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囊▶囊은 주머니 낭.
張行滿 汝海人 汝人多癭영 故命癭人爲智囊 桉史記秦樗저里子 癭而多智 時人號爲智囊 樗 抽居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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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만은 汝海 사람임. 汝 사람은 혹(癭은 혹 영)이 많으므로 고로 癭人을 命名해 智囊이라 함. 사기(卷七十一)를 안험컨대 秦의 樗里子(甘茂가 渭南 陰鄕의 樗저里에서 살았으므로 自號를 樗里子라 했음)가 혹이 있으면서 지혜가 많았으므로 時人이 호하여 智囊이라 했다. 樗는 抽居切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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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子訝▶訝는 의심할 아.
訝當作問 見它本
訝는 마땅히 問으로 지어야 하나니 它本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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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緘
家語 孔子觀周 遂入太祖后稷직之廟 廟堂右階之前 有金人焉 三緘其口 而銘其背曰 古之愼言人也 戒之哉 無多言 多言多敗 無多事 多事多患 安樂必戒 無所行悔 勿謂何傷 其禍將長 勿謂何害 其禍將大 勿謂不聞 神將伺人 焰焰不滅 炎炎若何 涓涓연不壅 終爲江河 綿綿不絶 或成綱羅 毫末不札찰 將尋斧柯 誠能愼之 福之垠은也 口是何傷 禍之門也 强梁者 不得其死 好勝者 必遇其敵 孔子旣讀斯文也 顧謂弟子曰 小人識지之 此言實而中 情而信 詩曰 戰戰兢兢긍 如臨深淵 如履薄冰 行身如此 豈以口過患哉 識 音志 予嘗讀傳燈 有僧亡무名 所撰息心銘 文勢擬此而作也 然金人之緘於口 而亡名之緘緘於心 其理頗勝 學者宜覽觀焉▶綱은 網으로 의심됨.
家語(卷第三) 공자가 周나라를 관광하다가 드디어 태조 后稷직의 廟에 들어갔다. 廟堂의 오른쪽 섬돌 앞에 金人이 있었는데 그 입을 三緘(緘은 封할 함)하였고 그 등에 銘(새길 명)하여 가로되 옛적에 말을 삼간 사람이니 이를 警戒할진저. 多言이 없어야 하리니 多言은 多敗다. 多事가 없어야 하리니 多事는 多患이다. 安樂을 반드시 警戒해 후회를 행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어찌 다치리오 라고 이르지 말라 그 禍가 장차 자란다. 어찌 손해보리오 라고 이르지 말라 그 禍가 장차 커진다. 듣지 않는다고 이르지 말라 神이 장차 사람을 엿본다. 焰焰(焰은 불꽃 염. 곧 활활 탐)하여 不滅하며 炎炎(炎은 불꽃 염. 곧 불이 마구 일어나는 모양. 아름답게 盛한 모양)하니 어떠한가. 涓涓연(涓은 졸졸 흐를 연. 곧 물이 조금씩 흐르는 모양)하여 막히지 않아서 마침내 江河가 된다. 綿綿(綿은 이을 면. 곧 끊임 없음)하여 끊기지 않으니 혹은 網羅를 이룬다. 毫末(末은 끝 말. 곧 털끝)만큼이라도 뽑아버리지(札찰은 拔去임) 않으면 장차 斧柯(도끼자루)를 찾으리라. 진실로 능히 이를 삼가면 복의 언덕(垠은 地境 은. 언덕 은)이니라. 입이 이 어찌 다치리오만 禍의 門이다. 强梁(梁은 굳셀 량)한 자는 그 죽음을 얻지 못하고(天命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그 敵手를 만난다. 공자가 이미 이 글을 읽고서 제자들을 돌아보며 일러 가로되 小人은 이를 기록(識는 기록할 지)하라. 이 말은 진실하면서 的中하며 眞情으로 믿을 만하다. 詩(小雅 節南山之什 小旻)에 가로되 戰戰兢兢(戰은 떨 전. 兢은 삼갈 긍. 곧 매우 두려워 조심함)하며 深淵에 臨함과 같고 薄冰을 밟음과 같다 했으니 몸을 行하되 이와 같다면 어찌 입이 過患이 되겠는가. 識는 음이 지임. 내가 일찍이 전등록을 읽었는데 亡무名이란 승인이 있었다(傳燈錄卷第三十에 나옴). 지은 바 息心銘은 文勢가 이를 본떠서 지은 것이다. 그러나 金人이 입을 封緘했으나 亡名은 마음을 緘緘(자꾸 封緘함)했으니 그 이치가 자못 殊勝하다 하리니 학자는 宜當 보고 살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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