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7책(ㅇ)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7책(ㅇ) 884쪽

태화당 2019. 12. 1. 09:36

日午點燈比喩無踪跡 從容錄第八十八則 有見有不見 日午點燈 無見無不見 夜半潑墨

일오점등(日午點燈) 종적이 없음에 비유함. 종용록 제88. ()이 있고 불견(不見)이 있음은 일오에 등을 켬이며(日午點燈) 견이 없고 불견이 없음은 야반에 먹을 뿌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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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午打三更正午時敲打午夜三更的鐘鼓 是禪家所謂之奇特句 是祛除了區別對立妄心的禪悟境界 傳燈錄十二魯祖敎 問 如何是高峰孤宿底人 師曰 半夜日頭明 日午打三更 五燈會元十九白雲守端 臨濟下 三玄三要四料揀 一喝分賓主 照用一時行 要會箇中意 日午打三更

일오타삼경(日午打三更) 정오 시 오야(午夜) 3경의 종과 북을 고타(敲打; 치다)함이니 이는 선가에서 이르는 바의 기특구(奇特句). 이는 구별과 대립의 망심(妄心)을 거제(祛除; 消除)한 선오(境界)의 경계. 전등록12 노조교. 묻되 무엇이 이 고봉에 독숙하는 사람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반야에 일두(日頭)가 밝고 일오에 3경을 친다(日午打三更). 오등회원19 백운수단. 임제하에선 33요와 4료간이며 1()에 빈주를 나누고 조용(照用)을 일시에 행한다. 개중의 뜻을 알고 싶다면 일오에 3경을 친다(日午打三更).


一玉(1562-1633) 朝鮮國隱逸僧 名一玉 號震默 萬頃佛居村人 七世剃髮于全州鳳棲寺 夙慧英達 不由師敎 生平多有異跡 與儒士鳳谷先生相交遊 師尙喜飮 然謂之穀茶則飮 謂酒則不飮 師嘗吟偈子曰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 大醉居然仍起舞 却嫌長袖掛崑崙 將終因弟子再乞宗乘嗣誰 師不得已言曰 名利僧也 且屬靜老長 遂怡然順寂 卽朝鮮仁祖十一年癸酉(1633) 十月卄八日也 壽七十二 臘五十二 後人輯錄其事蹟 稱震默祖師遺跡考 共一卷 [東師列傳二 震默祖師遺蹟考]

일옥(一玉) (1562-1633) 조선국 은일승(隱逸僧; 세상을 피하여 숨은 승인). 이름이 일옥이며 호는 진묵(震默)이니 만경(萬頃) 불거촌(佛居村) 사람. 7세에 전주 봉서사(鳳棲寺)에서 머리를 깎았음. 숙혜(夙慧)가 영달(英達; 슬기롭고 총명)했고 스승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았으며 생평에 이적(異跡)이 많이 있었음. 유사(儒士) 봉곡선생과 서로 교유했음. 스님은 오히려 마시기를 좋아했으나 그러나 곡차(穀茶)라고 이르면 곧 마셨고 술이라고 이르면 곧 마시지 않았음. 스님이 일찍이 게자(偈子)를 읊어 가로되 하늘은 이불이며 땅은 깔개()며 산은 베개가 되며/ 달은 등촉이며 구름은 병풍이며 바다는 술통이 된다/ 대취하여 거연(居然)히 그대로 기무(起舞)하니/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에 걸림을 싫어한다. 장차 마치려는데 제자가 종승(宗乘)을 누구에게 잇느냐고 재걸(再乞)함으로 인해 스님이 부득이하여 말해 가로되 명리승(名利僧)이지만 그래도 정장로(靜老長; 休靜)에게 잇는다. 드디어 이연(怡然)히 순적(順寂)했으니 곧 조선 인조 11년 계유(1633) 1028일임. 나이는 72며 납은 52. 후인이 그의 사적(事蹟)을 집록해 호칭하기를 진묵조사유적고라 했으니 공히 1권임 [동사열전2. 진묵조사유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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