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殿橫戟▶戟은 창 극.
或者多引唐太宗故事 語言多無典據 誠取笑識者 謹錄唐太宗帝紀云 高祖義旗初建 立長子建成爲皇太子 時太宗功業日盛 高祖私許立爲太子 建成密知之 乃與齊王元吉 潛謀作亂 因引太宗入宮夜燕 欲行酖짐毒 旣而太宗心中暴痛 吐血數升 淮安王神通 很흔俱扶還西宮 高祖幸第問疾 因敕更勿夜聚 因謂太宗曰 發迹晉陽 剋平宇內 是汝大功 欲升儲저位 汝固讓不受 以成汝美志 建成自立東宮 多歷年所 今復不忍奪之 觀汝兄弟是不和 同在京邑 必有忿競 汝還行臺 居於洛陽 將行 建成密令數人上封事 於是遂停 是後日夜連結後宮 譖訴愈切 高祖惑之 九年 突厥犯邊 詔元吉率師 拒之 元吉因兵集 將與建成克期擧事 長孫無忌.房玄齡 杜如晦 尉울遲敬德 日夜固爭曰 事急矣 若不行權道 社稷必危 今大王臨機不斷 坐受屠戮 於義何成 太宗然其計 六月三日 密奏建成元吉淫亂後宮 因自陳曰 臣於兄弟無絲毫所負 今欲殺臣 臣今枉死 永違君親 高祖省之愕然曰 明日當勘問 汝宜早參 四日 太宗將左右九人至玄武門 自召高祖已 召岐 窮覈핵建成 元吉覺變 卽回馬將歸 太宗隨而呼之 元吉馬上張弓再三 不彀구 太宗乃射之 建成應絃而斃 元吉中流矢而走 尉遲敬德殺之 甲子 立太宗爲皇太子 八月 詔傳位于皇太子 尊高祖爲太上皇 橫戟謂太宗也 披袞곤謂神堯也 語雖不類 意或似之▶書에 자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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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者가 당태종의 故事를 많이 인용하거니와 語言이 많고 典據가 없어 진실로(誠) 識者에게서 웃음을 취함. 삼가 당태종의 帝紀를 기록한다. 이르되 高祖(565-635. 재위 618-626. 李淵이니 당나라의 建國者)가 義旗를 처음 세우고는 長子 建成을 세워 황태자로 삼았다. 때에 太宗(599-649. 李世民이니 高祖 李淵의 次男. 재위 627-649)은 功業이 날로 왕성했으며 고조가 私的으로 허락하며 세워서 태자로 삼으려 했다. 建成이 몰래 그것을 알고 이에 齊王인 元吉(太宗의 동생)과 가만히 모의해 作亂했다. 인하여 태종을 유인해 입궁하게 하여 밤에 잔치하면서 酖毒(酖은 鴆짐새의 술 짐)을 행하려 했다. 이미 그러하자 태종이 가슴 속이 갑자기 아프면서 피를 토하기가 몇 되였다. 淮安王인 神通(太宗의 叔父)이 爭訟(很은 말다툼할 흔. 어길 흔. 말 듣지 않을 흔)하다가 함께 부축해 西宮으로 돌아갔다. 고조가 집(第)에 幸(임금의 行次를 일컬음)하여 問疾하고 인하여 칙령으로 다시는 밤에 모이지 말라 했다. 인하여 태종에게 일러 가로되 晉陽에서 發迹하여 宇內(천하. 온 세계)를 剋平한 것은 이 너의 大功이다. 儲位(儲는 태자 저)에 오르려거든 네가 확고히 사양하며 받지 않는다면 너의 美志를 이룰 것이다. 建成을 東宮으로 세움으로부터 많이 年所를 겪은지라 지금 다시 차마 그것을 빼앗지 못한다. 너의 형제를 보니 이 화합하지 못하고 함께 京邑에 있으면 반드시 忿競이 있으리니 너는 行臺로 돌아가 洛陽에 거주하라. 장차 行하려는데 건성이 몰래 몇 사람을 시켜 封事(왕에게 밀봉하여 올리던 글. 封奏 封章 封疏라고도 함)를 올렸고 이에 드디어 停止했다. 이 후로 日夜로 후궁과 연결하여 譖訴가 더욱 간절하자 고조가 그에 眩惑되었다. 九年626 突厥이 변방을 침범하자 元吉에게 詔令해 군사를 인솔하여 그것을 막게 했다. 원길이 장병이 집합함으로 인하여 장차 건성과 克期(刻期니 기한을 정함)하여 擧事하려 했다. 長孫無忌(?-659) 房玄齡(578-648) 杜如晦(585-630) 尉울遲敬德이 日夜로 굳게 爭論하며 가로되 일이 급하다. 만약 權道(목적 달성을 위해 임기응변으로 취하는 방편)를 행하지 않는다면 社稷(國家. 朝廷)이 반드시 위태하리라. 지금의 大王은 臨機(어떤 때에 임함)하매 결단하지 못하므로 앉아서 屠戮륙을 받으리니 義를 어찌 이루리오. 태종이 그 계책을 그럴싸하게 여겼다. 六月 三日에 몰래 上奏하여 건성과 원길이 후궁과 淫亂하다 하고 인하여 스스로 陳述해 가로되 臣이 형제에게 실터럭만큼도 저버리는 바가 없거늘 지금 臣을 죽이려 하니 臣이 지금 억울하게 죽으면 영원히 君親을 위배할 것입니다. 고조가 그것을 省察하고 놀라며 가로되 明日에 마땅히 勘問(勘은 審問할 감)할 것이니 너는 의당히 일찍 參預하라. 四日에 태종이 左右 九人을 데리고 玄武門에 이르러 스스로 고조를 부른 다음 岐를 불러 건성을 窮覈(追窮하여 覈實함)했다. 원길이 變亂을 깨닫고 곧 말을 돌려 장차 돌아가려는데 태종이 따르며 그를 불렀다. 원길이 馬上에서 활을 얹은 게 再三이었으나 쏘지(彀는 활을 당길 구) 못했다. 태종이 이에 그것을 쏘자 건성이 활시위에 응해 죽었다(斃는 죽을 폐. 넘어져 죽을 폐). 원길은 流矢에 맞아 도주했는데 울지경덕이 그를 죽였다. 甲子日에 태종을 세워 황태자로 삼았고 八月에 조칙하여 황태자에게 傳位했으며 고조를 높여 太上皇으로 삼았다. 橫戟은 이르자면 태종이며 披袞곤은 이르자면 神堯(神聖한 堯임금)니 말은 비록 비슷하지 않지만 뜻은 혹은 이와 흡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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