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弘忍】 ①(602-675) 唐代僧 東土禪宗第五祖 潯陽(江西九江)人 或謂蘄州(湖北蘄春)黃梅人 俗姓周 七歲 從四祖道信出家於蘄州黃梅雙峰山東山寺 唐永徽二年(651)五十一歲 道信入寂 乃繼承師席 世稱五祖黃梅 或僅稱黃梅 咸亨二年(671) 傳法於六祖慧能 師於高宗上元二年示寂 壽七十四 代宗敕諡大滿禪師 相傳著有五祖弘忍大師最上乘論一卷 或以爲僞作 [宋高僧傳八 傳燈錄三] ②(1599-1638) 明代臨濟宗僧 蜀中資川人 俗姓鄭 字潭吉 二十歲出家 崇禎四年(1631)遊於吳中 見漢月法藏(1573-1635)之語錄 不覺毛豎汗下 遂入山請益於法藏 苦參得悟 法藏示寂後 師出主安隱寺 以躬履篤行敎化學人 常厲斥禪林頹敗之風 竝致力於改革時弊 崇禎十一年示寂 壽四十 著有安隱錄 燼餘外集等傳世 法藏曾撰五宗源 反對曹洞宗僅單傳釋迦拈華一事 而抹殺五家宗旨 遂引起禪門之論諍 弘忍作五宗救 爲其師辯護 淸代雍正帝作揀魔辨異錄 指法藏弘忍一派爲邪魔異說 而毁其書 驅其徒 [五燈全書六十九]
홍인(弘忍) ①(602-675) 당대승. 동토 선종 제5조. 심양(潯陽; 강서 九江) 사람이니 혹은 이르기를 기주(蘄州; 호북 蘄春) 황매(黃梅) 사람이라 함. 속성(俗姓)은 주(周). 7세에 4조 도신(道信)을 좇아 기주(蘄州) 황매(黃梅) 쌍봉산(雙峰山)의 동산사(東山寺)에서 출가했음. 당(唐) 영휘(永徽) 2년(651) 51세에 도신이 입적(入寂)하자 이에 사석(師席)을 계승(繼承)했음. 세칭이 오조황매(五祖黃梅)며 혹은 다만 명칭이 황매(黃梅)임. 함형(咸亨) 2년(671) 6조 혜능(慧能)에게 전법(傳法)했으며 스님은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4. 대종(代宗)이 칙시(敕諡)하여 대만선사(大滿禪師)라 했음. 서로 전(傳)하기를 저서(著書)에 오조홍인대사최상승론(五祖弘忍大師最上乘論) 1권이 있다 하지만 혹은 위작(僞作)이라 하기도 함 [송고승전8. 전등록3]. ②(1599-1638) 명대 임제종승. 촉중(蜀中)의 자천 사람이며 속성은 정이며 자는 담길(潭吉). 20세에 출가했고 숭정 4년(1631) 오중(吳中)에 유행하다가 한월법장(漢月法藏; 1573-1635)의 어록을 보았고 불각에 터럭이 서며 땀을 흘렸음. 드디어 입산하여 법장에게 청익했고 고참(苦參)하여 깨침을 얻었음. 법장이 시적한 후 스님이 출세해 안은사를 주지(主持)했음. 몸소 이행하고 돈독히 행하면서 학인을 교화했음. 늘 선림의 퇴패(頹敗)한 풍조를 여척(厲斥; 몹시 배척)했고 아울러 시폐(時弊)의 개혁에 치력(致力)했음. 숭정 11년 시적했고 나이는 40. 저서에 안은록과 신여외집 등이 있어 전세(傳世)함. 법장이 일찍이 오종원(五宗源)을 찬(撰)해 조동종이 다만 석가염화(釋迦拈華) 1사(事)를 단전(單傳)하여 오가종지(五家宗旨)를 말살함에 반대한다고 하자 드디어 선문의 논쟁을 인기(引起)했음. 홍인이 오종구(五宗救)를 지어 그의 스승을 위해 변호했음. 청대 옹정제(雍正帝)가 간마변이록(揀魔辨異錄)을 지어 법장과 홍인 일파를 가리켜 사마이설(邪魔異說)이라 하고는 그 서적들은 훼멸하고 그의 문도들을 쫓아내었음 [오등전서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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