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7책(ㅇ)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7책(ㅇ) 922쪽

태화당 2019. 12. 2. 09:14

一轍一軌轍也 圓悟語錄十八 擧一明三衲僧孔竅 千差一轍本分鉗鎚 禪林類聚一雪竇顯 無影樹下合同船 千聖一轍

일철(一轍) 일궤철(一軌轍). 원오어록18. 거일명삼(擧一明三)은 납승의 공규(孔竅)며 천차(千差)가 일철(一轍)이라 본분의 겸추(鉗鎚). 선림류취1 설두현. 무영수하합동선(無影樹下合同船; 무영수 아래 배를 합동하다)은 천성(千聖)이 일철(一轍)이다.


一帖藥一劑稱一帖 五燈全書六十四幻有正傳 無多方藥頭 止有一帖平胃散

일첩(一帖) 1(; 약 봉지를 세는 단위)를 일컬어 1()이라 함. 오등전서64 환유정전. 다방(多方)의 약두(藥頭)가 없고 다만 1()의 평위산(平胃散)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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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貼貼 量詞 藥一劑爲一貼 碧巖錄第十三則 隋(大隋)云 侍者將一貼茶來 與這僧去

일첩(一貼) ()은 양사니 1(; 약 봉지를 세는 단위)1()이라 함. 벽암록 제13. (대수)가 이르되 시자야 1()의 차를 가져와서 이 중에게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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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淸日本國僧 字無夢 嗣法普門玉溪椿 在南京廣聞敎乘 嘉元年間(1303-1305)入元 遊諸老之門 謁龍巖眞於廬山 樵隱於雪峰 又依東陽輝於百丈 命居後版 結制秉拂 歸國寓寶福 延文四年(1359)夏住東福 後事不傳 [扶桑五山記 延寶傳燈録]

일청(一淸) 일본국승. 자는 무몽이며 보문 옥계춘(玉溪椿)의 법을 이었음. 남경에서 교승(敎乘)을 널리 들었음. 가원년 간(1303-1305) 입원(入元)하여 여러 노숙의 문에 노닐었고 여산에서 용암진을, 설봉에서 초은을 참알했고 또 백장에서 동양휘에게 의지했는데 명해 후판(後版)에 거처하게 했고 결제에 병불(秉拂)했음. 귀국하여 보복에 우거(寓居)했고 연문 4(1359) 여름 동복에 거주했음. 후사(後事)는 전하지 않음 [부상오산기. 연보전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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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淸天明代僧 俗姓歐陽 號潔祖 廬陵(今江西吉安)人 宣德元年(1426) 從雲海法師削髮爲僧 又謁南京大天界寺普應禪師 命掌藏鑰 後充首座 出主水月寺 法至寺 正統(1436-1450)初 於北京西山之麓得古刹廢址 慨然有興復之志 廣募衆緣 雖片瓦隻椽 皆自手之 事聞于上 英宗賜額弘慶禪寺 正統十一年(1446) 住持餘杭(今屬浙江)徑山寺 [補續高僧傳五]

일청천(一淸天) 명대승. 속성은 구양이며 호는 결조니 여릉(지금의 강서 길안) 사람. 선덕 원년(1426) 운해법사를 좇아 삭발하고 승인이 되었고 또 남경 대천계사 보응선사를 참알하자 명하여 장약(藏鑰)을 관장했고 후에 수좌에 충당되었음. 출세해 수월사ㆍ법지사를 주지(主持)했고 정통(1436-1450) 초 북경 서산의 기슭에서 고찰의 폐지(廢址)를 얻었는데 개연(慨然; 감개하다)히 흥복(興復)할 의지가 있어 널리 중연(衆緣)을 모집했고 비록 편와척연(片瓦隻椽)이라도 모두 그것을 자기의 손으로 했음. 사정이 주상에게 알려졌고 영종이 사액(賜額)하여 홍경선사라 했음. 정통 11(1446) 여항(지금 절강에 속함) 경산사에 주지했음 [보속고승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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