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529쪽

태화당 2019. 12. 30. 08:15

洪衍灝淸代臨濟宗僧行灝字洪衍 詳見行灝

홍연호(洪衍灝) 청대 임제종승 행호의 자가 홍연이니 상세한 것은 행호(行灝)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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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英(1012-1070) 宋代黃龍派僧 福建邵武人 俗姓陳 世稱英邵武 閱華嚴十明論 悟入宗要 聞黃龍慧南於黃檗山積翠寺宣說法要 遂前往依止 其後竝入室嗣法 後遊西山 住於雙嶺 已而開法石門 移江西泐潭寶峰 熙寧三年六月入寂 壽五十九 臘四十三 有語要 [續傳燈錄十二 聯燈會要十四]

홍영(洪英) (1012-1070) 송대 황룡파승. 복건 소무(邵武) 사람이며 속성은 진()이며 세칭이 영소무(英邵武). 화엄(華嚴)과 십명론(十明論)을 열람하고 종요(宗要)에 오입(悟入)했음. 황룡혜남(黃龍慧南)이 황벽산 적취사(積翠寺)에서 법요를 선설(宣說)한다 함을 듣고 드디어 앞으로 가서 의지(依止)했으며 그 후에 아울러 입실(入室)하여 법을 이었음. 후에 서산(西山)을 유람(遊覽)하다가 쌍령(雙嶺)에 거주했으며 그러고선 석문(石門)에서 개법하고 강서 늑담(泐潭)의 보봉(寶峰)으로 이주했음. 희녕 36월에 입적했으니 나이는 59이며 승랍은 43. 어요(語要)가 있음. [속전등록12. 연등회요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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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英淸代僧 字語賢 酆都(今屬重慶)隆氏 禮安平天台山恒修薙染 隨修創闢習安獅山 矢志行脚 參敏樹圓具 依天吼廓參悟印可 後歸獅山開法 [黔南會燈錄五]

홍영(弘英) 청대승. 자는 어현(語賢)이며 풍도(지금 중경에 속함) 융씨(隆氏). 안평 천태산 항수를 예알하여 치염(薙染)했고 수수(隨修)하며 습안(習安) 사산(獅山)을 창벽(創闢)했음. 시지(矢志; 맹세하고 뜻을 세우다)하여 행각했고 민수(敏樹)를 참례하여 원구(圓具)했고 천후곽(天吼廓)에게 의지하며 참오(參悟)하고 인가(印可)를 받았음. 후에 사산(獅山)으로 회귀하여 개법했음 [검남회등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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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英搯膝禪苑蒙求一 洪英搯膝 (黃龍南法嗣 林間錄上)翠巖眞點胸好問僧 文殊是七佛之師 因甚麽出女子定不得 罔明從下方來 因甚出得女子定 莫有對者 獨英邵武(洪英)方其問時 以手搯其膝而去 眞笑曰 賣匙箸客 未在

홍영도슬(洪英搯膝) 선원몽구1. 홍영도슬(洪英搯膝) (황룡남의 법사. 임간록상) 취암 진점흉(眞點胸)이 중에게 묻기를 좋아했다. 문수는 이 칠불지사(七佛之師)이거늘 무엇 때문에 여자를 정()에서 나오게 함을 얻지 못했으며 망명(罔明)은 하방으로부터 왔거늘 무엇 때문에 여자를 정에서 나오게 함을 얻었는가. 대답하는 자가 있지 않았다. 오직() 영소무(英邵武; 洪英)가 방금 그것을 물을 때 손으로 무릎을 치고() 갔다. ()이 웃으며 가로되 시저(匙箸; 숟가락과 젓가락)를 파는 객이다. 미재(未在; 그렇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