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682쪽

태화당 2020. 1. 1. 08:42

黃茂林(?-1933) 廣東人 精通英文 初於香港與英人硏究小乘佛學 後至上海從事譯經 向海外宣傳佛法 將六祖壇經 彌陀經 十善業道經等英譯刊行 又創刊英文中國佛敎雜誌 竝於暇時譯述外國佛敎槪況 向國人介紹歐美佛敎之發展 先後譯出英國佛敎會略史 德國佛敎居士林 英國比丘馬顯德傳等文 民國二十二年(1933) 赴錫蘭硏究巴利文 梵文 後因肺疾逝於錫蘭

황무림(黃茂林) (?-1933) 광동 사람. 영문에 정통했고 처음 향항(香港)에서 영국 사람과 소승불학을 연구했음. 후에 상해에 이르러 역경에 종사하면서 해외를 향해 불법을 선전했음. 육조단경(六祖壇經)ㆍ미타경ㆍ십선업도경 등을 가지고 영역(英譯)하여 간행했음. 또 영문중국불교잡지를 창간했고 아울러 여가 시에 외국불교개황(外國佛敎槪況)을 역술(譯述)하여 국인(國人)을 향해 구미불교(歐美佛敎)의 발전을 개소(介紹; 소개)했음. 선후로 영국불교회약사ㆍ덕국불교거사림ㆍ영국비구마현덕전 등의 글을 역출(譯出)했음. 민국 22(1933) 석란(錫蘭; 스리랑카)에 다다라 파리문(巴利文)과 범문(梵文)을 연구했고 후에 폐질(肺疾)로 인해 석란에서 서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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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門】 ①宦官的異稱 後漢時代 署宦者於黃門令中黃門等諸官職 故名焉 古尊宿語錄四十一雲峰悅 擧 僧問趙州 學人乍入叢林 乞師指示 趙州云 你喫粥了也未 僧云 喫粥了也 州云 洗鉢盂去 其僧大悟 後雲門拈云 且道 有指示 無指示 若道有指示 向伊道什麽 若道無指示 其僧因什麽悟去 師云 雲門不識好惡 恁麽說話 大似爲蛇畵足 與黃門栽鬚 翠巗則不然 這僧與麽悟去 入地獄如箭射 黃門侍郞或給事黃門侍郞的簡稱 秦漢時 宮門多油漆成黃色 故稱黃門 是皇帝近侍之臣 可傳達詔令 漢代以降沿用此官職 隋唐時 黃門侍郞隸屬門下省 成爲門下省的副官 [百度百科] 羅湖野錄下 蘇黃門子由 元豐三年(1080) 以睢陽從事左遷筠陽榷筦之任

황문(黃門) 환관(宦官)의 이칭(異稱). 후한시대 환자(宦者)를 황문령중(黃門令中)ㆍ황문 등 여러 관직에 임명()한지라 고로 이름했음. 고존숙어록41 운봉열(雲峰悅). ()하다. 중이 조주에게 묻되 학인이 방금() 총림에 들어왔으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조주가 이르되 너는 죽을 먹었느냐 또는 아니냐. 중이 이르되 죽을 먹었습니다. 조주가 이르되 발우를 씻으러 가거라. 그 중이 대오했다. 후에 운문이 염운(拈云)하되 그래 말하라 지시가 있는가, 지시가 없는가. 만약 지시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했으며 만약 지시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 중이 무엇 때문에 깨쳤는가. 스님이 이르되 운문이 호오(好惡)를 알지 못해 이러히 설했으니 뱀을 위해 발을 그리고 황문(黃門)에게 수염을 심어 줌과 매우 흡사하다. 취암(翠巗; 雲峰悅)은 곧 그렇지 않나니 이 중이 이렇게 깨쳤다면 지옥에 들기가 화살을 쏨과 같으리라. 황문시랑(黃門侍郞) 혹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의 간칭(簡稱). 진한(秦漢) 때 궁문에 다분히 기름칠을 하여 황색을 이룬지라 고로 명칭이 황문이니 이는 황제의 근시(近侍)의 신()이며 가히 조령(詔令)을 전달했음. 한대(漢代) 이강(以降; 이후) 이 관직을 연용(沿用)했으며 수ㆍ당 시 황문시랑은 문하성에 예속되었고 문하성의 부관(副官)이 되었음 [백도백과]. 나호야록하. 소황문(蘇黃門) 자유(子由)가 원풍 3(1080) 휴양종사로서 균양 각관(榷筦)의 직임으로 좌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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