劍嶺誌公
桉僧傳 寶誌 齊建元中 稍초見현異迹 武帝延入後堂居之 旣而 景陽山猶有一誌 與七僧俱 帝怒 遣推檢 失所在 問吏 云誌久在後堂 自後凡遇出 卽以墨塗其身而記云 此言景陽山 不言劍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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僧傳(高僧傳卷第十)을 안험하니 寶誌는 齊 建元中479-482에 조금 異迹을 나타냈다. 武帝가 맞이해 後堂에 들게 하여 거기에서 거처하게 했다. 이미 그러고선 景陽山에 오히려 한 보지가 있고 七僧과 함께 한다 하므로 帝가 怒해 推檢을 보냈는데 所在를 잃었다. 관리에게 물으니 이르되 誌는 오래도록 후당에 있다 했다. 후로부터 무릇 외출함을 만나면 곧 먹으로써 그 몸에 발라 표기했다. 여기에서 말하되 경양산이라 했고 劍嶺을 말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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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騫
卽漢之博望侯也 乘槎사至天河 見祖英靈槎 斬龍頭 廣燈作斬船頭 然二者皆無所出 恐傳者之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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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漢의 博望侯임. 乘槎사하고 天河에 이르렀다 한 것은 祖英의 靈槎(위 卷第三)를 보라. 斬龍頭는 광등록에 斬船頭라 하였거니와(廣燈錄卷第十五에 斬龍頭로 지어졌음) 그러나 二者는 다 나오는 곳이 없으므로 傳한 자의 허망으로 염려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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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王發問
譯經記云 羅什譯維摩經 至芥納須彌 毛呑巨海 姚興閣筆曰 後人信否 如何 什乃謂帝說不思議法 姚興信伏而書之 三人者 卽僧肇預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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譯經記에 이르되 라집이 유마경을 번역하는데 芥子가 須彌를 받아들이고 털이 巨海를 삼킨다(維摩詰所說經卷中에 이르되 須彌가 芥子 중에 들어가고 四大海의 물을 一毛孔에 넣는다) 함에 이르러 姚興(재위 394-416. 後秦의 第二代 高祖文桓帝)이 閣筆(閣은 놓을 각. 곧 붓을 놓음)하고 가로되 후인이 믿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집이 이에 帝에게 일러 不思議法을 설했다. 요흥이 信伏하여 그것을 썼다. 三人이란 것은 곧 僧肇도 參預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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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威儀▶行住坐臥.
桉南陽錄 肅宗遇國師 師起迎 帝曰 何必起也 師曰檀越何得向四威儀內見貧道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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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록을 안험하니 숙종이 국사를 만나자 스님이 일어나 맞이했다. 帝가 가로되 何必 일어나십니까. 스님이 가로되 단월이 어찌하여 四威儀 안을 향해 貧道를 봄을 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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停毒
停當作亭 亭毒 謂天地之氣 所以覆부載養育蒼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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停은 마땅히 亭으로 지어야 함. 亭毒은 이르자면 천지의 氣運이 蒼生(세상의 모든 사람. 蒼民. 蒼氓맹)을 覆載(하늘이 만물을 덮고 땅이 만물을 받쳐 실었다는 뜻)하고 양육하는 所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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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卽六
楞嚴 文殊偈云 一根旣返源 六根成解脫 又元依一精明 分成六和合 一處成休復 六用皆不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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릉엄경(卷第六) 文殊偈에 이르되 一根이 이미 返源(根源으로 돌아감)하니/ 六根이 해탈을 이루도다/ 또 원래 一精明에 의해/ 나뉘어 六和合을 이루었거니와/ 一處가 休復(쉬어서 돌아감)을 이루니/ 六用(眼等 六根의 用)이 다 이루어지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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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蹤迹
當作身土迹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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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身土迹謝로 지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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