 하겠는가. 어찌 유독 자네의 不言하여 無爲를 삼음에 뜻(志)을 세우겠는가. 자네가 어찌 듣지 못했는가. 始皇이 坑儒焚書(서기전 213년 460여 명의 儒生을 구덩이에 파묻고 諸子百家의 서적을 불태웠음)한 것은 우리의 黔黎(黎는 무리 려. 黔黎는 黔首와 같음. 黔은 검을 검이니 검은 머리를 가리킴. 곧 백성을 뜻하는 말. 秦나라 때 백성을 처음으로 黔首라고 일컬었음)를 淳素(淳朴素朴)로 돌아가게 하려 했으나 인민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 일컫되 無道하다 하거늘 자네는 마땅히 나의 昌言을 마시고 수레을 엎음으로써 同轍이라 하지 말게나. 무릇 천하의 宗匠이 되는 자는 事業이 우리의 도를 光大케 하려 함이므로 그 百家의 蹊徑이 있음을 배우지 않는 바 없어야 한다. 진실로 그렇지 못한 자는 무릇 升堂커나 入室하매 사방의 학자가 戶庭에 구름처럼 모여 機鋒이 아울러 進前하매 곧 장차 무엇으로써 단박에 끊겠는가. 이미 精辨이 없거늘(亡) 玉石을 어찌 분변하랴. 시비가 문란해도 능히 排擯치 못하리니 무릇 이러한 즉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복종치 않을 것이며 또한(抑亦) 장차 우리의 道가 땅에 떨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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