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598쪽

태화당 2019. 12. 31. 09:54

華嚴論新華嚴經論 釋氏稽古略三云 開元二十二年(734) 太原李長者 名通玄 日食一柏葉棗小餠 因呼棗柏大士 初開元七年(719) 太原孟縣高仙奴舘之齋中造論 逾三年遷馬氏古佛堂側 閱十年負經書而去之 山行二十里偶一虎 長者撫之曰 吾著華嚴論 能爲擇棲止處否 卽以經囊負其背 行至神福山原下土龕前駐止 長者乃於龕著論 每夕口出白光以代燈燭 日有二女子汲水炷香 每食時具饌 齋畢撤而去 如是五載 長者著論畢 遂滅跡不見也 論成四十卷 開元二十八年(740)三月長者卒 壽九十五歲 又著決疑論 會釋 十門玄義 緣生解 迷十明等論 十玄六相 百門義海 偈讚語等 竝傳於世 五宗錄五法眼 諸人各曾看還源觀 百門義海 華嚴論 涅槃經 諸多策子 阿那箇敎中有這箇時節

화엄론(華嚴論) 신화엄경론이니 석씨계고략3에 이르되 개원(開元) 22(734) 태원(太原)의 이장자(李長者)는 이름이 통현(通玄)이다. 하루에 하나의, 잣잎과 대추의 작은 떡을 먹었으므로 인하여 조백대사(棗柏大士)라 부른다. 처음에 개원 7(719) 태원 맹현(孟縣) 고선노(高仙奴)의 별관(別舘)의 집 속에서 논을 지었다. 3년을 넘기자 마씨(馬氏)의 고불당 곁으로 옮겼는데 10년을 지내고는 경서를 지고 떠났다. 20리를 산행하다가 한 호랑이를 만났다(). 장자가 어루만지며 가로되 내가 화엄론을 지으려 하는데 능히 살며 머물 곳을 간택하겠는가. 곧 경낭을 그 등에 실었다. 가다가 신복산(神福山) 언덕 아래의 토감(土龕) 앞에 이르자 멈추었다. 장자가 이에 토감에서 논을 짓는데 매일 밤마다 입에서 백광을 내어 등촉에 대체했다. 날마다 두 여자가 있어 물을 긷고 향을 사루었으며 매번 식사 때는 음식을 갖추었고 재식을 마치면 거두어 갔다. 이와 같이 하기를 다섯 해에 장자가 저론(著論)을 마쳤고 드디어 종적을 없애고 보이지 않았다. 논은 40권을 이루었다. 개원 28(740) 3월에 장자가 죽었는데 나이는 95세다. 또 결의론(決疑論)ㆍ회석(會釋)ㆍ십문현의(十門玄義)연생해(緣生解)ㆍ미십명(迷十明) 등의 논을 지었다. 십현육상(十玄六相)ㆍ백문의해(百門義海)ㆍ게찬어(偈讚語) 등이 모두 세상에 전해졌다. 오종록5 법안. 제인이 각자 일찍이 환원관(還源觀)ㆍ백문의해(百門義海)ㆍ화엄론(華嚴論)ㆍ열반경 여러 많은 책자(策子)를 보았으리니 어느 경교 중에 이런 시절이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