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吾
師諱圓智 豫章海昏張氏子 得度於鄉里 聞道於藥山後住潭州道吾 至唐文宗大和之末 將欲示滅 召衆曰吾當西邁 理無東移 卒年六十七 然道吾有二 襄州關南道吾和上 因聞巫者樂악神入道 嘗作樂락道歌一鉢歌 盛行於世 予嘗讀贊寧高僧傳 且曰 前蜀王氏僞乾德初 有小軍吏陳公 娶高中令駢변諸孫女 若人持不殺二十餘年 後在蜀爲男婚娶 禮須屠宰 高初不欲 親戚言 自己持戒 行禮酒筵연 將何以娛賓也 依違之際 遂多庖割 俄未浹旬 得疾頗異 口但慌言 已而三宿還穌 述冥間之事 初被黑衣使者追攝 入岐府城隍廟 廟神峩冠大袖 與金甲武士晤오坐 使者領高見神 武士言語紛紜 讓高破戒 仍扼腕罵매曰 吾護戒神也 爲汝二十年食寢不遑 豈期忽起殺心 頓虧戒檢 命雖未盡 罪亦頗深 須送冥司 懲其故犯 城隍神問高曰 汝更修何善 追贖속過尤乎 高常誦上生經 其數已多 于時懵몽然 都無記憶 恐懼之間 白曰 誦得自在和上三傷歌 道吾和上一鉢歌 遂合掌向神 厲려聲而念 神與武士 聳용耳擎拳立聽 顔色漸怡이 及卒章 神皆涕泣 乃謂高曰 且歸人間 宜切營善 拜辭未畢 颯삽然起坐 備陳厥事 乃知禪宗唱道歌頌 明於所證法門 誦之者幽顯獲福 不可忽也 師印記於道常禪師 後凡示衆 必戴蓮花笠 披襴衫 執簡吹笛 口稱魯三郞 此法名道吾者也 今潭州道吾 因山而名焉
) -->
스님의 휘는 圓智(769-835. 藥山惟儼의 法嗣. 諸書에 宗智로 表記한 곳이 많음)며 예장 해혼 張氏의 아들이다. 향리에서 得度했고 藥山에게서 聞道했으며 뒤에 潭州 道吾山에 거주했다. 唐 文宗 大和之末835 장차 示滅하려 하면서 대중을 소집해 가로되 내가 마땅히 서쪽으로 가리니 이치가 동쪽으로 옮김이 없다. 卒年은 六十七이다. 그러나 道吾가 둘이 있으니 襄州 關南의 道吾和上(關南道常의 法嗣. 常은 鹽官齊安을 이었음)은 巫者(巫俗人)의 樂神(神을 노래함)을 들음으로 인하여 入道했다(五燈會元卷第四에 이르되 처음 시골의 농막을 지나다가 巫者의 樂神을 들었는데 이르되 識神이 없다. 홀연히 省悟했다. 뒤에 道常禪師를 參見하자 그 안 바를 印可했다). 일찍이 樂락道歌와 一鉢歌를 지었는데 세상에 盛行했다. 내가 일찍이 贊寧의 고승전을 읽었는데 또 가로되 前蜀(901-925)의 王氏(王衍이니 재위 919-925) 僞乾德初919(僞는 正統性을 認定하지 않는 글자)에 小軍吏인 陳公이 있었는데 高中令駢변諸(姓은 高. 이름은 駢諸. 中令은 官名)의 손녀에게 장가들었다. 그(若은 其임) 사람은 不殺戒를 가진 지 二十餘年이었다. 후에 蜀에 있으면서 아들의 婚娶(婚姻)를 위하여 禮式(예법에 따라 행하는 식)으로 屠宰(屠는 죽일 도. 宰는 잡을 재. 곧 도살)를 須要했다. 高가 처음엔 하고 싶지 않았으나 친척이 말하되 자기가 持戒한다면 酒筵연의 禮를 行하면서 무엇을 가져 손님들을 즐겁게 하리오. 依하여 위반할 즈음에 드디어 많이 庖割(庖는 삶을 포. 割은 벨 할)했다. 갑자기 浹旬(열흘)도 안되어 질병을 얻었으며 자못 異狀했다. 입으로 단지 흐리멍덩한(慌) 말만 했다. 이미 그러고선 三宿(三日) 만에 도리어 깨어났으며 冥府(저승) 사이의 일을 진술했다. 처음에 黑衣使者에게 追攝(追捕해 거둠)됨을 입어 岐府의 城隍廟에 들어갔는데 廟神은 높은 冠에 큰 소매였으며 金甲의 武士와 晤坐(晤는 대면할 오. 곧 對坐)했다. 使者가 高를 거느리고 神을 뵈었는데 武士들의 언어가 紛紜(紛은 어지러울 분. 紜은 어지러울 운. 곧 여러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시끄럽고 떠들썩함)하더니 高의 파계를 꾸짖었다(讓). 인하여(仍) 팔을 잡고(扼은 잡을 액) 욕하며(罵는 욕할 매) 가로되 나는 護戒神이다. 너 때문에 二十年 동안 먹고 자는 데에 겨를(遑은 겨를 황. 餘暇 황)이 없었다. 어찌 홀연히 殺心을 일으켜 문득 戒檢(檢은 法 검. 禁制할 금. 곧 계율의 禁制)을 이지러지게 할 줄을 기약했으랴. 목숨이 비록 다하지 않았으나 죄가 또한 자못 깊으므로 반드시 冥司(冥府)로 보내어 그 故意로 범한 것을 懲治(징계하여 다스림)하리라. 성황신이 高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다시 어떤 善을 지어 따라서(追) 過尤(尤는 허물 우. 곧 過誤)를 속죄하겠는가. 高가 늘 上生經(彌勒上生經이니 여러 本이 있음)을 외웠는데 그 數가 이미 많았지만 이때엔 懵然(懵은 희미할 몽. 어두울 몽)하여 도무지 기억이 없었다. 두려워하는 사이에 아뢰어 가로되 自在和上(伏牛山 自在和上이니 馬祖의 法嗣)의 三傷歌와 道吾和上의 一鉢歌(傳燈錄卷第三十에 실려 있음)를 誦得(得은 助字)합니다. 드디어 합장하고 神을 향해 厲聲(厲는 높을 려. 곧 高聲)으로 외었다(念은 욀 념). 신이 무사와 더불어 귀를 세우고 주먹을 받들고 서서 들었다. 안색이 점점 溫和해지더니(怡는 溫和할 이) 章을 마침에 미쳐서는(及) 신들이 다 涕泣했다. 이에 高에게 일러 가로되 다만 인간으로 돌아가서 宜當 간절히 善을 營爲하라. 절하고 고별함을 마치지 않아서 颯然(颯은 홀연 삽. 곧 홀연)히 일어나 앉아서 그 일을 갖추어 진술했다(以上은 宋高僧傳卷第十一에 나옴). 이에 알지니 선종의 唱道하는 歌頌은 證悟한 바의 법문을 밝힘인지라 이를 외우는 자는 幽顯(저승과 이승)에서 복을 얻으므로 가히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리라. 스님이 道常禪師에게서 印記(印可하여 記別함)하였고 뒤에 무릇 示衆하매 반드시 蓮花笠(笠은 삿갓 립)을 쓰고 襴衫(통옷. 저고리와 치마가 이어진 옷)을 입고 竹簡(대쪽)을 잡고 피리를 불고 입으로 魯三郞을 일컬었으니 이는 法名이 道吾란 자이다. 지금의 潭州 道吾는 山으로 인해 이름했다.
'석자역주 조정사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七 八方珠玉集 19 석상(石霜) (0) | 2019.09.08 |
---|---|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七 八方珠玉集 18 불상화(佛桑花) (0) | 2019.09.08 |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七 八方珠玉集 16 조주(趙州) (0) | 2019.09.08 |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七 八方珠玉集 15 중랑(中郞) (0) | 2019.09.08 |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七 八方珠玉集 14 구가(口佉) (0) | 2019.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