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책(ㄱ)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책(ㄱ) 1153쪽

태화당 2019. 5. 10. 15:17

吉州今江西省吉安府古安縣 吉州東南有行思之道場靑原山淨居寺 另外有無殷所住之禾山 行修所住之南源山 道殷所住之龍須山資國院等

길주(吉州) 지금의 강서성 길안부 고안현. 길주의 동남에 행사의 도량인 청원산 정거사가 있음. 따로 이외에 무은이 거주했던 바의 화산ㆍ행수가 거주했던 바의 남원산ㆍ도은이 거주했던 바의 용수산 자국원 등이 있음.

) --> 

吉州思唐代僧行思 吉州安城(江西安福) 詳見行思 宗鏡錄九十七 吉州思和尙云 卽今語言 卽是汝心 此心是佛 是實相法身佛

길주사(吉州思) 당대승 행사가 길주 안성(강서 안복) 사람이니 상세한 것은 행사(行思)를 보라. 종경록97. 길주사화상(吉州思和尙)이 이르되 즉금의 어언이 곧 이 너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 이 부처며 이는 실상의 법신불이다.


金喬覺百丈淸規證義記三 神僧傳云 佛滅度一千五百年 地藏降迹新羅國主家 姓金 號喬覺 永徽四年(654) 年二十四歲祝髮 擕白犬善聽 航海而來 至江南池州府東 靑陽縣九華山 端坐九子山頭 七十五載 至開元十六年(728) 七月三十夜成道 計年九十九歲 時有閣老閔公 素懷善念 每齋百僧 必虗一位 請洞僧(卽地藏也)足數 僧乃乞一袈裟地 公許 衣遍覆九峯 遂盡喜捨 其子求出家 卽道明和尙 公後亦離俗網 反禮其子爲師 故今侍像 左道明 右閔公 職此故也 菩薩入定二十年 至至德二年 七月三十日 顯聖起塔 至今成大道場

김교각(金喬覺) 백장청규증의기3. 신승전에 이르되 불타가 멸도한 지 15백 년에 지장이 신라국주의 집에 자취를 내렸다. 성은 김이며 호는 교각이다. 영휘 4(654) 나이 24에 머리를 깎았고 선청(善聽; 소리를 잘 듣다)하는 흰 개를 데리고 항해하여 왔다. 강남 지주부 동쪽 청양현 구화산에 이르러 구자산 꼭대기에서 단좌하기 75(; )였다. 개원 16(728) 730일 밤에 이르러 성도했는데 나이를 계산하매 99세였다. 때에 각로민공(閣老閔公)이 있어 본디 착한 생각을 품었으며 매번 백 명의 승려에게 재()했는데 반드시 한 자리가 비었다. 동승(洞僧; 즉 지장임)을 청해 수를 채웠다. 승인이 이에 하나의 가사지(袈裟地)를 구걸했으며 공()이 허락했는데 옷이 9봉을 두루 덮었다. 드디어 모두를 희사했고 그의 아들도 출가를 구했으니 곧 도명화상(道明和尙)이다. 공이 후에 또한 속망(俗網)을 떠났으며 그 아들에게 반례(反禮)하고 스승으로 삼았다. 고로 지금의 시상(侍像)에 좌는 도명이며 우는 민공이니 직분이 이것인 연고이다. 보살이 입정한 지 20년인 지덕 2730일에 현성(顯聖)하여 탑을 세웠다. 지금(至今) 대도량을 이루었다.




자세히 보기

http://blog.daum.net/pyungsimsa/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