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376쪽

태화당 2019. 12. 28. 09:44

慧可斷臂見立雪斷臂

혜가단비(慧可斷臂) 립설단비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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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可出拜見少林髓 禪林疏語考證一 廓徹眞如 同慧可之出拜

혜가출배(慧可出拜) 소림수(少林髓)를 보라. 선림소어고증1. 진여를 확철(廓徹)함이 혜가의 출배(慧可之出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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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覺】 ①唐代僧 嗣趙州從諗 住楊州城東光孝院 叢林號爲覺鐵觜 [傳燈錄十一] 五家正宗贊一趙州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庭前栢樹子 後法眼問覺鐵觜 聞趙州有栢樹子話 是否 覺曰 先師無此語 莫謗先師好 五代閩僧 長慶慧稜法嗣 開法福州報慈院 [五燈會元八 五燈全書十五] 北宋臨濟宗僧 西洛人 弱冠時 父爲衡陽太守 因疾而歿於任地 師扶靈柩自衡陽歸洛 過澧州藥山古寺 宛若宿居於此 遂緣此出家 復遊方參學 得法於汾陽善昭 後住滁州瑯琊山 大振臨濟宗風 世稱瑯琊慧覺 同時 明州雪竇重顯 唱雲門之法道 時人稱二甘露門 及今淮南地區猶蒙其遺化 其餘事蹟與生卒年皆未詳 [釋氏稽古略四 聯燈會要十二 續傳燈錄三 禪宗正脈十二] 宋代僧 黃龍慧南法嗣 住信州靈鷲山 [五燈會元十七] 宋代雲門宗僧 住岳州乾明院 得法於慧林宗本 [續燈錄十六]

혜각(慧覺) 당대승. 조주종심을 이었고 양주성 동쪽 광효원에 주()했고 총림에서 호하여 각철취(覺鐵觜)라 했음 [전등록11]. 오가정종찬1 조주.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뜰 앞의 백수자(栢樹子). 후에 법안이 각철취(覺鐵觜)에게 묻되 듣건대 조조가 백수자화가 있다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이 가로되 선사(先師)는 이런 말씀이 없었으니 선사를 비방하지 말아야 좋으리라. 오대 민승. 장경혜릉의 법사며 복주 보자원에서 개법했음 [오등회원8. 오등전서15]. 북송(北宋)의 임제종승. 서락(西洛) 사람. 약관(弱冠; 20세 안팎의 남자 나이) 때 아버지가 형양태수(衡陽太守)가 되었는데 질병으로 인해 임지(任地)에서 죽었음. 스님이 영구(靈柩)를 떠받치고 형양으로부터 서락(西洛)으로 돌아오다가 예주(澧州) 약산고사(藥山古寺)를 지나는데 완연(宛然)히 전부터 여기에 거주한 것 같았음. 드디어 이 때문에 출가하였고 다시 유방(遊方)하며 참학(參學)했으며 분양선소(汾陽善昭; 首山省念을 이었으니 임제하 5)에게서 법을 얻었음. 후에 저주() 낭야산()에 머물며 임제의 종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으니 세칭(世稱)이 낭야혜각(慧覺). 동시대(同時代)에 명주(明州)의 설두중현(雪竇重顯; 운문하 3)이 운문의 법도(法道)를 제창(提唱)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2감로문(甘露門)이라 일컬었음. 지금에 이르도록 회남지구(淮南地區)에선 아직도 그 유화(遺化)를 입었음. 그 나머지 사적(事蹟)과 생졸(生卒)한 해는 다 미상(未詳)[석씨계고략4. 연등회요12. 속전등록3. 선종정맥12]. 송대승. 황룡혜남의 법사며 신주 영취산에 거주했음 [오등회원17]. 송대 운문종승. 악주 건명원에 주()했고 혜림종본에게서 득법했음 [속등록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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