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聲欲】 五欲之一 謂絲竹與環珮之聲 及男女歌詠等聲 能使衆生樂著無厭 ▲禪林疏語考證一 五欲 天台四敎儀云 一色 二聲 三香 四味 五觸欲也
성욕(聲欲) 5욕의 하나. 이르자면 사죽(絲竹; 管絃)과 환패(環珮; 고리 모양의 패옥)의 소리 및 남녀의 가영(歌詠) 등의 소리는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즐겁게 하여 싫증이 없게 함. ▲선림소어고증1. 5욕. 천태사교의에 이르되 1은 색이며 2는 성(聲)이며 3은 향이며 4는 미며 5는 촉욕(觸欲)이다.
【聖容】 天子的容姿 聖 對帝王的尊稱 ▲曹山本寂語錄 不墮諸異趣 凝情望聖容
성용(聖容) 천자의 용자(容姿). 성은 제왕에 대한 존칭. ▲조산본적어록. 모든 이취(異趣)에 떨어지지 않고 응정(凝情; 情意를 專注)하여 성용(聖容)을 바라본다.
【惺牛】 (1846-1912) 朝鮮國僧 俗姓宋氏 名惺牛 初名東旭 號鏡虛 礪山人 生于全州子東里 早喪其父 九歲 隨母上京 投廣州郡淸溪寺 依桂虛大師祝髮受戒 十四歲 適有一士人 寓寺過夏 隨暇就學 未幾桂虛師還俗 師於萬化講伯處 修了一大時敎 博涉內外 二十三歲 以衆望開講於東鶴寺 三十一歲 夏 師忽憶桂虛師前日眷愛之誼 欲往訪之 告衆發程 中路猝遇暴風急雨 遽入村家 欲避風雨 主人迫逐不許 一洞數十戶 家家如之 問其由 則對曰 方今癘疫大熾 罹病立死 何敢接客 師聞之 心神悚動 如臨生死斷崖 頓覺文字之未能免生死 還山後 遂散學人 閉門端坐 專參靈雲禪師之驢事未去馬事到來話 刺股打頭 以除睡魔 一念萬年 銀山鐵壁 如是三月 萬機已熟 一日僧問 如何是爲牛則爲無穿鼻孔處 師言下大悟 三十二歲 住洪州天藏庵 一日 對衆演法次 特明傳燈淵源 仍自嗣法于龍嚴和尙 師於淸虛爲十一世孫 而於喚惺爲七世孫也 爾來二十餘年間 往來于洪州之天藏 瑞山之開心 浮石等地 大振禪風 五十一歲 移錫于陜川海印寺 衆推師爲法主 五十六歲 歷五臺及金剛 安邊釋王寺等 其後 絶欲避世 逃名潛跡於甲山江界等地 自號蘭洲 以長髮儒冠 現婆羅門身 萬行頭陀 入泥入水 隨緣行化 六十四歲 無病而入寂于甲山熊耳坊道下洞 法臘五十六 有鏡虛集一卷 法嗣有滿空月面 慧月 水月音觀 漢巖重遠 [鏡虛集略譜]
성우(惺牛) (1846-1912) 조선국승. 속성은 송씨(宋氏)며 이름은 성우(惺牛)며 처음 이름은 동욱(東旭)이며 호는 경허(鏡虛)니 여산(礪山) 사람. 전주(全州) 자동리(子東里)에서 출생했고 일찍 그의 부친을 잃었음. 9세에 모친을 따라 상경했고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투신해 계허대사(桂虛大師)에게 의지해 머리를 깎고 수계했음. 14세에 마침 한 사인(士人)이 있어 절에 우거(寓居)하며 여름을 지내는데 여가를 따라 나아가 배웠음. 얼마 안되어 계허 스님이 환속(還俗)했음. 스님이 만화강백(萬化講伯)의 처소에서 일대시교(一大時敎)를 수료했고 내외를 박섭(博涉)했음. 23세에 중망(衆望)으로 동학사(東鶴寺)에서 개강했음. 31세 여름 스님이 홀연히 계허 스님의 전일(前日)의 권애(眷愛)의 정의(情誼)를 추억하고는 가서 방문하려고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났음(發程). 중로에 갑자기 폭풍급우(暴風急雨)를 만나 급히 촌가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박축(迫逐)하며 허락하지 않았고 한 동네 수십 호(戶)가 집집마다 그와 같았음. 그 까닭을 물었더니 곧 대답해 가로되 방금 여역(癘疫; 전염성 열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 매우 치성(熾盛)하여 병에 걸리면 바로 죽거늘 어찌 감히 접객(接客)하겠는가. 스님이 이를 듣고 심신(心神)이 송동(悚動; 震動)하면서 생사의 단애(斷崖)에 임한 것과 같았고 문자는 능히 생사를 면하지 못함을 문득 깨달았음. 산으로 돌아온 후 드디어 학인들을 해산(解散)하고 폐문하고 단좌(端坐)하며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가미거마사도래화(驢事未去馬事到來話; 나귀의 일이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도래한다는 화)를 전참(專參)했음. 넓적다리를 찌르고 머리를 때리며 수마(睡魔)를 제거했고 일념만년(一念萬年)이며 은산철벽(銀山鐵壁)이었으며 이와 같음이 석 달에 만기(萬機)가 이미 익었음. 어느 날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소가 되어도 곧 뚫을 콧구멍이 없는 곳이 됩니까. 스님이 언하에 대오했음. 32세에 홍주 천장암(天藏庵)에 거주했음. 어느 날 대중을 상대로 연법(演法)하던 차에 특별히 전등의 연원(淵源)을 밝히면서 인하여 자기가 용엄화상(龍嚴和尙)에게서 법을 이었다 했으니 스님은 청허(淸虛)의 11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됨. 이래(爾來; 가까운 요마적)의 20여년 간 홍주의 천장(天藏)ㆍ서산의 개심(開心)ㆍ부석(浮石) 등지에서 선풍을 대진(大振)했음. 51세에 합천 해인사로 이석(移錫)하자 대중이 스님을 추대(推戴)해 법주(法主)로 삼았음. 56세에 오대(五臺) 및 금강, 안변 석왕사 등을 다녔고 그 후에 욕망을 끊고 세상을 피해 갑산(甲山)ㆍ강계(江界) 등지에서 도명잠적(逃名潛跡)했으며 스스로 호하기를 난주(蘭洲)라 하고 머리카락을 기르고 유관(儒冠)이었으며 바라문신(婆羅門身)을 나타내고 두타로 만행하고 입니입수(入泥入水)하며 인연 따라 행화했음. 64세에 병 없이 갑산(甲山)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했으니 법랍은 56이며 경허집 1권이 있음. 법사에 만공월면(滿空月面)ㆍ혜월(慧月)ㆍ수월음관(水月音觀)ㆍ한암중원(漢巖重遠)이 있음 [경허집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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