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788쪽

태화당 2019. 11. 11. 10:20

性潡(1633-1695) 淸初僧 屬日本黃檗宗 福建福州府福淸人 俗姓林 字高泉 號雲外 又稱曇華道人 十三歲出家 登福建黃檗山 師事慧門如沛禪師 竝嗣其法 二十九歲(1661) 奉隱元隆琦之命東渡日本 入宇治萬福寺 未久 住奧州法雲寺 竝掌理攝津佛日寺 再興加賀獻珠寺 受藩主前田之歸依 其後 歸返宇治 屢入宮中說法 延寶三年(1675) 撰扶桑禪林僧寶傳十卷 翌年 又編東國高僧傳十卷 元祿五年(1692) 繼爲黃檗山第五世法席 八年示寂 壽六十三 敕諡大圓廣慧國師 佛智常照國師 後世尊爲黃檗山中興之祖 所著除前述外 尙有洗雲集十卷 佛國高泉禪師語錄八卷 山堂淸話三卷 及東渡諸祖傳 法華略集 翰墨禪 高泉禪師語錄 有馬溫泉記 釋門孝傳等各一卷 [大圓廣慧國師碑銘 黃檗東渡僧寶傳上 日本禪宗史要]

성돈(性潡) (1633-1695) 청초승. 일본 황벽종에 속함. 복건 복주부 복청 사람이며 속성은 임()이며 자는 고천(高泉)이며 호는 운외(雲外)며 또 호칭이 담화도인(曇華道人). 13세에 출가했고 복건 황벽산에 올라 혜문여패선사(慧門如沛禪師)를 사사(師事)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29(1661)에 은원융기의 명을 받들어 일본으로 동도(東渡)했고 우치 만복사에 들어갔음. 오래지 않아 오주 법운사에 거주()했고 아울러 섭진 불일사를 장리(掌理)했고 가하 헌주사를 재흥(再興)했으며 번주(藩主) 전전(前田)의 귀의를 받았음. 그 후 우치로 귀반(歸返)했고 여러 차례 궁중으로 들어가 설법했음. 연보 3(1675) 부상선림승보전 10권을 찬()했고 다음해 또 동국고승전 10권을 편()했음. 원록 5(1692) 이어서 황벽산 제5세 법석(法席)이 되었고 8년에 시적했음. 나이 63. 칙시(敕諡)가 대원광혜국사ㆍ불지상조국사. 후세에 존칭하여 황벽산 중흥지조(中興之祖)라 했음. 소저(所著)에 전술(前述)을 제한 밖에 오히려 세운집 10권ㆍ불국고천선사어록 8권ㆍ산당청화 3권 및 동도제조전ㆍ법화약집ㆍ한묵선ㆍ고천선사어록ㆍ유마온천기ㆍ석문효전 등 각 1권이 있음 [대원광혜국사비명. 황벽동도승보전상. 일본선종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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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東老母禪門拈頌集第二四則曰 城東老母 與佛同生一世而不欲見佛 每見佛來 卽便迴避 迴頭轉面 皆避不得 以手掩面 十指掌中 悉皆見佛 詳見觀佛三昧海經六 圓悟語錄十二 僧問 城東老母與佛同生 爲什麽不見佛 師云 他具大丈夫意氣

성동로모(城東老母) 선문염송집 제24칙에 가로되 성동노모(城東老母)는 부처와 1()를 동생(同生)했으나 부처를 보지 않으려 했다. 매양 부처가 오는 것을 보면 곧 바로 회피했는데 머리를 돌리고 얼굴을 돌려도 다 회피함을 얻지 못했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열 손가락 손바닥 가운데 모두 다 부처가 보였다. 상세한 것은 관불삼매해경6을 보라. 원오어록12. 중이 묻되 성동노모(城東老母)는 불타와 동생(同生)했는데 무엇 때문에 부처를 보지 않았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그는 대장부의 의기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