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易】 (1596-1672) 明末黃檗宗僧 杭州仁和人 俗姓戴 字獨立 二十五歲時 因避戰亂而歷遊諸方 五十歲時明亡 乃東渡日本 永曆七年(1653) 抵達長崎 翌年 隱元隆琦至日 大振法威 師乃參而得度 時五十八歲 法名性易 道號獨立 號天下一閑人 明曆元年(1655) 隨隱元至攝津之普門寺 司掌書記之職 寬文五年(1665) 卽非如一(161 6-1671)於豐前開創福聚寺 師前往助其法化 後欲再參隱元 因途中得疾而歸返福聚寺 寬文十二年示寂 壽七十七 臘十九 師善詩文 工書法 通醫術 著有流寇編年錄 有樵別緖記 就菴獨語 東矣吟等 [黃檗東渡僧寶傳下 先哲叢談續編]
성역(性易) (1596-1672) 명말 황벽종승. 항주 인화 사람이니 속성은 대며 자는 독립. 25세 때 전란을 피함으로 인해 제방을 역유(歷遊)했음. 51세 때 명이 망하자 이에 일본으로 동도(東渡)했음. 영력 7년(1653) 장기(長崎)에 저달(抵達; 도착)했고 다음해 은원융기(隱元隆琦)가 일본에 이르러 법위(法威)를 크게 떨쳤음. 스님이 이에 참알하고 득도(得度)했는데 때에 58세였음. 법명은 성역이며 도호는 독립이며 호는 천하일한인(天下一閑人). 명력 원년(1655) 은원을 따라 섭진의 보문사에 이르러 서기의 직을 사장(司掌)했음. 관문 5년(1665) 즉비여일(卽非如一; 1616-1671)이 풍전에 복취사를 개창하자 스님이 앞으로 가서 그의 법화(法化)를 도왔음. 후에 은원을 재참하려 했는데 도중에 질병을 얻음으로 인해 복취사로 귀반(歸返)했음. 관문 12년 시적했으니 나이는 77이며 납은 19. 스님은 시문을 잘했고 서법(書法)에 공교(工巧)했고 의술을 통달했음. 저서에 유구편년록ㆍ유초별서기ㆍ취암독어ㆍ동의음 등이 있음 [황벽동도승보전하. 선철총담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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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緣】 聖道之助緣 ▲虛堂集第八十九則 七七年來感聖緣 靈山九會演眞詮
성연(聖緣) 성도의 조연. ▲허당집 제89칙. 칠칠년 래에 성연(聖緣)을 감수(感受)하고 영산에서 9회(會)에 진전(眞詮)을 연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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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聲衍恒】 淸代臨濟宗僧濟恒 字聲衍 詳見濟恒
성연항(聲衍恒) 청대 임제종승 제항의 자가 성연이니 상세한 것은 제항(濟恒)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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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悅】 宋代黃龍派僧 雲居元祐法嗣 住隆興東山景福 [續燈錄二十一 五燈會元二十八]
성열(省悅) 송대 황룡파승. 운거원우의 법사며 융흥 동산경복에 거주했음 [속등록21. 오등회원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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