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八 雜志 9 행각(行脚) 괘석(挂錫) 전좌구(展坐具)

태화당 2019. 9. 8. 10:34

行脚

行脚者 謂遠離鄉曲 脚行天下 脫情捐累 尋訪師友 求法證悟也 所以學無常師 徧歷爲尙 善財南求 常啼東請 盖先聖之求法也 永嘉所謂游江海涉山川 尋師訪道爲參禪 豈不然邪 中阿含帝釋偈云 我正恭敬彼 能出非家者 目在游諸方 不計其行止 往則無所求 無爲爲樂 又高僧慧乘 事祖强爲師 年十六 啓强曰 離家千里 猶名在家沙門 請遠游都鄙 以廣見聞 强廼從之 夫是行脚之利 豈不博哉는 마땅히 로 지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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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각이란 것은 이르자면 鄉曲(彎曲的地方 偏僻的地方. 鄕村)遠離하고 다리로 천하를 遊行하면서 을 벗어나고 (얽힐 루)를 버리며 師友尋訪하여 求法하고 證悟함이다. 소이로 배움엔 常師가 없으므로 徧歷하며 崇尙해야 한다. 善財南求(남쪽으로 가서 求法)하고 常啼東請(동쪽으로 가서 請益)했으니 대개 先聖求法이다. 永嘉가 이른 바 江海游行하고 山川涉歷하며 尋師하고 訪道(問道)하여 참선했다 하니 어찌 그렇지 않은가. 中阿含(中阿含이 아님. 雜阿含經卷第四十) 帝釋에 이르되 내가 바로 그를 공경함은/ 능히 非家(出家했으므로 在家가 아님)로 벗어난 분이다/ 눈은 제방을 游行함에 두고/ 行止計較하지 않도다/ 가지만 곧 구하는 바가 없나니/ 오직 無爲로 낙을 삼는다. 또 고승 慧乘祖强을 섬기어 스승으로 삼았다. 나이 十六에게 여쭈어 가로되 집을 떠남이 千里일지라도 오히려 이름이 在家沙門이니 컨대 都鄙(都邑邊境)遠游하여 견문을 넓힐까 합니다. 이 이에 이를 좇았다(高僧慧乘 이하는 續高僧傳卷第二十四에 나옴). 무릇 이 행각의 이익이 어찌 넓지 않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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挂錫

西域比丘 行必持錫 有二十五威儀 凡至室中 不得著地 必挂於壁牙上 今僧所止住處 故云挂錫 二十五威儀 具錫杖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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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 비구는 游行함에 반드시 錫杖을 가졌으며 二十五威儀가 있다. 무릇 실중에 이르면 著地함을 얻지 못하고 반드시 壁牙(벽의 고리) 위에 걸어야 한다. 여금엔 승려가 止住하는 바의 처소이니 고로 이르되 挂錫이다. 二十五威儀는 석장경에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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展坐具

僧史云 昔梵僧到此 皆展尼師壇 就上作禮 後世避煩尊者方見開尼師壇 卽止之 便敍暄凉 又展猶再拜也 尊者還止之 由此只將展尼師壇 擬禮爲禮之數 所謂蓌拜也 如此設恭 無廼太簡乎 然隨方淸淨者 不得不行也 今叢林尊宿亦行此禮 所未便者 僧方展坐具 卽反答一拜 實爲倒置 往往輒謂一展卽當二拜 不知據何而爲此言 所謂蓌者 詐也 卑以詐拜 而尊實答之 旣重輕之不分 使後世將何以爲法邪 而今而後 愼勿言答拜之禮 以取笑於傍觀 蓌 祖臥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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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大宋僧史略卷上)에 이르되 옛적에 梵僧이 여기에 이르러 다 尼師壇(敷具. 坐具)을 펴고 위에 나아가 作禮했는데 후세에 번거로움을 피해 尊者(學德이 높은 불타의 제자의 敬稱. 이 글에선 尊宿을 가리킴)가 바야흐로 尼師壇展開함을 보면 곧 그것을 그치게 하고 곧 敍述했다(暄凉은 따뜻함과 서늘함이니 곧 日氣氣候 등을 말하며 안부를 묻는 것). 또 전개하는데 오히려 再拜였다. 尊者가 도리어 그것을 그치게 했다. 이로 말미암아 단지 니사단을 가져서 전개함이 를 흉내 냄이면서 가 되었으니 이른 바 蓌拜(는 꾸벅할 좌)이다. 이와 같이 공경을 베풂이 이에 너무 간략하지 않는가. 그러나 지방을 따라 청정한 자는 하지 않음을 얻지 못하리라. 요즈음 총림의 존숙도 또한 이 를 행하거니와 편히 여기지 않는 바의 자는 중이 바야흐로 좌구를 펴려고 하면 곧 反答으로 一拜하거니와 실로 倒置가 된다. 往往 곧 이르기를 一展에 곧 二拜가 적당하다 하거니와 무엇에 의거하여 이런 말을 짓는지 알지 못하겠다. 이른 바 란 것은 이다. 낮은() 이가 로써 절을 하는데 높은() 이가 로 이에 답한다면 이미 重輕을 나누지 못함이거늘 後世로 하여금 무엇을 가져 법을 삼게 하겠는가. 而今而後에 삼가 答拜를 말하지 말아야 하리니 傍觀者에게서 웃음을 취하리라(옆에서 보는 자가 웃으리란 뜻). 祖臥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