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州
師諱從諗심 姓郝학氏 曹州郝鄉人 作沙彌時 造南泉之室 穎拔不群 南泉待之異於流輩 一日問 如何是道 泉曰 平常心是道 師曰 還可趣向否 曰 擬向卽乖 師曰 不擬 那知是道 曰 道不屬知不知 知是妄覺 不知是無記 若眞達不擬之道 猶如大虛廓확然 豈可强是非邪 師旣領旨 却往嵩嶽 請戒而歸 晚游河朔 被檀越之請 唱道於趙州之觀音 一日 眞定帥王公鎔訪師 師坐而問曰 會麽 王曰 不會 師曰 自小持齋身已老 見人無力下禪牀 公益加敬仰 至唐昭宗乾寧未年 仲冬二日 右脇示寂 諡眞際大師▶未는 마땅히 末로 지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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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휘는 從諗심(778-897)이며 성은 郝학氏며 曹州 郝鄉 사람이다. 사미가 되었을 때 南泉의 室로 나아갔는데 穎拔(송곳 끝이 빼어남)하여 不群(어떤 무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뛰어남)이라 남천이 그를 접대함이 流輩(流는 무리 류. 곧 같은 또래)와 달랐다. 어느 날 묻되 무엇이 이 道입니까. 泉이 가로되 平常心이 이 도이니라. 스님이 가로되 도리어 가히 趣向(趣는 趨蹌할 취. 뜻 취. 곧 목적을 정하여 그에 향하는 것)합니까. 가로되 취향하려 한다면 곧 어긋나느니라. 스님이 가로되 헤아리지(擬) 않으면 어떻게 이 道를 알겠습니까. 가로되 도는 앎과 알지 못함에 속하지 않나니 앎은 이 妄覺(허망한 생각. 망령된 생각)이며 알지 못함은 이 無記(華嚴經疏卷第二十四에 이르되 非善非惡이라 능히 愛나 非愛의 果報를 招感하지 않음을 이름하여 無記이다. 허망하게 推度탁하여 非理로 물어 힐난하므로 가히 記錄치 않으므로 고로 이름이 無記니 善惡으로 상대하지 않는 연고이다)이다. 만약 진실로 헤아리지 않음의 道를 통달했다면 마치 큰 허공의 廓然(廓은 휑할 확. 곧 휑함)함과 같거늘 어찌 가히 애써 시비하리오. 스님이 이미 지취를 領悟(領은 깨달을 령)하고는 도리어 숭악으로 가서 請戒(戒를 請함이니 곧 受戒)하고 돌아왔다. 만년에 河朔에 노닐다가 단월의 청을 입어 趙州의 관음원에서 唱道했다. 어느 날 眞定帥인 王公鎔(五代 때의 偏覇니 釋氏稽古略卷三에 이르되 王鎔이 鎭州의 眞定府를 統率하며帥 趙王이라고 일컬었다)이 스님을 방문했다. 스님이 앉아서 물어 가로되 알겠습니까. 王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스님이 가로되 어릴 적부터 齋를 가져 몸이 이미 늙은지라 사람을 보고도 禪牀에서 내려올 힘이 없습니다. 公이 더욱 敬仰을 더했다. 唐 昭宗 乾寧末年897 仲冬(十一月) 二日에 이르러 右脇하여 示寂했다. 시호가 眞際大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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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王
卽鎭帥王鎔也 鎔祖王庭湊주 本回鶻골種族 穆宗時據河朔 稱留後 至鎔封趙王 唐室中興 至明宗朝 爲大將王德明所殺 至於赤族 所謂見趙州之趙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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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鎭帥(鎭州의 통솔자)인 王鎔이다. 鎔의 조상인 王庭湊주는 본디 回鶻골(回紇흘이니 唐나라 때 위구르를 이르던 이름) 종족이다. 穆宗(재위 821-824) 때 河朔을 근거로 留後라 일컬었으며 왕용에 이르러 趙王에 책봉되었다. 唐室(後唐을 가리킴)이 중흥하여 明宗朝(926-933)에 이르러 대장 王德明에게 살해되는 바가 되었으며 赤族(赤은 空의 뜻. 곧 一族이 모두 살해됨)에 이르렀다. 이른 바 조주를 뵌 趙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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