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532쪽

태화당 2019. 12. 30. 08:17

洪源淸代臨濟宗僧 字澹淵 濟寧(今屬山東)張氏 齠年從天寧弘禮乞戒 命看一歸何處話 晝夜提撕 後入世高則之室 回住邑之十方 遷天津大悲 [五燈全書一二補遺]

홍원(洪源) 청대 임제종승. 자는 담연(澹淵)이며 제녕(지금 산동에 속함) 장씨. 초년(齠年; 이를 갈 어린 나이)에 천녕홍례(天寧弘禮)를 좇아 걸계(乞戒)했고 명하여 일귀하처화(一歸何處話)를 참하게 하자 주야로 제시(提撕)했음. 후에 세고칙(世高則)의 실()에 들었음. 읍의 십방(十方)에 거주하다가 천진 대비로 옮겼음 [오등전서102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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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越淸代臨濟宗僧 字雨山 撫州(江西臨川)夏氏 投廬山金竹坪出家 與以山等輝 遍參知識 及諸講肆 晩過華桂 叩山鐸眞在悟旨 承記莂 住郡之荊溪 [五燈全書一二補遺]

홍월(洪越) 청대 임제종승. 자는 우산(雨山)이며 무주(강서 임천) 하씨. 여산 금죽평에 투신하여 출가했고 이산등휘와 더불어 지식 및 여러 강사(講肆)를 편참(遍參)했음. 만년에 화계에 이르러() 산탁진재(山鐸眞在)에게 물어() 지취를 깨쳤고 기별(記莂)을 승수(承受)했으며 군의 형계에 거주했음 [오등전서102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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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月淸代曹洞宗僧 一名大月 字南洲 六安(今屬安徽)李氏 順治(1644-1661)間 禮廬江冶父星朗雄薙染 參藏身處沒蹤跡話 偶睹佛像得省 順治末 隱英廖大望山 閱殃崛救産難因緣 得悟 雄付以衣拂 康熙(1644-1722)初 繼席冶父 [五燈全書一一八]

홍월(弘月) 청대 조동종승. 일명이 대월(大月)이며 자는 남주(南洲)며 육안(지금 안휘에 속함) 이씨(李氏). 순치(1644-1661) 간 여강 야보 성랑웅(星朗雄)을 예알하여 치염(薙染)했음. 장신처몰종적화(藏身處沒蹤跡話)를 참했는데 우연히 불상을 보다가 성찰을 얻었음. 순치 말 영료 대망산에 은거하면서 앙굴구산난인연(殃崛救産難因緣)을 열람하고 깨침을 얻었으며 웅()이 의불(衣拂)을 부촉했음. 강희(1644-1722) 초 야보를 계석(繼席)했음 [오등전서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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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裕(1633-1686) 淸代曹洞宗僧 字玄祚 一作元祚 號約庵 德興(今屬江西)傅氏 幼依宿雲旻爲童行 年二十禮博山雪磵道奉薙染 圓具 依止參究 順治(1644-1661)間住宿雲 越三載 奉召歸 始承囑纍 康熙十六年(1677) 繼席博山 [五燈全書一一七]

홍유(弘裕) (1633-1686) 청대 조동종승. 자는 현조(玄祚)며 한편으론 원조(元祚)로 지으며 호는 약암(約庵)이니 덕흥(지금 강서에 속함) 부씨. 어릴 적에 숙운민에게 의지해 동행(童行)이 되었고 나이 20에 박산 설간도봉(雪磵道奉)을 예알하여 치염(薙染)하고 원구(圓具)했으며 의지하며 참구했음. 순치(1644-1661) 간 숙운에 거주했고 3()를 넘기자 부름을 받들어 회귀하여 비로소 촉류(囑纍; 囑累)를 받들었음. 강희 16(1677) 박산을 계석(繼席)했음 [오등전서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