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秀】 (1166-1246) 南宋曹洞宗僧 河內(河南沁陽)人 俗姓蔡 早歲從邢州(河北邢臺)淨土寺贇允出家 受具足戒後 至慶壽寺謁勝默光有省 不久至磁州大明寺參訪雪巖滿 未逾月徹悟 遂留會下二年 悉盡其蘊底 未久還邢州 築萬松軒居之 潛志自修 世稱萬松行秀禪師 萬松老人 報恩老人 金章宗明昌四年(1193) 帝賜師錦綺大僧衣 承安二年(1197) 奉詔住西山仰山棲隱禪寺 後應諸方之請 歷住淨土寺 中都萬壽寺 燕京報恩寺等名刹 未幾 退居從容庵 應耶律楚材之請 以宏智正覺所評唱之頌古百則爲底本 著從容錄六卷 傳曹洞宗禪風 又著請益錄二卷 二錄迄今風行於禪林 爲禪宗語錄之代表作 另著有祖燈錄 釋氏新聞 鳴道集 四會語錄等 元定宗元年(一說端平三年 1236)示寂 壽八十一 [五燈嚴統十四 續燈存槀十一 五燈全書六十一]
행수(行秀) (1166-1246) 남송 조동종승. 하내(河內; 하남 심양)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채(蔡). 젊은 나이에 형주(邢州; 하북 邢臺) 정토사의 빈윤(贇允)을 좇아 출가하였음.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경수사(慶壽寺)에 이르러 승묵광(勝默光)을 참알(參謁)해 깨침이 있었으며 오래지 않아 자주(磁州) 대명사(大明寺)에 이르러 설암만(雪巖滿; 양개하 17세. 王山體의 法嗣)을 참방(參訪)해 달을 넘기지 않아서 철오(徹悟)했음. 드디어 회하(會下)에 머물기 2년이었으며 그 온저(蘊底; 쌓아 둔 밑바닥)를 모두 다했음. 오래지 않아 형주(邢州)로 돌아가 만송헌(萬松軒)을 축조해 거주하면서 뜻을 가라앉히고 스스로 수행했음. 세칭(世稱)이 만송행수선사(萬松行秀禪師)ㆍ만송노인(萬松老人)ㆍ보은노인(報恩老人). 금(金) 장종(章宗) 명창(明昌) 4년(1193) 황제가 스님에게 금기대승의(錦綺大僧衣; 錦은 비단 금. 綺는 비단 기)를 주었고 승안(承安) 2년(1197) 조칙(詔勅)을 받들어 서산(西山)의 앙산(仰山) 서은선사(棲隱禪寺)에 주(住)했으며 후에 제방의 청에 응해 정토사(淨土寺)ㆍ중도(中都) 만수사(萬壽寺)ㆍ연경(燕京) 보은사(報恩寺)등의 명찰(名刹)을 역주(歷住)했음. 얼마 되지 않아 종용암(從容庵)으로 퇴거(退居)했는데 야율초재(耶律楚材; 萬松行秀의 法嗣)의 청에 응해 굉지정각(宏智正覺; 양개하 9세)이 평창(評唱)한 바의 송고백칙(頌古百則)을 저본(底本)으로 삼아 종용록(從容錄) 6권을 지었는데 조동종의 선풍(禪風)을 전함. 또 청익록(請益錄) 2권을 지었는데 2록(二錄; 종용록과 청익록)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선림에 풍행(風行)하며 선종어록(禪宗語錄)의 대표작이 됨. 다른 저작에 조등록(祖燈錄)ㆍ석씨신문(釋氏新聞)ㆍ명도집(鳴道集)ㆍ4회어록(四會語錄) 등이 있음. 원(元) 정종(定宗) 원년(일설엔 端平三年 1236)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1 [오등엄통14. 속등존고11. 오등전서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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