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八 雜志 3 염향(拈香) 백추(白椎)

태화당 2019. 9. 8. 10:30

拈香

世典所謂人而無信 不知其可也 曰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是以釋氏之作佛事 未嘗不以拈香爲先者 是所以記香而表信 經曰 信是道源功德母 長養一切諸善根 此其意也 今開堂長老必親拈香者 以所得之法 必有所自 所行之道 其外衛者 必藉乎王臣 俾福慧雙資 必圖報於此日 豈偶然乎 然古今尊宿拈香 多云一瓣 瓣 皮莧切 瓜辨也 以香似之 故稱焉 或作? 步還切 片也 後世相襲 皆爲此言 何必爾也 當云一片一炷 庶免薄俗之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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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典(世間典籍)에서 이른 바 사람으로서 믿음이 없으면 그 옳음을 알지 못한다. 가로되 大車(수레 채 마구리 예)가 없거나 小車(멍에 막이 월)이 없다면 그 무엇으로써 이를 행하리오. 이 때문에 釋氏가 불사를 지으면서 未嘗不(아닌 게 아니라 과연. 未嘗非) 拈香으로써 先頭를 삼는 것은 이 所以가 향을 標識()하여 믿음을 함이다. (華嚴經卷第十四)에 가로되 은 이 도의 根源이며 공덕의 어머니니 일체의 모든 선근을 長養한다. 이것이 그 뜻이다. 여금에 개당하는 장로가 반드시 친히 拈香하는 것은 얻은 바의 법이 반드시 비롯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행하는 바의 는 그 外衛하는 자가 반드시 王臣藉賴(憑藉하여 依支)하여야 福慧로 하여금 쌍으로 도와 반드시 도모하여 이 날에 값음이거늘 어찌 우연이리오. 그러나 고금의 존숙이 拈香하면서 많이 이르기를 一瓣(외씨 판. 量詞)이라 하거니와 皮莧이니 오이()를 나눈() 것이며 향이 이것과 흡사하므로 고로 일컬음이다. 혹은 ?(조각 반)으로 짓나니 步還切이며 이다. 후세에 서로 되풀이하여 다 이 말을 짓지만 하필이면 이러하리오. 마땅히 이르되 一片 一炷라 하면 거의 薄俗(경박한 풍속)의 나무람을 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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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椎

世尊律儀 欲辨佛事 必先秉白 爲穆衆之法也 今宗門白椎 必命知法尊宿以當其任 長老才據座已 而秉白云 法筵龍象衆 當觀第一義 長老觀機法會 酬唱旣終 復秉白曰 諦觀法王法 法王法如是 此蓋先德之眞規 皆不失佛意 且見叢林多擧世尊升座 文殊白椎 或謂徧閱藏乘 不見其緣 然秉白儀範旣出聖製 復何區區求文殊之說 以恣無益之論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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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의 律儀는 불사를 분변코자 하면 반드시 먼저 秉白(羯摩一種)함이 대중을 和睦()하게 하는 법이다. 여금에 종문의 白椎는 반드시 법을 아는 존숙에게 임명해 그 소임을 충당한다. 장로가 겨우 據座한 다음 秉白하여 이르되 法筵龍象衆이여 마땅히 第一義를 보아라. 장로가 법회의 기틀을 본다. 酬唱(서로 주고 받으며 부름)을 이미 마치면 다시 秉白하여 가로되 法王諦觀하라 법왕의 법이 이와 같다. 이것은 대개 先德眞規이며 다 佛意를 잃지 않았다. 또 보니 총림에서 많이들 세존이 升座하자 문수가 白椎한 것을 들거니와 혹은 이르기를 藏乘을 두루 열람했지만 그 인연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秉白儀範이 이미 聖製에서 나왔거늘 다시 어찌하여 區區히 문수의 설을 구하여 무익한 에 맡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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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堂

或問 每質諸佛經 所集四衆 未嘗不坐 今禪門上堂 必立而聽法 何謂也 曰 此百丈禪師之深意也 且佛會說法 四衆雲萃 所說法義 不局性相 所會時節 未知久暫 今禪門自佛敎東流後六百年 達摩祖師方至漢地 不立文字 單傳心印 直指人心 見性成佛 所接學者俾於一言之下頓證無生 所聚之衆非久而暫 故不待坐而立也 百丈曰 上堂升座 主事徒衆 鴈立側聆 賓主問醻 激揚宗要 示依法而住 此其深意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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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묻되 매양 모든 불경을 證驗(은 증험할 질)하니 모인 바 四衆未嘗不 앉았거늘 여금에 선문의 상당엔 반드시 선 채로 聽法함은 무엇을 이름()인가. 가로되 이것은 百丈禪師의 깊은 뜻이다. 佛會의 설법엔 四衆이 구름처럼 모였으며 설한 바 法義性相에 국한되지 않았고 所會의 시절이 久暫(오래와 잠시)을 알지 못했다. 지금의 선문은 불교가 東流함으로부터 六百年 후에 달마조사가 비로소 漢地에 이르렀으며 문자를 세우지 않고 홑으로 心印을 전하여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하고 성불케 했으며 접인하는 바의 학자에게 一言之下無生頓證케 했다. 모인 바의 대중이 오래가 아니고 잠시이므로 고로 앉음을 기다리지 않고 선 것이다. 백장이 가로되 上堂하여 升座하면 主事徒衆鴈立하여 側聆(은 들을 령. 곧 귀를 기울여 들음)하고 賓主問醻(는 응대할 수. 곧 문답)하며 宗要激揚함은 依法하여 머묾을 보임이다. 이것이 그 깊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