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八 雜志 6 직세(直歲) 변복색(辨服色)

태화당 2019. 9. 8. 10:32

直歲

桉僧史 謂直一年之務 故立此職 今禪門雖不止定歲時 立名亦法於古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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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大宋僧史略卷中)를 안험하니 이르자면 一年僧務(할 직. 할 직)하므로 고로 이 을 세웠다. 지금 선문에서 비록 歲時止定하지 않지만 이름을 세움은 또한 古制에서 본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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辨服色

禪家所服黲衣 按寶林傳 達摩所傳屈眴衣 此云第一布 正靑黑色 盖祖其先制也 律本無文 或多譏譭 然梵語迦沙 此云不正色 且佛制毀形壞色 固欲異俗而有慚媿 今之黲色 俗所不用 又非正色 道人服之正得其宜 且林下禪人旣遠城市 染衣猶難 黲淡之色不繁不費 又從其簡也 如誠法師云 律有三種壞色 謂靑黑木蘭 鈔云 靑謂銅靑 黑謂雜泥 木蘭卽樹皮 注云 此說壞雜衣之色 今云染色 亦無出此三也 今詳禪僧多著黑黲衣若染色者 可是律中皂黑衣攝 緣用墨靛與雜泥不遠故 若淡而靑白者 可是律中靑衣攝 以用銅靑板緣雜墨染故 正符律意 安得謂之無文邪 西方服色 佛滅後亦隨部類不同 有部博通敏智 道利法化 應著絳色衣 經部奉持重戒 斷當法律 應著皂衣 上座部精勤奉決 承護衆生 應著木蘭色衣 彌沙塞部禪思入微 究暢玄理 可著靑色衣 摩訶僧祇部勤學衆經 敷演義理 應著黃色衣 僧史云 後梁有慧朗法師服靑衲 誌公預記云 興皇寺當有靑衣開士廣行大乘 至朗 果符其言 唐末 豫章有觀音禪師 見南方禪客多搭白納 常以瓿器盛染色 勸令染之 今天下皆謂觀音衲也 近有衣白色者 失之太甚 佛記迦沙變白不受染色 此得非是乎 或有識如法衆生奪之而壞其色 眞謂有力之勝士也 今長老披絳色大衣 世謂紅綃 及碧色衣 乃西方道人多被此服 如西域記云 商那和修九條衣 絳赤色 入滅時 以智願力 留待遺法盡方壞 奘云 今已少有損 詳此傳法大士所被絳色衣 乃紹傳授之風 所謂法衣者 如法之衣也 碧色衣者 或謂則天嘗取曹溪衣入內供養 以碧絹[-+]之 故後世當位者尙之 又法眼傳通記云 衲衣 或靑絹者 或貼相者 始於唐肅宗詔南陽國師入內 衲衣損壞 宮嬪以靑絹幫紫絹貼相 國師多著 由此相承矣 靛 音殿 以藍染也 瓿 蒲口切 小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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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家에서 입는 바 黲衣(은 검푸르죽죽할 참)寶林傳을 안험하니 달마가 전한 바의 屈眴이다. 여기에선 이르되 第一布正靑黑色이니 대개 조사가 그 先制하였다. 律本無文이라 혹은 많이 譏譭(는 나무랄 기. 는 헐뜯을 훼)한다. 그러나 범어로 迦沙는 여기에선 이르되 不正色이다. 佛制毀形(剃髮을 가리킴)壞色은 진실로 異俗(세속과 다름)하고 慚媿가 있게 하려 했음이다. 지금의 黲色은 세속에서 쓰지 않는 바이며 또 正色이 아니므로 道人이 이를 입는다면 바로 그 마땅함을 얻는다. 林下禪人은 이미 城市와 멀어 染衣하기가 오히려 어렵고 黲淡은 번거롭지도 않고 비용도 안들고 또 그 簡便을 좇음이다. 예컨대() 道誠法師(나라 때의 승인. 釋氏要覽著者)가 이르되 三種壞色이 있다. 이르자면 靑 黑 木蘭이다. 에 이르되 은 이르자면 銅靑이며 은 이르자면 雜泥木蘭은 곧 樹皮이다. 에 이르되 이것은 옷의 壞雜함이다. 지금 이른 染色은 또한 이 셋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詳察하건대 선승이 많이 黑黲衣를 입었고 염색한 것과 같음은 가히 이 律中皂黑衣(는 검을 조)攝受된다. 緣由墨靛(靑黛 전이니 쪽으로 만든 검푸른 물감)雜泥와 멀지 않는 연고이다. 만약 묽으면서 靑白인 것은 가히 이 律中靑衣攝受된다. 銅靑板以用함은 연유가 雜墨으로 물들인 연고이며 바로 律意符合하거늘 어찌 이를 일러 無文이라 함을 얻겠는가. 서방의 복색이 佛滅後에 또한 部類를 따라 같지 않나니 有部(說一切有部)博通하고 敏智이며 法化를 이롭게 하므로 응당 絳色衣(眞紅 )를 입었고 經部重戒奉持하고 法律斷當하므로 응당 皂衣(黑色 )를 입었고 上座部精勤하고 奉決하여 중생을 承護하므로 응당 木蘭色의 옷을 입었고 彌沙塞禪思入微하여 玄理究暢하므로 가히 靑色衣를 입었고 摩訶僧祇部는 뭇 경을 勤學하고 義理敷演하므로 응당 黃色衣를 입었다. 僧史(大宋僧史略卷上)에 이르되 後梁慧朗法師가 있었는데 靑衲을 입었다. 誌公預記(預言)에 이르되 興皇寺에 마땅히 靑衣開士가 있어 대승을 廣行하리라 했는데 에 이르러 과연 그 말에 부합했다. 唐末豫章觀音禪師가 있었는데 남방의 선객이 많이들 白納을 걸친 것을 보고 늘 瓿器(는 단지 부)를 써서 染色을 담아 권해 이를 물들이게 했다. 지금 천하에서 다 이르기를 觀音衲이라 한다(以上僧史). 최근에 白色을 입는 자가 있거니와 이를 잃음이 매우 하다. 불타가 預記하되 迦沙가 희게 변하여도 染色을 받지 않는다 하셨으니 이것이 이것 아님을 얻겠는가. 혹은 有識하고 如法한 중생이 있어 이를 빼앗아 그 색을 한다면 참으로 이르기를 有力勝士이다. 지금 長老들이 絳色大衣를 입으며 세상에서 이르기를 紅綃(生絲 )라 하며 및 碧色衣는 곧 서방의 道人들이 많이 이 의복을 입는다. 예컨대() 서역기(卷第一)에 이르되 商那和修(三祖)九條衣絳赤色인데 入滅할 때 智願力으로써 머물러 두어 遺法이 다함을 기다렸다가 비로소 한다. 玄奘이 이르되 여금에 이미 조금 損壞가 있다. 이를 詳察컨대 傳法大士가 입었던 바 絳色衣는 곧 傳授의 풍습을 이은 것이다. 이른 바 法衣란 것은 如法의 옷이며 碧色衣란 것은 혹은 이르기를 則天이 일찍이 曹溪를 취해 內殿에 들여와 공양했으며 碧絹(은 비단 견)으로써 그것을 놓았으므로 고로 후세에 當位者가 이를 숭상했다. 法眼傳通記에 이르되 衲衣가 혹은 靑絹의 것이며 혹은 貼相(모양을 붙임)의 것은 에서 비롯했다. 肅宗南陽國師를 불러 내전에 들게 했는데 납의가 損壞한지라 宮嬪(宮女 )靑絹으로써 紫絹助幫(은 도울 방)하여 貼相했으며 국사가 많이 입었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相承했다. 은 음이 전이며 쪽으로써 물들임임. 蒲口切이니 小甖(은 항아리 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