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茂林】 (?-1933) 廣東人 精通英文 初於香港與英人硏究小乘佛學 後至上海從事譯經 向海外宣傳佛法 將六祖壇經 彌陀經 十善業道經等英譯刊行 又創刊英文中國佛敎雜誌 竝於暇時譯述外國佛敎槪況 向國人介紹歐美佛敎之發展 先後譯出英國佛敎會略史 德國佛敎居士林 英國比丘馬顯德傳等文 民國二十二年(1933) 赴錫蘭硏究巴利文 梵文 後因肺疾逝於錫蘭
황무림(黃茂林) (?-1933) 광동 사람. 영문에 정통했고 처음 향항(香港)에서 영국 사람과 소승불학을 연구했음. 후에 상해에 이르러 역경에 종사하면서 해외를 향해 불법을 선전했음. 육조단경(六祖壇經)ㆍ미타경ㆍ십선업도경 등을 가지고 영역(英譯)하여 간행했음. 또 영문중국불교잡지를 창간했고 아울러 여가 시에 외국불교개황(外國佛敎槪況)을 역술(譯述)하여 국인(國人)을 향해 구미불교(歐美佛敎)의 발전을 개소(介紹; 소개)했음. 선후로 영국불교회약사ㆍ덕국불교거사림ㆍ영국비구마현덕전 등의 글을 역출(譯出)했음. 민국 22년(1933) 석란(錫蘭; 스리랑카)에 다다라 파리문(巴利文)과 범문(梵文)을 연구했고 후에 폐질(肺疾)로 인해 석란에서 서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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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門】 ①宦官的異稱 後漢時代 署宦者於黃門令中黃門等諸官職 故名焉 ▲古尊宿語錄四十一雲峰悅 擧 僧問趙州 學人乍入叢林 乞師指示 趙州云 你喫粥了也未 僧云 喫粥了也 州云 洗鉢盂去 其僧大悟 後雲門拈云 且道 有指示 無指示 若道有指示 向伊道什麽 若道無指示 其僧因什麽悟去 師云 雲門不識好惡 恁麽說話 大似爲蛇畵足 與黃門栽鬚 翠巗則不然 這僧與麽悟去 入地獄如箭射 ②黃門侍郞或給事黃門侍郞的簡稱 秦漢時 宮門多油漆成黃色 故稱黃門 是皇帝近侍之臣 可傳達詔令 漢代以降沿用此官職 隋唐時 黃門侍郞隸屬門下省 成爲門下省的副官 [百度百科] ▲羅湖野錄下 蘇黃門子由 元豐三年(1080) 以睢陽從事左遷筠陽榷筦之任
황문(黃門) ①환관(宦官)의 이칭(異稱). 후한시대 환자(宦者)를 황문령중(黃門令中)ㆍ황문 등 여러 관직에 임명(署)한지라 고로 이름했음. ▲고존숙어록41 운봉열(雲峰悅). 거(擧)하다. 중이 조주에게 묻되 학인이 방금(乍) 총림에 들어왔으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조주가 이르되 너는 죽을 먹었느냐 또는 아니냐. 중이 이르되 죽을 먹었습니다. 조주가 이르되 발우를 씻으러 가거라. 그 중이 대오했다. 후에 운문이 염운(拈云)하되 그래 말하라 지시가 있는가, 지시가 없는가. 만약 지시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했으며 만약 지시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 중이 무엇 때문에 깨쳤는가. 스님이 이르되 운문이 호오(好惡)를 알지 못해 이러히 설했으니 뱀을 위해 발을 그리고 황문(黃門)에게 수염을 심어 줌과 매우 흡사하다. 취암(翠巗; 雲峰悅)은 곧 그렇지 않나니 이 중이 이렇게 깨쳤다면 지옥에 들기가 화살을 쏨과 같으리라. ②황문시랑(黃門侍郞) 혹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의 간칭(簡稱). 진한(秦漢) 때 궁문에 다분히 기름칠을 하여 황색을 이룬지라 고로 명칭이 황문이니 이는 황제의 근시(近侍)의 신(臣)이며 가히 조령(詔令)을 전달했음. 한대(漢代) 이강(以降; 이후) 이 관직을 연용(沿用)했으며 수ㆍ당 시 황문시랑은 문하성에 예속되었고 문하성의 부관(副官)이 되었음 [백도백과]. ▲나호야록하. 소황문(蘇黃門) 자유(子由)가 원풍 3년(1080) 휴양종사로서 균양 각관(榷筦)의 직임으로 좌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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