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諲】 ①(?-901) 五代潙仰宗僧 浙江吳興人 俗姓吳 十九歲 禮杭州徑山開元寺無上大師落髮 二十二歲 入嵩山 受具足戒 謁雲巖曇晟 機緣不契 再參潙山靈祐 始悟 咸通七年(866) 無上大師示寂 以衆請 繼師席 受吳越武肅王外護 賜號法濟大師 光化四年示寂 [祖堂集十九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一] ②宋代臨濟宗僧 襄水(湖北)人 俗姓扈 嗣首山省念 初隱南嶽 一鉢自足 後遇湘陰豪右來遊 請主其邑之神鼎寺 師允諾之 然至寺則已敗毁 唯餘殘蹟 師遂淸苦自持 居之十載 道侶漸聚 猶以破朽木床爲獅子座 踞以說法 其淡泊如此 而以年臘俱高 諸方尊之如古趙州 寂年八十餘 [神鼎山第一代諲禪師語錄 續傳燈一 禪林僧寶傳十四]
홍인(洪諲) ①(?-901) 오대 위앙종승. 절강 오흥 사람이며 속성은 오. 19세에 항주 경산 개원사 무상대사(無上大師)를 참례하고 낙발(落髮)했고 22세에 숭산에 들어가 구족계를 받았음. 운암담성을 참알하여 기연이 계합하지 않았고 다시 위산영우(潙山靈祐)을 참해 비로소 깨쳤음. 함통 7년(866) 무상대사가 시적하자 대중의 요청으로 스승의 법석을 이었음. 오월(吳越) 무숙왕의 외호를 받았고 사호(賜號)하여 법제대사라 했음. 광화 4년 시적했음 [조당집19. 송고승전12. 전등록11]. ②송대 임제종승. 양수(襄水; 호북) 사람이며 속성은 호. 수산성념(首山省念)을 이었고 처음 남악에 은거하며 1발(鉢)로 자족했음. 후에 상음(湘陰)의 호우(豪右)의 내유(來遊)를 만났는데 그 읍(邑)의 신정사(神鼎寺)에 주지(主持)하기를 요청하는지라 스님이 윤낙(允諾)했음. 그러나 사원에 이르니 곧 이미 패훼(敗毁)하여 오직 잔적(殘蹟)만 남은지라 스님이 드디어 청고(淸苦)하며 자지(自持)했고 거주한 지 10재(載) 만에 도려(道侶)가 점차 모였지만 오히려 파후(破朽)한 목상(木床)으로 사자좌로 삼아 걸터앉아 설법했으니 그 담박(淡泊)함이 이와 같았음. 연랍(年臘; 나이와 하랍)이 모두 높았으므로 제방에서 옛 조주와 같이 존경했음. 적년(寂年)은 80 가량 [신정산제일대인선사어록. 속전등1. 선림승보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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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印】 明代臨濟宗僧 字寶文 古渝棠城張氏 禮西禪瑞有年 瑞遷化 遠叩楚山紹琦 得受印契 [五燈全書五十九 五燈嚴統二十三]
홍인(洪印) 명대 임제종승. 자는 보문이며 고투 당성 장씨. 서선서를 참례한 지 여러 해였는데 서가 천화하자 초산소기(楚山紹琦)에게 원고(遠叩)하여 인계(印契)를 득수(得受)했음 [오등전서59. 오등엄통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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