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口】 如海之大口 比喩善于言辭 又說出更多話語 ▲祖堂集九羅山 若論宗乘一路 海口難宣 何不見釋迦掩室 淨名杜口 暫息波瀾
해구(海口) 바다와 같은 큰 입이니 언사(言辭)를 잘함에 비유함. 또 갱다(更多)한 화어(話語)를 설해 냄. ▲조당집9 나산. 만약 종승(宗乘)의 일로(一路)를 논하자면 해구(海口)로도 선시(宣示)하기 어렵다. 왜 보지 못하는가, 석가는 엄실(掩室)하고 정명(淨名)은 두구(杜口)하여 잠시 만에 파란(波瀾)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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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諧宮合徵】 宮 土音 舌居中 徵 音致 火音 舌柱齒 言此彼諧和 如設聲樂 五音和合也 [緇門警訓註下] ▲緇門警訓八 一此一彼諧宮合徵
해궁합치(諧宮合徵) 궁(宮)은 토음(土音)이며 혀가 중(中)에 거처하고 치(徵)는 음이 치(致)니 화음(火音)이며 혀가 치아를 버팀. 말하자면 차피(此彼)가 해화(諧和)하여 성악(聲樂)을 시설함과 같이 5음이 화합함임 [치문경훈주하]. ▲치문경훈8. 하나는 차(此)며 하나는 피(彼)니 해궁합치(諧宮合徵)한다.
【海權】 (1651-1715) 淸代僧 初名海慧 字大衡 莆田(今屬福建)翁氏 依叔祖吼山老人剪髮 就黃檗虛白圓戒 歷訪諸刹 年四十三與師弟靈源同渡日本長崎 登崇福寺 謁本師千呆 師資契合 接住本寺 日常應機 營建殿宇 後閑居綠蘿庵 有語錄二卷 [黃檗東渡僧寶傳]
해권(海權) (1651-1715) 청대승. 처음 이름은 해혜였고 자는 대형이니 보전(지금 복건에 속함) 옹씨. 숙조(叔祖) 후산노인에게 의지해 머리를 깎았고 황벽허백에게 나아가 원계(圓戒)했음. 여러 사찰을 역방(歷訪)했고 나이 43에 사제 영원과 일본 장기(長崎)로 동도(同渡)했음. 본사(本師) 천태(千呆)를 알현하여 사자(師資)가 계합했고 본사(本寺)를 접주(接住)했으며 일상(日常)에 응기(應機)하며 전우(殿宇)를 영건(營建)했음. 후에 녹라암에서 한거(閑居)했음. 어록 2권이 있음 [황벽동도승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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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勸】 解怒勸和 ▲圜悟心要下始 寶壽作緣化於鬧市 見二人相爭 傍人解勸你得恁無面目 渠便桶底脫去
해권(解勸) 노기를 풀고 화합을 권함. ▲원오심요하시. 보수(寶壽)가 시끄러운 시장에서 연화(緣化)하다가 두 사람이 상쟁(相爭)함을 보았다. 곁의 사람이 해권(解勸)하며, 네가 이렇게 면목이 없음을 얻는가. 그(보수)가 바로 통 밑바닥이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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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納山容】 量如大海 無水不納 心似山谷 無物不容也 [禪林寶訓音義] ▲禪林寶訓三 用(德用)姪曰 在某失爲小過 在和尙尊賢待士海納山容 不問細微誠爲大德 高菴笑而已
해납산용(海納山容) 양이 대해와 같아서 수납하지 않는 물이 없고 마음이 산곡과 같아서 용납하지 않는 물건이 없음 [선림보훈음의]. ▲선림보훈3. 용(用; 德用)질(姪)이 가로되 모(某)에게 있어선 차실(差失)이 소과(小過)가 되지만 화상에게 있어선 존현대사(尊賢待士)하면서 해납산용(海納山容)해야 하므로 세미(細微)를 불문하고 참으로 대덕(大德)이 됩니다. 고암(高菴)이 웃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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