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640쪽

태화당 2019. 11. 10. 10:22

先洞山指洞山良价 宗鏡錄九十二 又俗官王常侍 問先洞山和尙 五十二位菩薩中 爲甚麼不見妙覺菩薩 師云 却是常侍親見

선동산(先洞山) 동산양개를 가리킴. 종경록92. 또 속관(俗官) 왕상시(王常侍)가 선동산화상(先洞山和尙)에게 묻되 52위 보살 중 무엇 때문에 묘각보살이 보이지 않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도리어 이는 상시가 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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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頭舊說首座稱禪頭 按諸禪錄但指一般禪師 或指禪匠 祖庭事苑五 懷禪師前錄 師諱義懷 (中略)初參金鑾善 葉縣省 晩謁翠峰明覺 因營衆務 汲水擔忽墮地 師豁然知歸 由是名振叢林 皆目之爲禪頭云 從容錄第七十七則 大寧寬禪頭到法昌(傳燈錄五作大寧寬禪師) 大慧語錄十四 睦州喚僧大德 僧回首 州云 擔版漢 曾有箇禪頭 擧這話問僧 爾作麽生會 纔見僧開口便云 果然擔版 且喜沒交涉

선두(禪頭) 구설에 수좌를 선두로 호칭했음. 여러 선록을 안험컨대 다만 일반의 선사를 가리킴. 혹 선장(禪匠)을 가리킴. 조정사원5. 회선사전록(懷禪師前錄) 스님의 휘는 의회(義懷)(중략) 처음엔 금란선과 섭현성을 참()했고 늦게 취봉명각(翠峰明覺; 설두)를 예알했다. 인하여 여러 직무를 영위(營爲)했는데 물을 긷다가 멜대가 홀연히 땅에 떨어지자 스님이 활연(豁然)하여 귀취(歸趣)를 알았다. 이로 말미암아 이름이 총림에 떨쳤고 다 그를 지목해 선두(禪頭)라 하였다. 종용록 제77. 대녕관선두(大寧寬禪頭)가 법창에 이르렀다(전등록5大寧寬禪師로 지어졌음). 대혜어록14. 목주가 중을 불렀다. 대덕(大德). 중이 머리를 돌렸다. 목주가 이르되 담판한(擔版漢). 일찍이 어떤 선두(禪頭)가 이 화()를 들어 중에게 묻되 너는 어떻게 이회(理會; 이해)하느냐. 겨우 중이 입을 엶을 보면 곧 이르되 과연 담판(擔版)이로구나. 다만 교섭이 없음을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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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登宋代楊岐派僧 和州(安徽和縣)烏江閔氏 嗣法天童曇華 住衢州光孝 性絶雕飾 機語質直 故有百拙之號 有三夏賦 [枯崖漫錄 增集續傳燈錄一 續燈存稾一]

선등(善登) 송대 양기파승. 화주(안휘 화현) 오강 민씨. 천동담화(天童曇華)의 법을 이었고 구주 광효에 거주했음. 천성이 조식(雕飾)을 단절했고 기어(機語)가 질직(質直; 질박하고 정직)한지라 고로 백졸(百拙)의 호가 있음. 삼하부가 있음 [고애만록. 증집속전등록1. 속등존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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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登百拙禪苑蒙求拾遺 善登百拙 枯崖漫錄曰 報恩善登禪師 賦性絶彫飾 機語皆質直 故有百拙之號

선등백졸(善登百拙) 선원몽구습유. 선등백졸(善登百拙) 고애만록에 가로되 보은 선등선사는 부성(賦性; 天性)이 조식(彫飾)을 단절했고 기어(機語)가 모두 질직(質直; 질박하고 정직)했으므로 고로 백졸(百拙)의 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