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전(省數錢) ☞ 생수전(省數錢).
) -->
성숙(星宿) ☞ 성수(星宿).
) -->
성숙겁(星宿劫) ☞ 성수겁(星宿劫).
) -->
【性嵩】 淸代臨濟宗僧 字石竺 莆陽(福建莆田)蔡氏 禮天馬山博山開如圓頂 參曹山朝宗 看父母未生前話 久之有省 復就金粟百癡 咨決餘疑 後回莆 住鐘山大中 東山大乘 西巖廣福 [民國福建通志四十六 五燈全書九十 民國福建高僧傳六]
성숭(性嵩) 청대 임제종승. 자는 석축이며 보양(복건 보전) 채씨. 천마산 박산개여를 예알해 원정(圓頂)했고 조산조종을 참해 부모미생전화를 간했고 오래되자 성찰이 있었음. 다시 금속백치(金粟百癡)에게 나아가 남은 의혹을 자결(咨決)했음. 후에 보(莆)로 회귀하여 종산 대중ㆍ동산 대승ㆍ서암 광복에 거주했음 [민국복건통지46. 오등전서90. 민국복건고승전6].
【聖僧】 又作上僧 原指德高望重之僧 後轉指於齋堂上座所安置之聖僧像而言 於禪宗 僧堂中央或安置文殊菩薩 或安置觀音菩薩 賓頭盧 憍陳如 空生 大迦葉 或布袋和尙之像 較普遍者 於僧堂安置僧形之文殊菩薩 稱爲聖僧文殊 又於衆寮堂安置觀音菩薩 後世之聖僧多安置於僧堂 故僧堂又稱聖僧堂 又僧堂中 安置聖僧之佛龕 稱爲聖僧龕 供養聖僧之飯 稱爲聖僧飯 服侍聖僧者 稱爲聖僧侍者(又稱聖侍 侍聖) 聖僧前方之下間 卽進入僧堂後 位於左方之板頭 爲聖僧侍者之板 稱爲聖僧板頭 又稱西堂板頭 [南海寄歸內法傳一 百丈淸規下 象器箋殿堂類靈像類] ▲傳燈錄十四丹霞天然 忽一日石頭告衆曰 來日剗佛殿前草 至來日大衆諸童行各備鍬钁剗草 獨師以盆盛水淨頭 於和尙前胡跪 石頭見而笑之 便與剃髮 又爲說戒法 師乃掩耳而出 便往江西再謁馬師 未參禮便入僧堂內 騎聖僧頸而坐 ▲五宗錄三雲門 問 聖僧爲什麽被大蟲咬 師云 與天下人作牓樣
성승(聖僧) 또 상승(上僧)으로 지음. 원래는 덕이 높고 신망이 두터운 승인을 가리킴이나 후에 전(轉)하여 재당(齋堂) 상좌(上座)에 안치한 바 성승상(聖僧像)을 가리켜 말함임. 선종에선 승당의 중앙에 혹은 문수보살을 안치하거나 혹은 관음보살ㆍ빈두로ㆍ교진여ㆍ공생(空生; 수보리)ㆍ대가섭 혹 포대화상의 상을 안치함. 조금(較) 보편적인 것은 승당에 승려 형상의 문수보살을 안치하며 일컬어 성승문수라 함. 또 중료당(衆寮堂)엔 관음보살을 안치함. 후세의 성승은 승당에 많이 안치하며 고로 승당을 또 일컬어 성승당(聖僧堂)이라 함. 또 승당 중에 성승을 안치하는 불감(佛龕)을 일컬어 성승감(聖僧龕)이라 하고 성승에게 공양하는 밥을 일컬어 성승반(聖僧飯)이라 하고 성승을 복시(服侍)하는 자를 일컬어 성승시자(또 명칭이 聖侍ㆍ侍聖)라 함. 성승 전방의 하간(下間)에서 곧 승당에 진입한 후 좌방(左方)에 위치하는 판두(板頭)는 성승시자의 판이 되며 일컬어 성승판두라 하고 또 명칭이 서당판두(西堂板頭)임 [남해기귀내법전1. 백장청규하. 상기전전당류영상류]. ▲전등록14 단하천연. 홀연히 어느 날 석두가 대중에게 고해 가로되 내일 불전 앞의 풀을 깎는다. 다음날에 이르러 대중과 모든 동행(童行; 어린 行者)이 각기 삽과 괭이를 갖추어 풀을 깎는데 오직 스님만 동이로 물을 가득 담아 머리를 씻고 화상 앞에 호궤(胡跪)했다. 석두가 이를 보고 웃었고 바로 머리를 깎아주었다. 또 계법(戒法)을 설하는데 스님이 곧 귀를 막고 나갔다. 바로 강서에 가서 마사(馬師)를 예알했는데 참례하지 아니하여서 바로 승당 안에 들어가 성승(聖僧)의 목덜미를 타고 앉았다. ▲오종록3 운문. 묻되 성승(聖僧)이 무엇 때문에 호랑이에게 물림을 입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천하의 사람들에게 방양(牓樣)을 지어 주는구나.
'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807쪽 (0) | 2019.11.12 |
|---|---|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806쪽 (0) | 2019.11.12 |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804쪽 (0) | 2019.11.11 |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803쪽 (0) | 2019.11.11 |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802쪽 (0) | 2019.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