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76쪽

태화당 2019. 12. 25. 13:28

韓昌黎韓愈(768-824) 鄧州南陽(河南南陽)人 先世居昌黎 詳見韓愈 五燈全書一百一博庵仁 韓昌黎策馬不前 孟浩然尋梅無路

한창려(韓昌黎) 한유(768-824)는 등주 남양(하남 남양) 사람이며 선세(先世; 前代. 先祖)가 창려(昌黎)에 거주했음. 상세한 것은 한유(韓愈)를 보라. 오등전서101 박암인. 한창려(韓昌黎)가 말에 채찍질해도 나아가지 않고 맹호연이 매실을 찾으려고 해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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閑處閑靜之處 謂練若也 緇門警訓一 法華經云 在於閑處修攝其心 安住不動如須彌山

한처(閑處) 한정한 곳이니 이르자면 련야(練若; 阿練若). 치문경훈1. 법화경에 이르되 한처(閑處)에 있으면서 그 마음을 수섭(修攝)하고 안주하여 부동(不動)함이 수미산과 같다.


韓退之唐代韓愈 字退之 詳見韓愈

한퇴지(韓退之) 당대 한유의 자가 퇴지니 상세한 것은 한유(韓愈)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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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彭漢名將淮陰侯韓信與建成侯彭越 韓信 見韓信 彭越(-196) 昌邑(今山東菏澤市巨野縣)人也 字仲 常漁鉅野澤中 爲羣盜 漢王二年 與魏王豹及諸侯東擊楚 彭越將其兵三萬餘人歸漢於外黃 漢五年 彭越乃悉引兵會垓下 遂破楚 項籍已死 立彭越爲梁王 都定陶 漢十年 陳豨反代地 高帝自往擊 至邯鄲 徵兵梁王 梁王稱病 捕梁王 囚之雒陽 遂夷越宗族 國除 [史記九十] 禪門拈頌集第一一六四則 白雲昺拈 搴旗斬將 蓋代功勳 偸號斫營 全機作略 縱使氣衝牛斗 威奪韓彭 平展則兩不相傷 據令則彼此俱險

한팽(韓彭) ()의 명장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과 건성후(建成侯) 팽월(彭越). 한신은 한신(韓信)을 보라. 팽월(-196)은 창읍(지금의 산동 하택시 거야현) 사람임. 자는 중()이며 늘 거야(鉅野)의 못 속에서 어렵했고 군도(羣盜)가 되었음. 한왕(漢王) 2년 위왕(魏王) () 및 제후(諸侯)와 동쪽으로 초()를 공격했음. 팽월이 그의 장병 3만여 인을 데리고 외황(外黃)에서 귀한(歸漢)했음. () 5년 팽월이 이에 장병을 모두 인솔하여 해하(垓下)에 모였고 드디어 초를 격파했음. 항적(項籍)이 이미 사망하자 팽월을 세워 양왕(梁王)으로 삼았고 정도(定陶)에 도읍했음. 10년 진희(陳豨)가 대지(代地)에서 반란하자 고제(高帝)가 스스로 가서 공격하는데 한단(邯鄲)에 이르러 양왕에게 징병(徵兵)하자 양왕이 칭병(稱病)했음. 양왕을 사로잡아 낙양에 가두었고 드디어 종족(宗族)을 이월(夷越; 멸하고 뺏다)하고 나라가 없어졌음 [사기90]. 선문염송집 제1164. 백운병이 염()하되 깃발을 빼내고 적장을 벰은 개대(蓋代)의 공훈이며 호각(號角)을 훔치고 진영(陣營)을 쪼갬은 전기(全機)의 작략이다. 종사(縱使; 가령. 설사) 기세가 우두(牛斗)에 충돌하고 위세가 한팽(韓彭)을 빼앗더라도 평전(平展)하면 곧 둘 다 서로 상하지 않고 거령(據令)하면 곧 피차 모두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