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弘光】 南明 褔王朱由崧年號(1644- 1645) 亦借指朱由崧 ▲五燈全書七十五法幢幟 遘變南回 弘光隆武 俱以閣部大拜推擢
홍광(弘光) 남명(南明) 부왕(褔王) 주유숭(朱由崧)의 연호(1644-1645). 또한 주유숭을 차지(借指)함. ▲오등전서75 법당치. 재난을 만나 남쪽으로 회귀했다. 홍광(弘光; 南明의 首位 황제)과 융무(隆武; 南明의 제2任 황제)가 모두 각부(閣部)의 대배(大拜)로 추탁(推擢)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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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光】 淸代臨濟宗僧 字慧林 吳縣(今屬江蘇)張氏 投安化世高則披薙 參本來面目有省 住天津大悲院 [五燈全書一〇二補遺]
홍광(洪光) 청대 임제종승. 자는 혜림이며 오현(지금 강소에 속함) 장씨. 안화 세고칙(世高則)에게 투신하여 피치(披薙)했고 본래면목을 참하여 성찰이 있었음. 천진 대비원에 주(住)했음 [오등전서102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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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敎】 宋代雲門宗僧 依洞山守初得法 住韶州東平山 [廣燈錄二十二 五燈會元十五]
홍교(洪敎) 송대 운문종승. 동산수초에게 의지해 득법했고 소주 동평산에 거주했음 [광등록22. 오등회원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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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敎】 弘通佛之敎法 ▲宗鏡錄二 故知弘敎一念之善 能報十方諸佛之恩
홍교(弘敎) 불타의 교법을 홍통(弘通)함. ▲종경록2. 고로 알지니 홍교(弘敎)하는 일념의 선(善)으로 능히 시방제불의 은혜에 보답한다.
【弘敎禪師】 五代僧道溥 署號弘敎禪師 詳見道溥
홍교선사(弘敎禪師) 오대승 도부의 서호(署號)가 홍교선사니 상세한 것은 도부(道溥)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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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究】 五代潙仰宗僧 至袁州(今江西宜春)仰山南塔 師事光涌得法 居韶州(今廣東韶關)慧林寺 卒諡妙濟大師 [傳燈錄十二]
홍구(鴻究) 오대 위앙종승. 원주(지금의 강서 의춘) 앙산 남탑에 이르러 광용(光涌)을 사사(師事)하여 득법했고 소주(지금 광동 소관) 혜림사에 거주했음. 졸시(卒諡)는 묘제대사 [전등록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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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溝】 河南鴻溝 汴水的古名 在今河南省滎陽市 史記七 是時 漢兵盛食多 項王兵罷食絶 漢遣陸賈說項王 請太公(劉邦父) 項王弗聽 漢王復使侯公往說項王 項王乃與漢約 中分天下 割鴻溝以西者爲漢 鴻溝而東者爲楚 項王許之 卽歸漢王父母妻子 軍皆呼萬歲 ▲禪門拈頌集第七六八則 大覺璉頌 倚天長劒淬剛頭 再犯翻成遶指柔 深羨高皇能御楚 不將天下裂鴻溝
홍구(鴻溝) 하남 홍구니 변수(汴水)의 옛 이름.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에 있음. 사기7. 이때 한병(漢兵)은 성식(盛食)이 많았고 항왕(項王)은 병파(兵罷; 군병이 고달픔)하고 식량이 끊겼다. 한(漢)이 육가(陸賈)를 보내 항왕에게 설하되 태공(太公; 劉邦의 父)을 요청합니다. 항왕이 청허(聽許)하지 않았다. 한왕이 다시 후공(侯公)을 시켜 항왕에게 가서 설하자 항왕이 이에 한(漢)과 맹약했다. 천하를 중분(中分; 가운데를 나누다. 반으로 나누다)하여 홍구(鴻溝) 이서(以西)의 것은 베어 한(漢)으로 삼고 홍구 이동의 것은 초(楚)로 삼는다. 항왕이 이를 허락하고는 곧 한왕의 부모처자를 돌려보냈다. 군사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선문염송집 제768칙. 대각련이 송하되 의천장검(倚天長劒)은 강두(剛頭; 堅剛)를 담금질하나니/ 재범(再犯)하면 도리어 요지유(遶指柔)를 이룬다/ 고황(高皇)이 능히 초(楚)를 제어함을 깊이 부러워하나니/ 천하를 가지고 홍구(鴻溝)에서 분할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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