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脚下泥深】 又作脚跟下泥深 脚跟 卽脚之後跟 於禪林常轉指本來自我 脚下泥深 指跌入煩惱之深淵 卽迷妄甚深 又作脚下太泥深 ▲圓悟語錄四 百草頭上則且置 脚下泥深一句作麽生道 春日晴黃鶯鳴 ▲從容錄第十則 潙山哲云 天下衲僧只知問路老婆 要且不知脚下泥深 若非趙州老人 爭顯汗馬功高
각하니심(脚下泥深) 또 각근하니심(脚跟下泥深)으로 지음. 각근은 곧 발의 뒤꿈치. 선림에선 늘 전(轉)하여 본래의 자아를 가리킴. 각하니심은 번뇌의 깊은 못에 미끌어져 들어감을 가리킴. 곧 미망이 매우 심함. 또 각하태니심(脚下太泥深)으로 지음. ▲원오어록4. 백초(百草)의 두상은 곧 그래 두거니와 각하의 진흙이 깊은(脚下泥深) 1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봄날에 개이니 누런 꾀꼬리가 우는구나. ▲종용록 제10칙/ 위산철이 이르되 천하납승이 다만 노파에게 길을 물을 줄만 알고 요차(要且; 종내. 도리어) 각하의 진흙이 깊은(脚下泥深) 줄은 알지 못한다. 만약 조주노인이 아니었다면 한마(汗馬)의 공이 높음을 어찌 나타내리오.
【脚下線】 從容錄第四十五則曰 仙傳葛由能刻木羊 騎羊上綏山 後遇浮丘公 曰 若不脚下線斷 爾也不得自由 暗合永嘉放四大莫把捉 寂滅性中隨飮啄 諸行無常一切空 卽是如來大圓覺 ▲禪門拈頌集第四七則 天童覺頌 巍巍堂堂 磊磊落落 鬧處刺頭 穩處下脚 脚下線斷我自由 鼻端泥盡君休斵 莫動著 千年古紙中合藥
각하선(脚下線) 종용록 제45칙에 가로되 선전(仙傳) 갈유(葛由)는 능히 목양(木羊)을 조각했다. 양을 타고 수산(綏山)에 올랐다. 후에 부구공(浮丘公)을 만났는데 가로되 만약 각하선(脚下線)이 끊어지지 않으면 너는 또한 자유를 얻지 못한다 했다. 가만히 영가의, 4대를 방하하여 파착(把捉)하지 말고 적멸의 자성 중에 그대로(隨) 음탁(飮啄)하라 제행이 무상하여 일체가 공이니 곧 이 여래의 대원각이다 한 것과 합치한다. ▲선문염송집 제47칙. 천동각이 송하되 외외당당하고/ 뇌뢰낙락(磊磊落落)하나니/ 시끄러운 곳에 머리를 찌르고/ 평온한 곳에 발을 내린다/ 각하선(脚下線)이 끊어져야 내가 자유며/ 코끝의 진흙이 다했으니 깎음을 쉬어라/ 움직이지 말아라/ 천 년의 고지(古紙)는 합약(合藥)에 알맞다.
【閣學】 官名別稱 北宋宣和末年 陳亨伯進官龍圖閣直學士 科稱龍學 顯謨徽猷二閣直學士欲仿效之 但難稱謨學猷學 乃以閣學泛稱諸閣學士 明沿此稱 並泛稱諸殿學士爲殿學 翰林學士爲翰學 淸惟內閣學士稱閣學 [百度百科] ▲宏智廣錄一 此一瓣香 奉爲執政大臣 兩制侍從發運閣學 知府學士通判寺丞闔府文武寀寮
각학(閣學) 관명(官名)의 별칭임. 북송 선화 말년 진형백이 용도각직학사로 진관(進官)했는데 과칭(科稱)이 용학(龍學)임. 현모와 휘유 2각(閣)의 직학사가 이를 방효(仿效; 모방)하려 했으나 다만 모학(謨學)ㆍ유학(猷學)으로 호칭하기 어려워 이에 각학(閣學)으로써 제각학사(諸閣學士)를 범칭(泛稱)했음. 명은 이 명칭을 따르면서 아울러 제전학사(諸殿學士)를 전학(殿學)으로, 한림학사를 한학(翰學)으로 범칭했음. 청은 오직 내각학사를 각학이라 호칭했음 [백도백과]. ▲굉지광록1. 이 1판향(瓣香)은 받들어 집정대신ㆍ양제시종ㆍ발운ㆍ각학(閣學)ㆍ지부학사ㆍ통판시승ㆍ합부(闔府)의 문무채료(文武寀寮)를 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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