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香處】 十二處之一 詳見十二處 ▲宗鏡錄五十四 又推香處文云 阿難 汝又嗅此鑪中栴檀 此香若復燃於一銖 室羅筏城四十里內 同時聞氣 於意云何 此香爲復生栴檀木 生於汝鼻 爲生於空
향처(香處) 12처의 하나. 상세한 것은 십이처(十二處)를 보라. ▲종경록54. 또 향처(香處)를 추리하는 글에 이르되 아난아, 네가 또 이 향로 중의 전단(栴檀)을 냄새 맡거니와 이 향을 만약 다시 1수(銖)를 태우면 실라벌성(室羅筏城) 40리 안에 동시에 향기를 맡는다. 뜻에 어떠한가, 이 향이 다시 전단목(栴檀木)에서 생기(生起)함이 되느냐, 너의 코에서 생기하느냐, 허공에서 생기함이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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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薦】 唐宋應試進士 由州縣薦擧 稱鄕薦 ▲宗門武庫 許知可 毘陵人 嘗獲鄕薦
향천(鄕薦) 당ㆍ송에서 진사(進士)에 응시하려면 주현(州縣)의 천거(薦擧)를 경유했는데 일컬어 향천이라 했음. ▲종문무고. 허지가는 비릉 사람이다. 일찍이 향천(鄕薦)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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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泉寺】 位於河南汲縣霖落山中 於元魏時稱霖落泉寺 其後北周武帝滅法 改之爲遊苑 至隋朝末年始復其寺觀 唐又重建之 乃易今名 金元以降 爲曹洞宗道場 盛時禪侶多達萬人 共住梵修 嚴整聞於四方 民國十八年(1929) 馮玉祥毁佛驅僧 改爲學校
향천사(香泉寺) 하남 급현 임락산 가운데 위치함. 원위(元魏) 시 호칭이 임락천사였음. 그 후 북주(北周) 무제가 멸법(滅法)하자 고쳐 유원(遊苑)으로 삼았음. 수조(隋朝) 말년에 이르러 비로소 그 사관(寺觀)을 복구했음. 당에서 또 그것을 중건하고 이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음. 금ㆍ원 이강(以降; 이후) 조동종 도량이 되었고 성할 때는 선려(禪侶)가 많기로는 만 인에 도달하였고 함께 거주하며 범수(梵修)했고 엄정(嚴整)함이 사방에 알려졌음. 민국 18년(1929) 풍옥상이 훼불(毁佛)하고 승려를 쫓아내고 고쳐 학교로 만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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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芻】 祖庭事苑六 香芻 根本百一羯磨(根本說一切有部百一羯磨四)云 受隨意比丘 應行生茅與僧伽爲座 諸比丘竝於草上坐 又因果經(過去現在因果經三)云 一切如來成無上道 以草爲座 故吉祥童子 施軟草於世尊 隨意卽自恣也 ▲廣燈錄十五風穴延昭 問 最初自恣 合對何事 師云 一把香芻拈未下 六鐶金錫響搖空
향추(香芻) 조정사원6. 향추(香芻) 근본백일갈마(根本說一切有部百一羯四)에 이르되 수의(隨意; 安居가 끝나는 날에 행하는 作法의 이름이니 곧 自恣)를 받은 비구는 마땅히 생모(生茅)를 승가(僧伽; 衆 혹은 和合衆으로 번역)에게 주어 자리(座)를 삼게 함을 행해야 하나니 제비구(諸比丘)가 아울러 초상(草上)에 앉는다. 또 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三)에 이르되 일체 여래가 무상도(無上道)를 이루시매 초(草)를 자리로 삼는다. 고로 길상동자(吉祥童子)가 세존에게 연초(軟草)를 보시했다. 수의(隨意)는 곧 자자(自恣)임. ▲광등록15 풍혈연소. 묻되 최초의 자자(自恣)에 합당히 무슨 일을 대했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한 웅큼의 향추(香芻)는 들었다가 내려놓지 않았는데 6환(六鐶)의 금석(金錫)의 음향이 허공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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